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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 말고 짠짠 · 김겨울
단호하게, 유감입니다 · 고수리 낯가림을 다지는 법, 아시나요 · 김민철 ENFJ의 소심한 고백 · 신지민 형형색색 다다익선 · 윤이나 잠시 메타버스에서 만나 · 한은형 나만 아는 맛집 같은 건 세상에 없겠지만 · 안서영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 · 하현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 서효인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지도 마세요 · 김미정 또 하나의 이야기 · 이수희 나도 사실 낙지와 문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잖아 · 정의석 가장 맛있는 것만 모아서 준 건데 · 임진아 내 몫의 한계를 넘어 꾸역꾸역 · 김현민 먹기 싫어, 말하고 싶지만 · 호원숙 172 제발 나를 내버려둬 · 정연주 김치 쪼가리도 안 주고 말이야 · 박찬일 목구멍이 작아서 슬픈 사람 · 김자혜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깊어지기를 · 이재호 차라리 굶고 말래요 · 김민지 그리워하다 · 허윤선 소망분식 큰아들의 눈물 · 봉달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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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이 강조된 음식을 입에 넣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감이다. 식욕이 뚝 떨어진다. 이걸로 배를 채우다니, 칼로리가 아까워. 이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데. 나는 좀 짜든지 시든지 감칠맛이 나든지 맵든지 해야 맛있는 맛으로 인식하는 뇌를 가진 모양이다. 사람들이 단걸 좋아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워낙 예쁘고 멋진 디저트가 많으니까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전부 한입 먹고 투항 깃발을 휘날려야 했다.
--- 「김겨울, 단짠 말고 짠짠」 중에서 도로로. 나는 민트초코의 맛이 싫다. 민트에는 묵직하고 진한 초코의 농도가 완전 안 어울린다. 초코는 입을 꼬옥 다물고 혼자서 음미하는 허밍 같은 맛이다. 반면 민트는 입술을 오므려 바람을 만들어 부는 휘파람 같은 맛. 휘파람 같은 민트에는 가볍고 옅고 투명한 농도의 것들이 어울린다. 이를테면 민트사탕, 민트껌, 민트티 같은 것들. 묵직하고 진한 농도와 여운을 나 홀로 허밍하듯 음미하는 초콜릿에, 휘파람 같은 민트라니. 휘유우우, 경솔한 맛에 바람이 샌다. --- 「고수리, 단호하게, 유감입니다」 중에서 지금 송년회 장소까지 가려면? 우선 택시를 불러 근처 큰 도시에 도착해서, 리스본행 버스를 타고, 리스본에선 공항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리스본공항에서 비행기로 유럽 큰 도시까지 가서, 또 비행기를 갈아타고 인천에 도착해서 다시 공항버스를 타야만 한다. 결론은? 지구가 반쪽 나도 나는 올해 송년회에 갈 수 없다. 절대 갈 수 없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올해도 성공했다. 올해도 무사히 도망친 거다. 송년회로부터. --- 「김민철. 낯가림을 다지는 법, 아시나요」 중에서 당신의 MBTI는 무엇인가요? 성격 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채식주의자라서 고기 자체를 먹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곤 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해도 나만 싫어할 수 있는 음식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도 말을 꺼내기 두려운 이유는 내가 ENFJ라서다. --- 「신지민, ENFJ의 소심한 고백」 중에서 한 번만에 속아 포크를 집어 들고 페투치니 한 가락을 비장하게 돌돌 말아 입에 넣고 나면, 빠르게 배신감과 후회가 뒤따라왔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모든 맛을 덮는 찐득한 하얀 맛을 떨쳐버리려 입을 헹군 다음, 이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배신감이었다. “솔직히 진짜, 빨간 소스 파스타 하나 더 시켜도 돼?” --- 「윤이나, 형형색색 다다익선」 중에서 가장 난감한 것은 팽이버섯이 함께 끓여져 나오는 경우다. 게다가 맑은 국물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약맛 같기도 한 팽이버섯의 맛이 맑은 국물을 뒤덮으면…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갈비탕을 시킬 때는 팽이버섯이 들어가는지 묻고, 들어간다면 빼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팽이버섯이 들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까탈스러운, ‘이상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끓여달라고 한다. --- 「한은형, 잠시 메타버스에서 만나」 중에서 하와이안 피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스몰토크 주제였다. 누구나 그것에 대한 입장이 있지만 정치색처럼 대놓고 드러내기 껄끄럽지 않았고, 편을 갈라 싸우기 딱 좋지만 종교 논쟁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마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고객의 소리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접수되는 곳이지만 그 누구도 파인애플을 파는 직원이 하와이안 피자를 싫어한다고 컴플레인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놀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기고 지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 「하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 중에서 그 누구도 아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는데, 아이가 없는 공간을 찾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가끔은 맛없는 맛집의 긴 줄만큼이나 의아하고 애처롭다. 꼭 노키즈존이 아니더라도, 나머지 공간 전부가 이른바 키즈존인 것도 아니어서, 오늘도 여느 식당에는 아이를 단속하느라 휴대전화를 쥐여주고, 아이가 뭐라도 엎지를까 봐 전전긍긍하고, 옆 테이블에 거슬릴까 봐 아이에게 먼저 더 소리를 높이는 엄마가 많았을 것이다. 아빠도 종종 있었을 테고. --- 「서효인, 어른은 어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중에서 나의 변화는 문어나 낙지의 권리에 대한 신념이나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을 산 채로 끓는 물에 넣는 행위는 안 하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 인식 변화는 내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서 문어와 낙지를 식용 생물 리스트에서 제외시켜버렸다. 그리고 일어난 변화가 그들의 맛을 전혀 못 느끼게 된 것이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취향의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취향을 넘어선 나의 근본 인식의 변화였다. --- 「정의석, 나도 사실 낙지와 문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잖아」 중에서 어린 나이의 인생은 어린 만큼 삶의 농도가 쉬이 짙어지고 옅어진다. 가족들의 한마디, 작은 반응과 태도로 나는 늘 서글픈 상태로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흰 접시 위 꽁다리들이 못생겨 보여 미칠 것 같았다. 너무 나 같아서 뜨거운 눈물이 터졌지만 누군가 또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맛있는 것만 모아서 준 건데, 바보.” --- 「임진아, 가장 맛있는 것만 모아서 준 건데」 중에서 원래 나는 사람들 앞에서 개인적인 기호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유독 뷔페만 갔다 하면 무장해제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야수성을 들켜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혈기왕성하던 십대, 이십대 시절에는 식탐이 그 수치심을 이겨버리곤 했지만, 점점 갓 구운 갈비나 랍스터 앞에서 군침을 흘리며 접시를 들고 서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앞사람이 음식 집게를 내려놓기만을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의 접시를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 잉여의 음식들이 버려진다는 지구 사랑 차원에서의 죄책감도 분명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잉여의 음식을 불필요하게 섭취하고 있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먹을 만큼 먹어버린 어른이 된 걸까. --- 「김현민, 내 몫의 한계를 넘어 꾸역꾸역」 중에서 차라리 가만히 뒀으면 메추리알이나 먹으면서 혼자 놀았을 텐데, 다들 어떻게든 나에게 회를 먹이려고 노력하니까 나름 머리를 써보기도 했다. 한 세 점 정도를 먹는 것처럼 앞접시에 숨겨놨다가 매운탕이 나왔을 때 국물에 담가서 데친 것이다. 보통 매운탕은 휴대용 버너에 올려서 바글바글 끓는 상태로 나오니까 회 끄트머리를 젓가락으로 잡고 3초만 담가도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익었다. 그리고 맛있었다! 살짝 매콤하고 보들보들하고 따뜻하고, 좋은데? --- 「정연주, 제발 나를 내버려둬」 중에서 배달 앱을 통한 주문은 평점과 리뷰가 워낙 중요하기에, 음식을 만든 사람 또한 홀에서 받은 주문 못지않게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성을, 웃돈을 더 주고서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건 맛있는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지런한 돼지’로서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켜 먹느니 직접 가서 사 먹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 「김민지, 차라리 굶고 말래요」 중에서 |
띵 시리즈 작가 22인의 ‘싫어하는 음식’ 대잔치!
“세상에 음식은 많고, 하나 정도는 마음껏 싫어해도 되지 않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론칭한 이후 꾸준히 출간을 이어오고 있는 세미콜론 음식 에세이 ‘띵 시리즈’. 그동안 치즈, 고등어, 라면, 훠궈, 평양냉면, 짜장면, 카레, 삼각김밥과 같은 한 가지 분명한 음식부터 조식, 해장 음식, 그리너리 푸드, 프랑스식 자취 요리, 엄마 박완서의 부엌, 용기의 맛, 병원의 밥, 식탁 독립 등 좀 더 폭넓은 음식 관련 주제에 이르기까지, 애정이 듬뿍 담긴 음식에 관한 푸드 에세이 시리즈로 자리매김해 지금까지 열여섯 권을 출간했다. 현재 계획되어 있는 근간으로 바게트, 돈가스, 팥, 아이스크림, 멕시칸 푸드, 소설가의 마감식, 직장인의 점심시간 등 열네 가지 주제가 더 있으며, 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2022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선보이는 이번 열일곱 번째 띵 시리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하고 싶은 마음’으로 22인의 작가들이 모였다. 모두 앞서 언급한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책을 출간했거나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띵 시리즈 작가들이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동자가 커지고 목소리를 높여온 작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주제는 다름 아닌, ‘싫어하는 음식’. 고수, 오이처럼 특정 재료를 싫어하는 사람이 식당에서 주문할 때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하는 이 한마디를 제목으로 삼았다. 좋아하는 대상과 그에 대한 마음을 다룬 에세이는 정말 많다. 좋아하는 것을 힘껏 좋아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분명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기운들이 마구 차오른다. 물론 띵 시리즈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도 대부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골라 전시하는 데 익숙한 편이고, 우리는 의외로 ‘싫어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싫어하는 음식’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원고를 넘기며 “그동안 싫어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거나 글로 써볼 기회가 흔치 않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좋은 것만 옆에 두고 보기에도 시간은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단순히 “그냥 싫어.”가 아니라 “너무 싫어.”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내적 근거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너머 한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가치관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역사는 길든 짧든 하나쯤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결심이나 선언으로부터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되어 인생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좋아하는 건 좋아한다고 말하기,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고 말하기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너무 좋아."라거나 "너무 싫어."라고 말하기 이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각자의 취향이란 정말 고유해서 서로 얽히고설키다가 때로 교차하며 엇갈린다는 점이다. 김미정은 좋아하는 음식 ‘치킨’을 주제로 띵 시리즈에 참여하기로 한 반면, 신지민은 이번 앤솔러지에서 ‘닭’을 싫어하게 된 계기와 잊지 못할 에피소드에 대해 썼다. 같은 경우가 한 번 더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떡볶이’를 주제로 띵 시리즈에 참여하기로 한 김겨울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음식 앤솔러지에 ‘떡볶이’로 참여한 봉달호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닭이 싫어?” “어떻게 떡볶이가 싫을 수 있지?” 하며 서로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싫어하는 음식’이라는 주제로 한배를 탔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찾는 달달한 디저트류를 마다하는 김겨울에게는 짜장면의 ‘단맛’조차 불쾌하며,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물었던 박찬일은 짜장면의 짝꿍 ‘단무지’는 또 싫다고 말한다. ‘그리너리 푸드’를 좋아해 온갖 채소에 대한 예찬론을 펼쳤던 한은형도 ‘팽이버섯’만큼은 좋아할 수 없음을 넘어 절대 먹지 못하는 것 또한 예상치 못한 대목이다. 그뿐 아니다. 300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강연이나 프레젠테이션은 누워서 떡 먹기인 김민철도 여러 명이 모이는 ‘회식’ 자리에서만큼은 낯가림이 발동한다. 라면을 사랑하는 윤이나는 아무리 짜고 맵더라도 색깔이 ‘하얀’ 음식에서는 맛있다고 느낄 수 없다. 마트에서 파인애플을 잘라 시식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하현도 파인애플을 토핑으로 올린 ‘하와이안 피자’는 질색이다. 두 아이의 아빠 서효인은 ‘노키즈존’이라며 아이들을 받지 않는 식당엔 가지 않으며, 안서영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지만 굳이 ‘줄 서서 먹는 맛집’까지는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또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끼 손수 차려 먹는 자취 요리의 즐거움을 설파한 이재호도 ‘혼밥’은 하고 싶지 않다. 김민지는 식당을 운영하지만 배달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을 뿐더러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느니 차라리 굶겠다고 선언한다. 초콜릿은 ‘너무’ 좋지만 ‘민트초코’는 ‘너무’ 싫은 고수리도 있고,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두족류’는 먹을 수 없는 정의석도 있다. 완두콩이 너무 ‘예뻐서’ 가끔 밥에 넣어 먹을 순 있어도 그 외의 모든 콩을 활용한 ‘콩밥’은 도무지 삼킬 수 없는 김자혜도 있다. ‘알로에’가 너무 끔찍해서 비슷한 제형의 스킨과 로션도 거부하는 김미정이 있고, 바다 가까이에서 태어나 온갖 해산물을 잘 먹지만 ‘생선회’만큼은 도무지 무슨 맛인지 즐길 수 없다는 정연주도 있다. 오래전 청소년 필독서였던 어느 자기계발서에 솔깃하여 먹어보았으나 ‘그냥’ 맛이 없었던 이수희의 ‘마시멜로’도 있고, 보기만 해도 서러웠던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소환해내는 임진아의 ‘김밥 꽁다리’도 있다. 자제력을 잃고 접시에 가득가득 담아대던 자신의 모습이 미워진 김현민의 ‘뷔페’도 있으며, 할머니에 선언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먹지 않게 된 호원숙의 ‘보신탕’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 출장이 밥 먹듯 잦았던 허윤선에게도 ‘기내식’은 영 답답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이렇듯 특정 음식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체질에 맞지 않아서, 성격에 맞지 않아서, 충격적인 사진을 봐서, 어느 책을 읽고 나서부터, 식감이 별로여서, 색깔이 희멀건해서, 어릴 적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자꾸 목구멍에 걸려서, 슬픈 추억이 깃들어 있어서, 집착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서, 그저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저런 저마다의 사연들로 각자 싫어하는 음식의 전당에 오른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먹먹하게 펼쳐진다. 몹시 단호하지만 결코 무례하지는 않게,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 우리는 유독 다른 사람 앞에서 ‘호불호’를 드러내는 일을 어려워하고, 특히 ‘불호’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칫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고,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기도 한다. 어디 음식뿐이랴. 우리 인생 곳곳에는 생각만 해도 싫은 것들이 여럿 존재한다. 싫어하는 것에 좀 더 분명히 눈을 뜨고 그것과 조금이라도 거리두기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조금 더 간결해지고 즐거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의 요소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반대로 나를 이루지 못하는 것들의 목록도 스스로 정리해두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라는 말은 몹시 단호하지만 결코 무례하지는 않다. 아무도 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간단한 말 한마디에 이 책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다.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해외 여행은 다소 요원해졌지만 언젠가 다시 세계 각지로 떠나게 된다면, 이 책을 가슴에 고이 품고 가자. 새까만 표지에는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라는 제목을 세계 12개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적었다. 이것은 해당 언어의 전문 번역자 혹은 한국어에 능통한 현지인이 아주 작은 뉘앙스 차이까지 꼼꼼하게 살펴 섬세하게 번역한 결과물이다. 단순히 번역기를 돌려서는 얻을 수 없는 값진 열두 개의 문장인 셈이다. 여행지에서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할 수는 없어도 식당에서만큼은 언어를 몰라 싫어하는 음식을 먹게 되는 일은 없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탄생한 디자인이다. 22인 22색, 이 책을 읽다 보면 각양각색의 오색찬란한 싫어하는 것들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 것이다. 어떤 음식에서는 동류의식을 느끼고 깊은 공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음식은 대체 왜 싫은 건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요,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도 아니요, 그저 좋은 것은 더 열렬히 좋아하고 싫은 것은 더 열렬히 싫어하자는 단순한 진심이다. 세상에 음식은 많고 하나쯤은 마음껏 싫어해도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