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지 데생 연습
현대시 쓰기에서 이미지 데생 연습은 현대시의 속성을 익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많은 시인들이 형상화되지 않는 주관적인 생각들로 시상을 전개하고, 관념을 진술하거나 설명하는 작시법으로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쓴 시는 시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의 기록일 뿐이다. 시는 반드시 경험을 이미지로, 상상력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형상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진술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미지 데생 연습을 충실히 해야 한다. 이미지 데생은 현대시의 원리에 따른 기초 기본 기능을 익히는 습작방법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습작법을 제시하면, 날마다 한 가지 식물이나 동물의 이름을 바꿔가며, 정서별 이미지 데생 연습을 한다. 예를 들면, 코스모스, 오동나무, 강아지풀, 고양이, 참새, 바위, 빌딩 등등 동식물이나 무생물 소재를 한 가지씩 선택하여 그림을 그릴 때 기초 데생 연습을 하듯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이미지 데생 연습·1: 제재-도마뱀
① 기쁨: 사자가 죽었다.
왕도마뱀이 그것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린다.
② 슬픔: 돌무덤 위에 앉아 비를 맞는다.
③ 고독: 사막의 모래언덕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
④ 절망: 도마뱀, 절벽을 오르다가 떨어졌다
⑤ 허무: 비늘이 흩어진다. 또 한 해가 갔다.
⑥ 분노: 피를 내뿜는 왕도마뱀
⑦ 공포: 잘린 꼬리 팔딱팔딱
2. 연극 무대 연출가 가상 무대 배치
시창작을 위한 이미지 훈련하고 나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연극 무대를 설치하는 연출가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연극 무대를 배치하고 적절한 시어를 선택하여 다음과 같이 시적인 형상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기초 기능을 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부엉이
김관식
밤이다
부엉이 운다.
마을 뒷산 병풍바위 위에 앉아있을 게다.
부헝, 부헝, 부헝.
문풍지가 바르르 떤다
으스스
온몸에 소름
이불을 뒤집어쓴다
뒤안의 대숲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
등잔불이 흔들거린다
부엉이가 또 우리 집을 찾아 왔는갑다.
갑자기 천장에서 쥐들이 쿵쾅거린다.
쥐오줌 지린내가 방안을 확 풍겨온다
부엉이 또 운다
산마을이 숨죽이고 귀 기울인다
부헝, 부헝, 부헝
*주인공: 부엉이
*무대: 공간적 배경-산마을, 대숲이 있는 집 방안
시간적 배경-겨울밤
*조명: 등잔불 불빛
*음향: 부엉이 울음소리, 문풍지 떠는 소리. 대나무
잎새 소리, 쥐들이 쿵쾅거리는 소리
*소품: 등잔불, 이불
*냄새: 쥐오줌 지린내
3. 병치 기법
병치竝置는 두 가지 이상을 한 곳에 나란히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치환 은유는 사물의 형태, 정서, 상징. 행동, 언어 등의 유사성에 의해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하여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지만, 병치 은유는 자리 이동이 아니라 함께 놓아두는 방식이다. 두 개 이상의 사물들을 함께 놓아두어서 그것들이 서로 기능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하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병치 은유를 조합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조합이란 치환 은유처럼 사물들 사이에 유사성에 의한 자리바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물을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를 말한다. 병치 기법을 적용할 때 두 사물간의 유사점을 찾는 방법으로는 첫째, 형태의 유사점→모양의 유사점을 찾는다.
예) 빌딩-하모니카, 둘째, 정서의 유사점→느낌의 유사점을 찾는다. 셋째, 상징의 유사점→의미의 유사점을 찾는다. 넷째, 행동의 유사점→움직임의 유사점을 찾는다. 다섯째, 언어의 유사점→동음이의어, 발음의 유사점을 찾는다.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疾走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墜落을
나의 자랑은 自滅이다
무수한 複眼들이
그 무수한 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億年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이형기의 「폭포」 전문
이 작품을 부분적으로 보면 병치 은유이지만 작품 전체로 보면 치환 은유가 됨으로써 병치 은유와 치환 은유의 결합형태가 된다. 왜냐하면, “시퍼런 칼자국”, “疾走하는 전율”, “벼랑의 値立”, “石炭紀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墜落”의 이미지들은 병치은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폭포를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시 1)
둘이 좋아서 몸을 섞었습니다
사랑은 젖은 이슬이 되고
어머니 아닌 처녀 뱃속에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단단히 조여 오는 압박 벨트도
저희들의 몸부림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남이 볼까 두근두근
스스로 싹을 틔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달콤한 사랑도 모두 멈추고
엄마의 품을 떠나
영아원의 엿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랑도 산산이 부셔져 가루가 되고
허공으로 흩어져 낯선 나라
물과 밥알에 섞여 분노를 삭혀왔습니다
타국 땅에서 밥알로 동동
한때 뜨거웠다 차갑게 식어버린
미혼모의 젊은 날 한 순간
엿 먹은 은혜입니다
- 김관식의 「식혜」
식혜 빚는 과정과 젊은이들의 사랑과 미혼모들의 출산, 해외 입양으로 보내는 과거 우리나라의 고아 수출이라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을 전체적으로 병치시켰다.
따라서 시창작 습작은 정서의 이미지화 기초연습을 날마다 하고, 이어서 묘사 연습 또한 날마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두 가지 상황을 조합한 병치기법을 연습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예시 2)
아파트 분양
떴다방
밀물이 몰려든다
기회는 이때다
밀려들 때
분양받아 웃돈 얹어
잽싸게 빠져 나와야 한다
떴다방들 다 빠지고
어물어물
썰물인 줄 모르고
모델하우스 분양사무실
꾸역꾸역 멸치 떼들이 몰려든다
죽방령 입성
로또 당첨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남해 바다
- 김관식의 「죽방렴」
죽방렴과 아파트 모델하우스 분양 사무실을 병치시켰다. 밀물 때 물고기들이 바닷물을 따라 왔다가 썰물 때 죽방렴에 갇혀버린 상황과 유사한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 분양 사무실을 차려놓고 떴다방이 극성을 부리는 상황을 병치시켰다.
예시 3) 기생충의 상징성에 의해 매국노와 병치
평생 동안
떵떵거리며
뜯어먹고 살아왔다
시커먼 뱃속
구린데 붙어서
일진회 앞잡이로
기생파티
능글능글
동족들이
배 움켜쥐고
아파해도
못 본 체했다
실컷 도둑질해
똥구멍으로 자식들을
동경 유학 보냈다
핵폭탄
산토닌 처방 앞에
독립투사 신분 세탁
힘 있는 사람
뱃속에 착 달라붙어
꿈틀꿈틀
대대로 배 채우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 김관식의 「기생충」
뱃속에서 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충과 일제 강점기 친일파들이 동족을 속여서 제 잇속을 차렸던 상황을 병치시켰다. 친일파들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자식들을 동경유학을 보내기도 하고, 나중에 독립투사를 신분 세탁하여 오늘날까지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회현상을 풍자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