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궤변, 오만, 독선, 혐오, 증오, 분노, 내로남불, 갈라치기, 편가르기, 이중잣대, 낙인찍기, 내편 네편, 세대 갈등, 남녀 갈등, 확증 편향, 진영논리, 냉소, 분열, 정치적 도덕적 부족주의, 이념 대립, 불신, 독단, 아전인수, 견강부회, 불통’ 같은 현상에는 말(언어) 문제가 놓여 있다. 대중사회는 언어로 연결된 언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 ‘연결 상태’의 맞고 틀림,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이 문제이다. 말은 이미 있는 현실을 비추는 기호가 아니라 현실을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드러내고 규정한다. 현실이 혼란스러워 언어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동시에 언어가 혼란스러워 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삶과 공동체의 질서는 언어의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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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질’, ‘꼰대 공포증’, ‘안티 꼰대’, ‘꼰대 정당’, ‘꼰대 감별사’, ‘꼰대 이미지 쇄신’, ‘젊은 꼰대’.
일상에서 자주 쓰기 때문에 매스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지, 매스미디어에 자주 쓰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지 알기 어렵지만 꼰대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쓰인다. ‘꼰대’는 매우 불편한 낙인(烙印,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 같은 말이 되고 있다. 누군가 상대방을 꼰대라고 단정하면, 그 규정이 맞든 틀리든 옳든 그르든, 기분을 몹시 상하게 만든다. 이는 꼰대라는 말에서 받는 느낌, 즉 어감(뉘앙스)이 불쾌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꼰대는 ‘나이 든 늙은이’를 가리키는 속어였지만 그냥 속어가 아니라 비속어, 즉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낮추는 말이다.
나는 꼰대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꼰질꼰질(하는 짓이 너무 꼼꼼하고 갑갑한 모양)’, ‘꼴값(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격에 맞지 아니하는 아니꼬운 행동)’, ‘꼴같잖다(생김새나 됨됨이가 같잖다)’, ‘꼴사납다(모양이나 하는 짓이 보기에 흉하다)’, ‘꼼수(쩨쩨한 수단이나 방법)’, ‘아니꼽다(비위가 뒤집혀 구역이 날 듯하다. 같잖은 언행이 눈에 거슬려 불쾌하다)’ 같은 말이 떠오른다. 이런 말들은 꼰대에서 연상되는 말이나 행동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늙은 사람이라고 했을 때 반드시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몇 살부터 늙은이 또는 노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적당한지는 명확하지 않다) 꼰대는 늙은이 또는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특수한 말로 각인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꼰대라고 부르거나 규정하는 주체 또는 상대방은 젊은이 또는 젊은 세대가 된다. 어떤 세대가 다른 어떤 세대를 겨냥해 업신여기는 말로는 꼰대가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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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仁)’이라는 말은 동양이나 서양 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의 바람직한 성품으로서 가장 높은 차원일 것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람됨의 시작은 인(仁)에서 시작해서 인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그 의미가 무척 컸다. 인(仁)을 주제로 하는 책이나 논문은 너무나 많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인(仁)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에 대해서는 동양철학을 전공했다는 나부터 선명하지 않다.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국어사전의 풀이는 막연하여 인(仁)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어질다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여 슬기롭고 덕이 높다’라고 풀이하는데, 이 또한 두루뭉술한 인격을 말하는 것 같아 잘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인(仁)이라고 하면 공자와 맹자 등으로 대표되는 유학(儒學)이나 유가(儒家)를 떠올리기 쉽지만 인(仁)은 유학이 독점할 개념이 아니다. 인(仁)은 공자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경』과 『서경』에 나타나는 점으로 미뤄 뿌리가 매우 깊다. 『시경』에는 2회 언급되는데 모두 어떤 사람을 가리켜 “아름답고 멋진(美且仁. 미차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서경』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인인(仁人) 등 5회 언급된다. 『시경』과 『서경』에서 인(仁)은 특별히 강조되는 덕목이 아니라 ‘훌륭한 인품’정도로 간단히 언급되는 수준이다. 공자보다 200년 앞서는 『관자』라는 문헌(관포지교 고사의 주인공인 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 관중의 사상을 담은 책)에도 인의(仁義)는 올바른 사람됨의 성품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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