어떻게 하루하루 이겨 낼까 하고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매일매일 다른 노동들로 채워졌다. 만약 계속 같은 일을 반복했다면 금세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 일은 매일 같은 것이 없다. 오늘 돌을 날랐다면 내일은 꽃나무들을 심는다. 다음
날엔 새로 들여온 씨앗을 뿌리고, 그 다음 날엔 가지치기를 한다. 이렇듯 새로운 일들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고단함을 이겨 내게 한 가장 큰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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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로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일을 꼽으라면 단연 ‘번식’이다. 직접 번식시킨 식물은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여느 식물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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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의 무기는 흙이다. 흙을 잘 다루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정원의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식물의 느린 성장 속도 탓에 그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아 중요성이 간과될 뿐이다.
--- p.43
실력 있는 가드너는 자신만의 ‘흙 레시피’를 갖고 있다. 살아 있는 흙을 만들기 위해 흙에 좋은 특별한 보약을 조제해 뿌려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몸에 좋은 열매와 약초를 발효시켜 먹듯이 잘 부숙(腐熟, 썩혀서 익힘)된 퇴비에서 우려낸 물을 흙에 뿌려 주면 각종 유익한 미생물이 흙 속에서 활동해 식물의 뿌리와 그 주변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 p.44~45
연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위해 가드너들은 뒤에서 온갖 궂은일을 해내야 한다. 그중 가장 고역스러운 일이 연못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오니를 제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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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는 거트루드 지킬을 주축으로 한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혼합 식재의 달인이었다. 구석구석에 다양한 식물을 심어 드라마틱한 정원을 연출했다. 아름다운 정원일수록 매일 가드너의 디테일한 손길이 필요하다. 로이드는 뚝심 있고 성실하며 꼼꼼하고 감각적인 가드너였다.
--- p.64
정원을 디자인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할 것은 누가 그 정원을 즐기느냐는 것이다. 가령 화려한 꽃들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정원이라면, 다채롭고 풍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소박한 철학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원이라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 내면서도 그에 맞는 예술적 감성을 접목해야 한다.
--- p.68
처음 가드너로 일할 때 선배들이 하나같이 해 주던 말이 있다. 바로 ‘백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 백공, 즉 백 가지의 일에 능한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가드너는 한가로이 꽃만 키우는 게 아니라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온갖 일을 도맡아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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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배양 작업이다. 알코올램프로 소독한 칼과 핀셋을 이용해 식물 재료를 잘라
유리병 안 폭신폭신한 배지에 하나씩 살포시 놓아 자리를 잡아 준다. 워낙 섬세한 작업이다 보니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말 한마디 없이 초집중해 배지에 식물 재료를 심고 소독하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마치 명상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오롯이 식물과 나, 둘만의 시간이 흐른다.
--- p.84
뜻밖의 일도 종종 겪는다. 분명히 해외 식물원에서 귀한 씨앗을 입수해 뿌려 놓았고 싹이 올라와 정성껏 키웠는데, 알고 보니 원래 씨앗은 발아가 되지 않고 다른 데서 날아온 잡초씨앗이 자란 것이다.
--- p.88
너무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아주 춥거나 더운 환경에선 식물이 살기 어렵다. 이런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멋진 정원을 만들어 내는 가드너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가든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베스 차토다.
--- p.101~102
르네상스 양식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바로크 시대 왕실 가드너들은 웅장한 규모와 일사불란한 배열, 화려한 장식에 치중하여 자연을 지배, 통제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서로 더 크고 화려한 정원을 조성하려 경쟁했다. 완벽한 질서와 대칭, 정확한 스케일을 통해 구현된 ‘문양 화단’은 이 시대 대표적인 정원 형태였다.
--- p.115
꽃 전시나 축제를 준비하는 가드너에게 꽃 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몇 달에 걸쳐 유채꽃 축제를 준비했는데 예정된 기간에 꽃이 거의 안 핀 적이 있었다. 남부 지방에서 개발된 품종이어서 개화기를 남부 지방 기준으로 계산한 것을 깜빡한 것이다. 중부 지방에선 1, 2주 정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축제 소식을 듣고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 p.124
그런데 식물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가드너는 식물들을 ‘차별’한다. 볼품없는 꽃들은 등한시하고 어떤 꽃들엔 많은 관심을 쏟아붓는다. 심지어 가드너는 꽃이 더 많이 피게 하려고 진 꽃들을 부지런히 따 준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 데 쓰일 에너지가 새 꽃을 피우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적화摘花 작업은 가드너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 p.158
미국 유학 시절 가끔 챈티클리어 가든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마다 가든 디렉터인 빌 토머스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거의 늘 청바지에 티셔츠 같은 수수한 옷차림이었고 디렉터이면서도 정원을 돌보며 사람들과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환하게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이 꽤 근사했다. 사실 그는 그런 인상만큼 인품이 훌륭하기로 소문난 가드너이다.
--- p.168
점심도 되기 전에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허리도 뻐근하다. 몽땅 헤집어 놓은 정원만큼이나 머릿속도 마음속도 엉망이다. 현장의 여러 변수와 사정상 구상했던 그림을
완벽히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과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일을 하다 보면 동료 가드너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그것도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으로 쌓인다. 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만 생긴다.
--- p.196
가드너들은 식물들에게 퇴비만 주는 게 아니라 가끔씩 ‘퇴비 차’도 우려 준다. 말 그대로 퇴비로 우려 낸 차 같은 것인데, 식물도 사람처럼 차를 마시면 여러 가지로 좋다. 차 우리는 기본 원리는 티백과 같다.
--- p.201
가드너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잡초는 땅을 독차지하려는 것들이다. 당연히 주변 식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이들은 주로 수입 농산물이나 물품에 딸려 온다. 고국에선 경쟁자가
많았겠으나 타국엔 아직 그런 존재들이 없으니 마음껏 자라나는 것이다. 가시박이나 단풍잎돼지풀처럼 적수가 거의 없는 녀석도 있다.
--- p.208
가지치기를 할 때, 제법 굵은 줄기는 옹심이 바로 위를 깨끗하게 잘라 내고 도포제를 발라 주어야 상처가 잘 아문다. 이것을 잘 모르는 가드너는 아무데나 막 자르거나 손으로 꺾어 버린다. 그럼 잘린 부위에 병해충이 침투하거나 물이 고이게 되고 거기에 세균과 곰팡이가 번식하여 썩어 들어간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건강하게 잘 자란 나무인데 가지치기를 잘못하는 바람에 중심 줄기 속까지 썩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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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장은 한마디로 전쟁터다. 일단 파쇄기 소리가 고막을 찢는 듯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그 입구에 서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을 파쇄기에 밀어 넣는다. 나뭇가지가 굵을수록 굉음은 더 커진다. 파쇄기 반대쪽에선 분쇄된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튕겨 나간다.
--- p.217
정원에 대한 몬티의 철학은 단순명료하다. 흙에 물들어 있는 그의 손이 말해 주듯, 가드너는 늘 정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을 거스르지 말 것을 강조한다. 가드너는 식물의 생장 주기와 리듬에 맞추어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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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가장 큰 주제는 자연주의를 따를 것이냐, 형식주의를 따를 것이냐이다. 인공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고집한 아일랜드 가드너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 1838~1935)과, 건축물 같은 프레임과 확고부동한 선을 중시한 건축가 레지널드 블롬필드(Reginald Blomfield, 1856~1942)의 논쟁이 가장 유명하다. 양측 모두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 두 양식을 절충한 거트루드 지킬의 정원 스타일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