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1831년 여름, 마지막으로 종교철학을 강의했다. 이는 그해 11월 14일,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이다. 이 강의는 삼위일체에 관한 사변신학과 자유에 관한 정치신학을 결합함으로써 우파와 좌파를 매개하는 사변신학을 정초하고 있다. 여기서는 유한한 종교들에 관한 논의도 대폭 수정되고 있다. 이 강의의 필기록은 모두 소실되었다. 하지만 1831년 가을, 헤겔에게 수학하고자 베를린에 왔던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가 그 필기록 중 하나를 발췌한 것이 있는데, 최근에 그것이 새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만으로 1831년 강의 전체를 복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의 1장에서 나는 헤겔의 논리학은 경험을 해독하기 위한 해석학적 열쇠의 기능을 한다고, 그는 논리학을 일종의 발견적 장치의 열쇠로 삼고 그것을 실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1830년대와 1840년대에 나온 원전비평 연구판 전집은 하나의 완성된 통일적 체계의 부분을 이루는 다양한 철학 주제들에 관한 그의 강의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헤겔은 과거에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는 혁신적인 정신으로 강의했다. 이는 다른 어떤 주제보다 종교라는 주제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이다. 종교들의 역사에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도식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 주제를 다양한 해석적 배열을 시도해야 할 실험적 영역으로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자료와 실험 결과들이 생겨날 때마다 그것까지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식을 구상했는데, 왜냐하면 사변철학이란 곧 논리적 심층구조와의 개념적 유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리적 심층구조는 새로운 통찰에 이르도록 도와주며, 연관들, 차이들, 유형들, 경향들, 방향들을 올바로 파악하도록 도와주고, 무한히 풍부한 경험을 좀 더 충분히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는 경험적 기술의 방식보다 상상적 구성을 방식을 통해 인간 세계의 진리를 드러낸다.
---「제1부 2장 헤겔의 종교 관련 저작들 “《종교철학》의 네 가지 판본”」중에서
1827년 《종교철학》은 종교철학이 취하는 학문의 방법과 ‘개념의 자기 전개’라 할 수 있는 그 내용 사이의 동일성을 확립함으로써 그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다(1:174). 이는 진리와 방법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것 그리고 학문의 순서와 절차는 그 주제 자체의 운동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철학의 첫 논의대상은 종교의 개념 자체다. 둘째 논의대상은 그 개념의 유한한 형태들, 즉 특정한 형태들로 나타난 개념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종교의 개념 안에 이미 들어 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개념은 마치 나무 전체를 키워나가는 한 톨의 씨앗과 같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각의 형태들은 개념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며, 그것은 순서에 따라 특정한 실존 형태로 등장한다. 이러한 등장은 외부로부터 그 개념에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자신을 특정한 형태들로 펼쳐나가는 자유로운 개념이다. 처음에는 유한한 형태의 종교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개념의 전개는 “자신의 한정성과 유한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향해 나아간다. […] 이렇게 재확립된 개념이 무한자, 참된 개념, 절대적 이념, 즉 참된 종교다”(1:175-176).
이러한 개념의 자기복귀는 개념을 출현시킨 역사적 규정을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교와 같은 역사 속의 특정한 종교가 어떻게 절대 종교, 참된 종교, 완성된 종교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교 역시 지금 현존하고 있는 종교에 불과하며,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종교로 이해되어야 한다(1:141).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형태들과 헤겔이 《종교철학》 제3부에서 (사변적으로) 재서술한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사실 팽팽한 긴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 역시 그리스도교야말로 종교의 개념에 가장 적합한 종교라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의 개념을 역사 속에 완성하는 출발점이 왜 꼭 하나의 종교이어야 하는가? 헤겔이 사변적으로 재구상한 ‘구체적 정신’(파울 틸리히의 표현)의 종교가 그 개념을 설명하기에 더 그럴듯하고 적합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구체적 정신은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종교의 개념은 역사 전체를 기반으로 형성된다. 헤겔 역시 종교들의 역사가 그리스도교에서 완성되는 직선적 궤도로 배열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양한 종교들로부터 완성된 종교가 등장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역사적으로 현존하면서도 더 이상 특정하거나 유한하지 않은 종교의 이념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10장에서 다시 한 번 깊이 다룰 것이다.
종교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신에 대한 개념이거나 신과 인간 모두에 대한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이 바로 헤겔이 ‘정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정신이 지닌 추상적이고, 논리적이고, 잠재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개념, 즉 개념의 역사적 실현과정과 개념의 자기 복귀 과정 전반을 지배하는 운동이 바로 정신이다.
---「제2부 4장 그리스도교와 종교의 개념 “《종교철학》의 세 부분”」중에서
헤겔은 1821년 《종교철학》의 “종교의 개념” 마지막 부분의 소제목을 삭제하고(1:255 n. 185), 거기에 《종교철학》 제2부에서 종교의 개념은 ‘유한한 양상들로 파악될 것’이며, 그러한 양상들이 ‘절대적 이념에 관한 의식의 형태들’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유한한 종교” 부분에서 ‘종교현상학’이 전개될 것이라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종교현상학이란 종교들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고 발전하는 절대적 이념의 전개과정 각각에 해당하는 의식형태들을 다루는 것이다. 비록 그 자료들은 역사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거기서는 역사적 설명보다 종교적 의식의 단계들에 관한 철학적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서술방식은 현상학적이면서 동시에 사변적이다. 그것이 현상학적인 이유는 구체적인 종교적 의식의 단계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며, 그것이 사변적인 이유는 해석적 관점이란 이미 절대적 이념의 단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서술에는 두 부류의 분석적 범주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종교 내적인 범주고, 다른 하나는 종교 외적인 범주다. 종교 내적인 범주는 종교의 세 가지 양상들, ① 신에 관한 종교의 추상적 개념(이는 신 존재 증명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② 신이 종교의 경전들이나 상징들에서 표상적으로 드러나는 방식들, ③ 신적인 공동체가 확립되는 실천적 관계와 일치한다. 이를 더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가 지닌 형이상학적 개념, ② 종교의 구체적 표상들, ③ 종교의 제의. 처음에 그는 두 단계의 도식을 구상했는데, 그 도식에서는 ②와 ③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2:94 incl. n. 5). 세 단계 구분은 오로지 유한한 종교들을 논의하는 과정에만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완성된 종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제2부 10장 그리스도교와 다양한 세계 종교 “”유한한 종교“에 관한 네 가지 해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