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몸은 정말 내 것일까?
내 몸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나의 것이다.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 몸이 정말 나의 것이라면, 일상 속 여러 경험 속에서 내 몸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데카르트와 사르트르의 예와 함께 질문에 철학적으로 다가가 본다.
2.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내 몸이 나의 것이라면 온전히 내 통제 하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늘 따라주지만은 않는다. 육체에는 한계와 제약이 있다. 플라톤을 비롯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의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보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철학자들은 육체를 다스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육체가 곧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3. 거울 속에 비친게 정말 나일까?
내 몸이 곧 나라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내가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들이 보는 것은 내 외면적 이미지이다. 이러한 괴리를 자각하는 단계를 자크 라캉은 ‘거울 단계’라고 했다. 인간의 발달 과정 중, 거울 단계를 지나며 인간은 정신적 성숙을 이룬다.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가 너무도 다를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미셸 푸코의 예와 함께 살펴본다.
4. 사람들은 왜 사랑을 나눌까?
사랑을 나누는 것은 외면적 나, 즉 ‘내 몸’과 화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에로티시즘의 관점에서 성애를 통해, 나의 내면과 깊숙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 성애란 육체적 한계를 넘은 두 존재의 융합이라는 조르주 바타유의 이론을 다룬다.
5. 내 몸이 나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종종 내 몸은 나의 의사에 반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나의 정신을 반영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6. 내 몸은 왜 이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앞서 보았듯, 내 몸은 개인적인 정신 현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타인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인류 사회적 관점에서 인간의 몸을 살펴본다. 내 몸은 사회적 산물이다. 내가 속한 가정, 사회, 주변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쓰는 언어와 어조, 나의 태도, 여유 또는 소극성도 마찬가지다.
7. 왜 나는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사회적 표준에 해당하지 않는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내 몸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할 때, 내 몸이 소외나 폭력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영화 〈앨리펀트 맨〉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남들과 다른 외모가 사회적 삶을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적 소외, 인종차별주의를 비롯한 사회적 차별을 경계해야 함을 지적한다.
8.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일까?
사회, 종교, 정치적 규범에서 벗어난 몸에는 낙인이 찍힌다. 인류 역사 속에서 노예, 아이, 여성의 몸은 자신이 아닌 외부(주인, 부모, 남편)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고, 폭력의 대상이었다. 반면, 보다 눈에 띄지 않지만 더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낙인찍기의 방법도 존재한다. 바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성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이다.
9. 내 몸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려면?
앞에서 빼앗긴 몸의 주체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9장에서는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한 정치적 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날 여성운동과 함께,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던 시니시즘(견유학파) -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반체제 운동 - 도 함께 소개한다.
10. 내 몸을 변형할 수도 있을까?
수년 전부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몸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몸은 새로운 실험과 기술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생명공학과 인공보철구로 신체적 능력이 강회된 트랜스 휴머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이면에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 법은 가진 거라곤 자신의 몸 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물질주의 논리에 맞서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누구나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