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재즈에서의 즉흥연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재즈의 매력을 말할 때 흔히 음악적 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이 무작정의 자유는 아니다. 연주자의 내·외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 ‘1장 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 」중에서
인간이 속한 언어의 세계 안에서 무의식이 만들어지듯, 음악적 언어 또한 수 세기의 전통과 관습을 통해 형성되어왔으며, 이 세계 안에서 연주자 각자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연주자의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는 음악 언어들은 연주가 이루어지는 동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
--- 「 ‘2장 즉흥의 미학’ 」중에서
린즐러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창조성의 원천은 자유연상에서 기인하며, 비단 즉흥연주자만이 아니라 작곡가들도 작곡의 초기 단계에서는 자유연상을 거친다고 말한다. (…) 즉흥 연주에서의 무의식적 사고는 주체를 억압하고 있던 음악적 관습을 깨뜨리며, 이전엔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 「 ‘2장 즉흥의 미학’ 」중에서
결국 재즈에서 연주자의 존재는 과거 텍스트와 현재 텍스트 사이의 매개이자, 변증법이 일어나는 일종의 장소이다. 연주자를 통해 재즈의 현재와 과거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즈 연주의 순간은 핑켈스타인의 말대로 “익숙한 것과 생소한 것,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순간이 된다.
--- 「 ‘3장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법’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는 재즈라는 음악 안에 있는 가능성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리면서 자신이 《계몽
의 변증법》을 통해 비판했던, 이성의 합리화가 가져오는 “보편과 특수의 잘못된 동일성”이라는 실수를 범했다.
--- 「 ‘3장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법’ 」중에서
베렌트는 이러한 스윙의 본질을 두 가지 다른 시간개념의 중복으로 본다. “심리학적 시간”과 “존재론적 시간”, 혹은 “살아 있는 시간”과 “계량된 시간”이 변증법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 「 ‘4장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음악’ 」중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특정 문화권 안에서 음악 언어를 받아들이고, 관습적인 사고 안에서 음악을 듣고, 또 만들어낸다. 결국 블루스가 미묘한 이유는 서양음악을 기준으로 ‘식민화’된 사고 속에서는 결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 「 ‘4장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음악’ 」중에서
이러한 전체적인 형식은 다른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나,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로 이루어지는 부분은 시클롭스키가 말하는 예술의 본질적 표현기법으로서의 “낯설게 하기”가 주로 적용된다. 연주자들은 즉흥연주 과정에서 테마의 선율이나 화성, 리듬을 다양하게 변형하기도 하며,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음악적 정보를 재조합하고 변형하여 테마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 ‘5장 재즈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중에서
한편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재즈에 공존하고 있는 정확성과 모호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테드 지오이아는 그의 저서에서 재즈의 본질은 악보로 옮겨 적을 수 없는 것들에 담겨 있으며, 피타고라스식의 음정 체계에 정복당하지 않았던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의 연주자들은 음조나 음정을 왜곡하는 방식과 서양 고전음악의 체계를 공존하게 했다고 말한다.
--- 「 ‘5장 재즈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일종의 충격을 경험한다. 들뢰즈가 말하는 ‘기호’
를 마주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기호는 우리를 사유하도록 강제한다.
--- 「 ‘6장 모던 재즈와 포스트모던 재즈’ 」중에서
나치 정권하 독일의 기조는 새로운 ‘질서’에 관한 것이었다. 인종에 관한, 권력에 관한, 세계정세에 관한 흐트러진 질서를 그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바로잡고자 했다. 이러한 질서 구축에 있어 재즈적 자유로움은 그들의 정치적 방향성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었다.
--- 「 ‘7장 재즈의 영토 확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