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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

: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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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848g | 152*223*30mm
ISBN13 9791192267012
ISBN10 119226701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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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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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도 돌계단을 올라 배재학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이 한민족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승만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건물 안 넓은 복도에는 스무 개의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 p.20

고종은 연회를 아주 좋아했고 민비는 허약한 세자를 위해 수시로 고사를 지냈는데, 가난한 조선으로서는 버거운 비용이었다. 고종과 민비가 쓴 돈 가운데 과학과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 p.42

이승만은 8년간 열 한 번의 과거에 응시했다. 그 중에는 남의 답안을 대신 써주어 부잣집 자제를 진사로 만들어준 경우도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가 자존심 강한 선비를 그렇게 내몰았다. 또한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너무 만연해 범죄로도 인식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 p.53~54

이승만의 졸업식 연설은 기록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첫 영어 연설이다. 그에 대한 평판은 이승만의 자긍심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장차 현실 정치에 투신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 p.67

이승만은 수시로 주리가 틀리는 고문을 받았다. 즉 뒤로 돌려진 팔을 살 속으로 파고드는 끈으로 꽉 묶고, 무릎을 꿇은 다리 사이에 두 개의 나무를 끼운 뒤 통나무로 내리쳤다. 때로는 날카롭게 깎은 대나무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뼈에서 살점이 떨어지도록 눌렀다. 마루 위에 엎어 놓고 살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대나무로 후려치기도 했다.
--- p.88

이승만은 망국의 근본 원인이 천 년 이상에 걸친 전제정치라고 진단했다. 전제정치는 한두 사람이 백만 명 위에 걸터앉아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꼴이다. 노예근성에 찌든 백성은 나라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진맥진하여 타국인이 행패를 부려도 저항할 줄 모른다.
--- p.102

그런데 이 착한 한국인들에게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북 출신과 기호 출신들 사이의 심각한 지역감정이었다. 교민단체도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 둘로 나뉘어 있었다. 공립협회에는 서북 출신들이 보국회에는 기호 출신들이 많았다.
--- p.129

이승만이 대통령직을 사임 않고 버틴 것은 독립운동의 궤도 이탈을 막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시정부를 공산주의 혁명에 악용하려는 자들을 경계했다. 그는 사임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임시정부에 전보를 보내 ‘공산당과 혼잡 마시오’라고 경고했다.
--- p.232

국제연맹 총회는 만주국을 부인하는 19인위원회 보고서를 41대 1로 채택했다. 반대 1표는 물론 일본이었다. 이승만의 눈부신 승리였다. 그는 여느 독립 국가 대표 못지않은 외교 역량을 발휘하며 워싱턴회의에서의 실패를 깨끗이 만회했다.
--- p.270

1935년 1월 25일, 드디어 수평선 위로 하와이 오하우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이승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 말씀까지 되새겼다. 그런데 항구에 가까워지자 부두 위에 수많은 한인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남자들은 양복 정장을, 여자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서툴게 쓴 환영 문구도 들고 있었다. 순간 이승만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선한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
--- p.279

김원봉은 중국 군부 안에 강력한 인맥이 있었다. 그의 황포군관학교 동문들이 각지에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김원봉이 황포군관학교 4기로 입학할 때 교장이 장개석이었다. 장개석과 일면식도 없었던 김구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광복군 승인은 계속 지연되었다.
--- p.303

pp.306~307 미국 국무부의 임시정부 불승인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여론 지도층 내의 막강한 인맥을 이용해 줄기차게 국무부를 압박했다. 이승만에게 시달린 국무부 관리들이 그를 ‘독립에 미친 늙은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 p.306~307

일본 육군은 소련군이 참전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여러 차례 입수하고도 내각에 보고하지 않았다. 일본 육군의 이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수많은 일본 국민이 목숨을 잃고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미군은 남한의 부족한 식량과 석탄을 미국, 일본에서 실어 오고 북한이 전력을 끊은 뒤에는 발전선까지 동원해 전기를 공급했다. 군정 기간은 물론 건국 이후에도 대한민국 예산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했다. 그런데 뭐 하나 빼앗아 간 게 없는 미군은 점령군이고 약탈자인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할 때, 두 군대의 포고문은 좋은 선전자료가 된다.
--- p.336~337

유어만 총영사는 그동안 후원했던 김구의 변한 모습에 화가 났던지 대화록을 이승만에게 전달했다. 이 문서는 훗날 이화장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되었다. 대화록을 공개해 김구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지만, 이승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형제처럼 여겼던 박용만에 이어 김구마저 잃고 싶지 않았으리라.
--- p.375

토지개혁으로 이 땅의 농민들이 더이상 양반과 상놈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실질적인 자유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뒤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신분 상승을 위해 줄달음치는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두 세대에 걸친 고도성장의 출발점은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
--- p.399

미국은 이승만의 퇴진을 원했다. 어떻게든 한국전쟁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발목을 잡는 이승만 때문에 힘겨웠던 것이다. 미국은 1952년 대선에서 이승만을 패배시키고 유화적인 인물을 당선시키면 휴전협정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승만을 대체할 인물을 찾았다. 장면, 조병옥, 김성수, 장택상 등이 후보였다. 여러 미 정부 기관들이 계속 이들과 접촉하며 모종의 암시를 전했다. 이승만은 야당뿐 아니라 미국과도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 p.442~443

발췌 개헌은 이승만 독재정치의 출발점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발췌 개헌의 내용은 대통령 선출 권한을 소수의 기득권층에게서 빼앗아 모든 국민에게 넘기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승만의 업적 중 하나로 대통령 직선제를 꼽기도 한다.
--- p.444

반공포로 석방에 미국 등 참전국 정상들이 격분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덜레스 국무장관이 “최악의 경우 전면전이 불가피하고 자칫 핵폭탄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처칠 영국 총리는 면도를 하다 놀라 얼굴을 베었다고 전해진다. 처칠은 이승만을 배반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미국에 이승만을 즉시 구속하거나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 p.449

시슬러가 말했다.
“대통령 각하, 이게 핵연료봉입니다. 같은 무게 석탄보다 300만 배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만드는 거요?”
“석탄은 땅에서 캐지만, 원자력은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과학기술자를 훈련 시켜야 합니다.”
이승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해 원자력을 상용화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소?”
“한 20년 걸릴 겁니다.”
이승만은 원자력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러나 끼니도 해결 못 하는 나라가 강대국들이나 겨우 보유한 원자력에 도전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p.458

p.458 그날 경향신문은 ‘이 박사 부처 돌연 하와이로 망명’이라는 제목 아래 이승만이 망명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승만의 (퇴임) 소감은 ‘이제 무슨 말을 하겠소. 그대로 떠나게 해주오’로 바뀌어 있었다.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행을 간 것이라고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신문들은 이승만이 망명한 것으로 대못질을 했다.
--- p.458

이승만은 여전히 조국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행하기에 심신이 모두 감당할 수도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됐습니다. 바라옵건대 한국 민족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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