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교회 안에 뜨겁게 회자되었던 제자도란 주제는 지금은 케케묵은 용어가 되었다. 초기에는 주로 복음전도나 해외 선교, 교회 성장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던 이 말은 최근 디트리히 본회퍼, 토니 캄폴로, 신수도원 운동 같이 예수님을 철저히 따르면서 급진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 의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 이 책은 일상에서 구현해내는 그 철저한 제자도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게 제자도란 올바른 사실에 대한 동의나 입술의 고백을 넘어 주와 선생되신 예수의 부르심을 따라 복음을 공동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도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와 결합된 제자도를 통해 구현하는 대항 문화다. 본서는 우리가 어떤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환기시키고, 그리스도인의 근원적 진리를 매우 쉽고 간결하게, 동시에 진지하게 증언한다. 현대 교회의 문제는 주님은 급진적인데 우리는 온건한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정확하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말씀에 근원적으로 철저하려는 점에서 지극히 성경적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전에 쓰였다는 한계가 있지만 구원, 은혜, 하나님 나라, 무엇보다도 '제자도'가 함의하는 내용은 말뿐이지 실제 삶에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 오늘 우리네 교회에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 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
잊히면 안 될 책이다. 그런데 위험하다. 더 뺄 것이 없을 만큼 단정하고 단호하게 주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제자도 요구가 갖는 급진성과 전복성을 담고 있어서다. 일체의 타협 없이 묵직하고 신랄하게 말하되, 선동하는 대신에 탄탄한 논리와 치밀한 근거로 설득하고, 실천 가능한 친절한 본보기들로 제자로 살아볼 엄두를 낼 수 있도록 상상력을 불어 넣어준다. 먼저 혼자 읽으라. 그러고는 꼭 함께 읽으라. 그래야 비로소 당신의 책이 되고 당신의 삶이 될 것이다.
-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묵상과 설교〉 책임편집)
갓 스무 살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제자도〉가 날 찾아왔고 제자도에 눈을 떴다. 나란 존재와 이후 내 삶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그저 교회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제자로 부르셨다는 고백과 함께 나는 거듭났다. 내 안의 혈액이 어찌나 출렁였는지 그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부터였다. 실로 복음에 매료된 것은. 이내 삶을 주께 드리는 표시로 좁은 길을 걸었다. 역시 그때부터였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시리라. 아멘. 그래서 실패와 배척, 가난과 우울증, 소멸의 충동까지 덤으로 받았다. 대충 예수를 믿었으면 상대하지 않았을 이 불편한 친구들이 내게 기숙한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이 단단히 꼬였다. 아아,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예수여, 찬미 받으소서. 그럼에도 나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을 누린다. 부끄럼 없이 살며 어디에서든 당당하다. 애가 넷이지만 누구보다 자유롭다. 무엇보다 점점 나 자신이 되어간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스스로 묻는다. 만약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가 다시 제자도의 부름을 받는다면 어떡하겠냐고. 아주 긴 숨을 내쉰 다음 여전히 제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추천사가 아니라 비추천사처럼 돼버렸지만, 인생의 모든 갈피를 하나님 나라의 텃밭으로 일구길 바라는 소수에게 이 작지만 강력한 책을 권한다.
- 박총 (작가 .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