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쉴 새 없이 정신을 흩뜨리는 가운데, 공공성의 측면에서 미술관의 역할이 실로 시험대에 오른 시대입니다. 팬데믹으로 분명 이런 추세에 탄력이 붙었죠. 대중의 접근을 확대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관객의 변화한 습성에 부응하는 방법으로, 말 그대로 미술을 사람들의 ‘집’으로 가져다 줍니다. ‘워치 앤 칠’은 미술관, 작가, 관객의 경로가 교차하는 플랫폼으로서, 그러한 교류를 가능케 하는 매개물이 되도록 기획되었습니다.
--- 「큐레이터들의 이야기 / 칠chill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 집에서 당신의 집으로, 스트리밍 하는 미술, 이지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중에서
입장객들을 처음 맞이하는 방은 ‘거실의 사물들’ Things in My Living Room 이며, 매우 긴 심연으로 내려가는 듯한 지하계단을 통해 나머지 3개의 방이 층을 바꾸어 연결된다. 첫 번째 방과 이후 진입하게 되는 ‘내 곁의 누군가’ By the Other Being 의 방에서는 가장 내밀한 공간 안에 반드시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낯설고도 친숙한 타자와 사물-객체의 존재가 부각되어 제시된다면, 이러한 언캐니 한 상황은 다음 공간인 ‘집의 공동체’ Community of Houses 와‘메타-홈’ Meta-Home 에서 점차 그 외연을 확장해나간다. 전시되는 개별 작품은 모두 영상이지만, 그 작품들의 수용 방식 및 구성 자체가 새로운 조건 하에서 ‘우리 집’을 은유하는 이번 전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 「나만 아는 이야기 1부 / 체험하는 미술관, 사적 공간으로 구겨져 들어오다, 유현주(연세대학교 교수)」 중에서
권태현: 그런 관점에서는 분명 성공적으로 작동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연구한 레퍼런스나, 구체적인 시각화 전략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WORKS: 넷플릭스나 왓챠 등의 OTT 서비스의 비주얼 컨셉트가 국립현대미술관 이지회 학예연구사와 워크스 모두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레퍼런스였습니다. 특히, 그것들의 전체적인 이미지보다는 사용자가 콘텐츠에 다다르는 단계나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위한 위계를 설계하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큰 영감을 받았어요. 그러한 레퍼런스 연구를 기반으로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정보만을 남기고, 나머지 요소들을 소거한 뒤 개념적으로 비트는 방식으로 레퍼런스를 활용했습니다.
---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와의 대화, 권태현(독립 큐레이터)」 중에서
영상 작품을 전시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내게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 느껴진다. 내가 앉아있거나 서있는 시공간이 내가 설정하는 감각과 장소로 바뀌고, 매체에 다이빙하는 것. 네트에 액세스. 그 몰입은 쉽게 깨질 수도 있고, 오랜 시간 지속될 수도 있는데, 이는 나의 경험치와 집중력 등에 따라 언제든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종류의 감각이다. 게다가 주변 설정을 바꿔가며 다양한 경로로 진입해 감상하는 방식은 또 다른 작품의 방향성과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었고, 감각을 확장하는 통로가 되었다.
--- 「‘집’에 대한 소고 / 집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윤향로(작가)」 중에서
주거는 인간의 생활 방식이고 거주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나는 주거한다는 감각보다 거주한다는 감각에 더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 하이데거는 ‘거주’의 개념에 관해 이를 ‘세계 내 존재’로 치환했고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간을 ‘임시적’으로 사유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이 세계를 잠깐 머물다 갈 운명인 것 이다. 그 밖에 다른 가능성이 침투할 일은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바깥과 주변이 좁아진다. 그리고 바깥과 주변이 좁아질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차 소외되고 방치된다.
--- 「‘집’에 대한 소고 발코니와 거실 사이, 이기리(시인)」 중에서
분명 누군가는 이 플랫폼이 가진 장점들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며 작업들을 향유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나 내게 이 생각은 결국 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대해 재고하게끔 할 따름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기술적인 가능성과 제약이, 특정한 개인-가령, 돌봄 노동자 또는 예술감상에 대한 동기를 충분히 부여 받지 못한 이들-을 암묵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내게 어떤 작업이나 웹사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작성한 메모로 오늘의 일기를 대신한다.
--- 「온라인 플랫폼 경험에 관한 다섯 편의 일기, 조은비(독립 큐레이터)」 중에서
‘워치 앤 칠’ 플랫폼 같은 방구석 미술관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지금은 뛰어넘을 수 없을 듯이 느껴지는 여러 한계는, 촬영과 디스플레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점차 극복되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비디오 미술에 관한 일반의 인식도 어떻게든 바뀔 것이다. 우리는 머잖아 집에서도 큰 디스플레이로 빌 비올라의 스펙터클 한 비디오 작품을 감상하게 될 것이고, 조지 시걸의 등신대 조각들을 가상 현실을 통해 집안으로 불러들일 것이고, 고해상도 모니터가 잭슨 폴록의 어지러운 물감뿌린 자국과 색채의 미세한 변화까지 잡아내 집 거실을 명화의 방구석미술관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 「방구석 미술관, 머잖아 우리가 도달할 곳, 백민석(소설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