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상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일상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일상 정치의 중요성도 한층 커졌다. 이를 반영하듯 대통령 선거와 서울 시장 선거에서 당을 불문하고 모든 후보가 민생의 중요성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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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상도시’는 제니퍼 로빈슨(Jennifer Robinson)의 ‘Ordinary Cities’ 개념을 서울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Ordinary’는 ‘보통의’, ‘평범한’, ‘일상적인’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Ordinary Cities’의 번역어로 ‘보통도시’, ‘평범도시’, ‘일상도시’를 두고 저자 간에 고민과 토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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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시, 광역거대도시, 뉴어버니즘, 창조도시, 유비쿼터스도시, 생태도시, 슬로시티, 스마트도시, 포용도시 등이 대안적 도시로 주목 받았고, 세계적으로 정책 이동(policy mobility)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이들 중 1991년에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교수가 주창한 세계도시론과 2000년대 초기 영국의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 교수와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가 제안한 창조도시론이 모범적인 도시로 인식되면서 세계적으로 각광 받았다. 많은 도시의 정책 입안가와 정책 집단이 이를 경쟁적으로 이전하고 채택했다. 아직도 세계 많은 도시에서 글로벌 창조도시를 표방할 정도로 이 두 도시론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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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풍미한 세계도시론과 창조도시론의 모방적 정책 실험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범세계적으로 많은 도시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려고 경쟁했지만 세계도시나 창조도시로 거듭난 성공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서구 맥락에서도 이러한 정책 실험의 결과 양극화가 심화했다. 도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도시 문제의 해결 방안을 규격화한 상품처럼 보급해 도시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무시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 p.41~42
그렇다면 일상도시의 제안이 정말로 실현하기 어려울지 다시 묻고 싶다.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엔 서울의 민도(民度)가 매우 높다. 조순 민선 시장 이후 참여 시정 경험도 제법 쌓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일상도시 발전 방안을 시도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일상도시 관점에서 서울 민선 시장 다섯 명의 시정 철학과 가치, 정책을 분석하면서 일상도시 발전 방안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 p.53
조순 시정은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정의하고 문제를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는 도시만의 고유한 특성과 그 과정을 이해해 도시 계획을 수립한다는 일상도시의 강조점과 맥이 닿아 있다. 민선 1기 첫해의 시정 계획과 백서에는 당시 인식한 서울의 현실을 나타낸 바 있다. 서울이 지난 30년간 급성장해 신흥 거대도시로 도약, 세계의 도시사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이루었으나 성장의 부작용으로 동시에 많은 문제에 직면해 서울 시민 절반 정도가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 p.63
국가 파산 직전의 혼란한 시기에 서울 시정을 맡은 고건 시장의 첫 번째 화두는 ‘개혁’과 ‘개방’이었다. 고건 시장은 변화하는 정보화 시대, 국제화 시대, 지방화 시대에 서울시가 세계 무대에서 생존하려면 그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고건 시장이 취임하며 내놓은 『서울특별시 정책 비전』에서 당시 서울의 상황을 ‘국경 없는 무한 경쟁’, ‘냉혹한 무한 경쟁 체제’로 규정하면서 과감한 개혁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했다.
--- p.83
서울 시장 취임사와 『서울 2020』을 통해 이명박 시정은 다양한 가치와 목표를 표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울 고유의 문제와 환경, 복지, 재분배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거나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그가 강조한 목표는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간과되거나 번복되었다. 서울의 문제가 고려되기보다는 친기업적 개발 사업이 주로 추진되면서 시민의 긴요한 필요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사업이 시행됐다.
--- p.121
창의 시정에 대한 오 시장의 원대한 포부는 그 후 매년 발표됐다. 2007년 새해 연설에서 2007년을 ‘서울 브랜드 마케팅의 원년’으로 삼았으며, 2008년 새해 연설에서 2008년을 ‘창의 문화 도시로 서울이 재탄생되는 해’로 선포했다. ? 그러나 각 프로젝트와 각 사업의 예산 규모는 매우 달랐다. 새로운 시정 운영 계획에 포함됐다 하더라도 몇몇 사업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이러한 사업은 정치적인 수사에 가까운 형태로 추진됐을 뿐 창의 시정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 p.148
지난 9년간 박원순 시정에서 시도된 다양한 정책 실험은 사실 도시 계획 전문가 사이에서 도시 발전에 대한 인식론적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많은 이가 박원순 시정을 개념화하려 했다. 누군가는 참여 시정으로, 다른 이는 포용도시로, 어떤 이는 메타시티로, 또 다른 이는 진보도시로 개념화하려 했지만, 그 어떤 명명도 모두가 수긍할 만족스러운 개념은 아니었다. 이들 모두 박원순 시정의 부분만을 설명했을 뿐, 박원순 시정이 지난 9년간 추구한 다양한 시도를 포괄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어쩌면 박원순 시정에서 추진한 시민 참여 실험과 수많은 생활 밀착형 정책 실험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176
도시가 일상성을 지향하면 세계도시 정책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도시의 정책 실험을 참고해 정책을 세운다. 뉴욕, 도쿄, 런던 등 세계도시의 정형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국내외 사례에 주목하면서 서울의 특성, 정체성에 부합하는 실험을 실행하고 이를 창의적인 정책으로 재창조한다. 이러한 정책 실험은 서울 고유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실마리로 작용한다.
--- p.204
여러모로 지금은 서울의 미래에 중요한 분수령이다. 지금이야말로 과거 정책에서 무엇을 살려 미래로 삼아야 할지, 어떠한 것을 과거에 남겨두어야 할지 고민할 시기다. 이에 먼저 일상도시의 일곱 가지 기준을 되새겨보고, 일상도시 관점에서 2부의 역대 민선 시정이 이러한 일상도시의 기준을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비교해본다. 다만 역대 시정에 점수를 매겨 등급화하거나 순위를 매기지는 않을 것이다. 복잡한 도시의 총체를 성급하게 재단하거나 정량화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p.246
위에서 살펴본 미래 이슈는 서울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모든 도시가 이미 겪고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직면할 보편적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보편적 문제에 보편적 해답이 있을 수는 없다. 각 도시의 일상이 판이하기 때문에, 이 보편적 문제에 대한 처방은 각 도시의 맥락에서 창의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미래의 문제를 푸는 이러한 맥락적 사고에서 평범한 시민의 평안한 일상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