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에는 구원, 즉 해탈을 ‘나에게 온다’는 말로 자주 표현한다. 이는 신과 사랑의 연합을 이룬다는 뜻으로서, 우파니샤드적인 범아일여의 경지가 인간과 브라만 사이에 아무런 구별 없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해탈의 경지라면, 신애의 요가를 통한 해탈은 신과 인간의 구별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는 사랑의 연합―이 경우 인간의 정신, 자아, 육신의 소유주는 유한하지만, 영원한 개별적 정신으로 이해된다―과 같은 경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타》는 때때로 신애의 요가를 통해 도달하는 신과의 합일을 범아일여적인 신비적 일치의 경지와 구별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바가바드 기타』에 대해서」중에서
61. 모든 감각기관을 제어하면서 나에게 열중하여 제어된 채 앉아 있을지어다. 감각기관들을 지배하는 사람의 지혜는 확고히 서 있기 때문이다.
62. [감각의] 대상들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기며, 집착으로부터 욕망이 생기고 욕망으로부터 분노가 생긴다.
63. 분노로부터 미혹이 일어나고 미혹으로부터 기억의 착란이 일어나나니, 기억의 착란으로 인해 지성의 파멸이 오며, 지성이 파멸되면 그는 망하도다.
64. 그러나 애욕과 증오를 벗어나 자신의 통제 아래 있는 감각기관들로 대상들을 오가며 자신을 다스린 자는 청정함에 이르리니,
65. 청정함 속에서 그는 모든 고통의 종식을 이룬다. 청정한 마음을 소유한 자에게는 지혜가 속히 확립되기 때문이다.
66. 제어되지 않은 자에게는 지혜가 없고 제어되지 않은 자에게는 수정(修定)이 없나니, 수정이 없는 자에게는 평안이 없으며, 평안이 없는 자에게 어찌 행복이 있겠는가?
67. 배회하는 감각들에 이끌리는 마음은 폭풍이 물 위의 배를 삼켜 버리듯 그의 지혜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68.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사방의 감각 대상들로부터 감각기관들을 거두어들인 사람은 지혜가 확고히 서 있는 자이다.
69. 모든 존재의 밤에 자제의 소유자는 깨어 있으며, 존재들이 깨어 있을 때 [진리를] 보는 성자에게는 밤이다.
70. 물이 바다로 들어가 채우나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욕망이 들어간 자는 평안을 얻지만, 욕망을 갈구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71. 모든 욕망을 던져 버리고 아무런 갈망 없이 행하는 사람, 내 것과 나라는 생각이 없는 자는 평안에 이르나니,
72. 이것이 브라만의 경지이다, 프르타의 아들이여. 이것을 얻으면 미혹됨이 없나니,
마지막 순간(죽음)에라도 거기에 확고히 서면 그는 브라만의 열반에 이르노라.
---「2장 이론의 요가」중에서
12. 훈련보다는 지혜가 더 좋으며, 지혜보다는 명상, 명상보다는 행위의 결과의 단념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포기는 즉시 평안을 낳는다.
13. 어떤 존재도 미워하지 않는 자, 다정하고 자비로우며 ‘나의 것’이나 ‘나’라는 생각 없이 괴로움과 즐거움에 평등하며 인내하는 자,
14. 항상 만족하는 요가행자, 자신을 제어하고 굳건한 결심으로 나에게 마음(의근)과 의식(지성)을 경주하고 나를 신애하는 자는 나에게 사랑스럽도다.
15. 그로 인해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그도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자, 기쁨과 조급함과 두려움과 동요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나에게 사랑스럽도다.
16. 바라는 것 없고 순결하며 능력 있고 초연하며 동요를 모르고 모든 일을 포기하고 나를 신애하는 자는 나에게 사랑스럽도다.
17. 기뻐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슬퍼하지도 않고 갈구하지도 않으며 좋고 나쁨을 던져 버리고 신애로 가득한 자는 나에게 사랑스럽도다.
18. 원수와 친구, 존경과 멸시를 동등하게 여기고 냉(冷)과 온(溫), 고(苦)와 낙(樂)을
동등하게 여기며 집착을 떠난 자,
19. 비난과 칭찬을 똑같이 여기며 말이 없고 무엇에나 만족하는 자, 주처가 없고 마음이 고정되고 신애로 가득한 자는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로다.
20. 그러나 이 법(진리)의 감로를 말한 대로 숭앙하며 믿음을 가지고 나를 최고로 삼아 신애하는 자들은 나에게 지극히 사랑스럽도다.
---「12장 신애의 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