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자존감은 이런 결론을 내려 버렸다.
‘야, 너 정말 구려. 넌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얘.’
하지만 이런 일반화에 세뇌되고 나면 더 큰 문제가 다가온다. 제대로 된 사람이 다가와도 내 자존감이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또 버릴지도 몰라, 이 사람이 내 실체를 알면 달아날 거야, 하고 불필요한 피해 의식에 지레 겁을 먹고는 시작도 되기 전에 연애를 망쳐버린다.
--- 「1부, 모든 연애는 교훈을 남긴다」 중에서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20대의 나 또한 누군가와 헤어지면 몹시도 견디기가 힘들어 소개팅을 줄줄이 받고, 클럽에 가서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술을 왕창 마시면서 이별의 고통을 떨치려 몸부림쳤었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서. 상실의 고통을 하루라도 망각하기 위해서. 그래야지만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를 위한 일이니까, 어쨌든 내가 안 아픈 게 최선이니까, 덜 아플 수만 있다면 뭐든 쓸모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방법들이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내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가 없어서 하는 행동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이제는 생생함을 잃은 텁텁한 마음의 어른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인연들과 제대로 이별을 경험할 기회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로 인한 깨달음만큼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별을 하고 아파할 때면, 나도 엘리오의 아버지처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슬프고 고통스럽겠지만 그 감정들을 없애려 하지 말렴. 엄마는 너무 빨리 잊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거든.”
--- 「1부. 모든 연애는 교훈을 남긴다」 중에서
사랑은 이토록 인생에 절대 가볍지 않은 어떤 족적을 남기는 것.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던 루이 14세처럼, 우리 모두는 전혀 모르던 완전한 ‘남’을 가장 내밀한 관계로 받아들여, 그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모른다.
--- 「1부. 모든 연애는 교훈을 남긴다」 중에서
문화는 그런 것이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한 사람의 사고를 제한하고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문화는 그렇게 말없이 조용하게, 개개인의 사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진득하게 배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정답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내 나라의 문화가 실은 작은 요강만 한 크기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답답하다고 느끼면서도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을 저 나라의 여성들은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니. 부럽고, 억울하고, 때로는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기쁘기도 했다.
연애에서 성性으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한국만의 특이한 관념들은, 남녀 모두의 사고를 제한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소극적이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결혼 전의 다양한 성 경험은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어른들 아래서 자라온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여자의 최고 무기는 ‘정조’라는 세뇌를 품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만났던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자기 외에 몇 명이랑 자봤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궁금해했고 그때마다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다. 남녀가 합의하에 나누는 섹스를 두고 한국의 어른들은 ‘여자가 몸을 준다’는 표현으로 겁을 주었고, 내 또래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성 경험을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20대를 보냈다.
--- 「2부. 사랑, 꼭 한 가지 결이어야 하나요」 중에서
이것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단지 출산을 위한 도구로 반려자를 선택하는 것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는 것보다 과연 정말 더 건강한 일일까? 일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반려자를 아이 때문에 대충 고르고, 평생 불화 속에 산다고 해도, 그래도 아이에겐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토록 필요하다고 우리는 배워왔으니까? 아니면 결혼을 못 할 바엔 그토록 원하는 아기쯤은 꿈도 꾸지 말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사회 통념상 결혼이 먼저니까?
사회가 정의하는 대로 살아야만 맞다고 믿었던 사람들, 그래서 혼기가 차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아이를 낳았던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용기 있고 다소 파격적인 행보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는 거,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잘못은 자신과 다른 선택이 ‘틀린 것’이라며 돌을 던지는 폭력성이다. 정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좀 다르네”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것을 줄여 우리는 존중이라 부른다. 소수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 힘들어하는 건, 이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해서임을 그들은 알까.
--- 「2부. 사랑, 꼭 한 가지 결이어야 하나요」 중에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오래 사랑할 사람. 그것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열등한 표현이 아니었음을. 오히려 '많이' 사랑하는 것보다 '오래' 사랑하는 것이 더 견고하고 커다란 감정이라는 것을. 아주 다행히도 나는 정말 한결같이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했으니, 성공이라고 봐야 할까.
--- 「3부. 결혼, 또다른 연애의 시작」 중에서
엄마 아빠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 만한, 완벽하고도 바르며 보송보송한 사랑만을 한다면, 과연 그 사람의 인생이 잘 살아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런 상처도 굴곡도 없이 평행선만을 그리고 산다면, 그것이 과연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쓰며, 나는 ‘사랑’이란 게 그 영화에서 그토록 할머니가 알고 싶어 하던 ‘시’의 본질과 비슷하다는 걸 절절히 느꼈다. 사랑은 원래 예쁘지 않구나. 사랑받은 기억, 따뜻하고 반짝이는 기억만으로 점철되어있지도 않구나. 사랑은 상처와 고통을 동반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 고통으로 인생이 흔들리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순간들을 발굴해내는 아주 지난한 과정이구나.
--- 「3부. 결혼, 또다른 연애의 시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