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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순수 색채를 찾아서 1896-1905 18쪽 사실주의와 장식 1906-1916 50쪽 니스 시절의 ‘친밀성’ 1917-1929 64쪽 공간의 한계를 넘어 1930-1940 76쪽 마티스의 제2의 삶: 우아함의 예술 1941-1954 92쪽 앙리 마티스(1869-1954) 삶과 작품 |
저폴크마 에서스
관심작가 알림신청역김병화
관심작가 알림신청金炳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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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앙리 마티스는 화가가 될 운명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씨앗 상인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라고 말한다. 마티스는 조숙한 천재도, 파블로 피카소 같은 신동도 아니었다. 그의 평생 작업은 색채와 빛과 공간과 조화의 창조에 대한 비길 데 없는 헌신에서 출발하여 꾸준히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갔다.
---「순수 색채를 찾아서 | 1869-1905」중에서 마티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일생일대의 작업의 출발점이 된 그림은 〈삶의 기쁨〉(21쪽)이었다. 그것은 1906년 앵데팡당전에 출품한 유일한 그림이었고, 그로 인해 또다시 격렬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예를 들면 시냐크는 색채 구역 주위에 그어진 선을 보고 거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지금까지 나는 마티스를 높이 평가해 왔지만 그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 그는 2미터 반이나 되는 그림 전체에 괴상한 인물을 엄지손가락 굵기의 선으로 그린 틀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그 부분들을 순수하지만 그래도 역겨운 색채로 래커 광택이 뚜렷하게 나도록 윤을 냈다. ---「사실주의와 장식 | 1906-1916」중에서 온갖 과감한 실험을 거친 뒤, 이제 마티스는 자기가 발견한 것들을 가지고 조화를 창조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자신이 자기 입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힘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전례 없는 힘을 가지고 새롭게, 하나의 작품 속에서 갈등을 가지고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고 실험하느라 길고도 힘든 세월을 보냈다. 또 나는 주문받은 벽화와 큰 기획 작품을 제작할 때도 아주 열심히 노력했다. 풍성함에서 출발한 내 그림은 그동안 새롭고 독자적인 명료성과 단순성을 확립했다. 아라베스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 이 이중성에서 나 자신의 내면적 한계를 넘어 양극단의 조화를 달성한 예술이 태어났다. 나는 파리와 걱정거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숨 쉴 공간, 휴식을 취할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오달리스크는 이런 갈망이 충족된 여건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살아 있는 아름다운 꿈이며, 밤낮으로, 마법 같은 분위기와 황홀경에서 느낀 경험이었다.” ---「생의 프리즈 | 삶, 사랑, 죽음에 관한 시(詩)」중에서 1939년 이후 마티스는 그리스 출판업자인 엠마뉘엘 테리아드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는 『베르브』라는 잡지의 편집자였다. 편집 사무실에서 마티스는 인쇄업자의 잉크 카탈로그로 종이 오리기를 하곤 했는데, 이 오리기 중의 일부가 그 잡지의 8권 표지로 사용되었다. 테리아드는 책 전체를 오리기로 꾸미고 싶어 했지만 화가는 1943년이 되어서야 이 제안에 동의했다. 그다음 해에 책에 실릴 스무 장의 그림이 완성되었으며, 제목을 ‘재즈’라고 붙여졌다. 인쇄업자의 잉크 카탈로그는 오리기에 사용하던 종이에 칠한 구아슈로 대체되었다. 그림을 복제할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책은 1947년까지도 출판되지 않았다. ---「마티스의 제2의 삶: 우아함의 예술 | 1941?1954」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