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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꾼의 아들 2

매장꾼의 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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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526g | 128*188*30mm
ISBN13 9791189437336
ISBN10 118943733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갑자기 시간이 멈췄다. 노파는 마치 얼어붙은 비석처럼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뜨거운 난로에 손이 데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을 놓아 버리고, 사색이 되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동작으로 파린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몸을 벌벌 떨며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움켜쥐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떨림은 진짜였다.
이제 파린도 호기심이 생겼다. “뭐가 보였나요?”
노파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앉아라, 파린.” 그녀가 단호하게 말하며 등받이가 없는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파린은 계속해서 노파를 주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왠지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긴장과 걱정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드디어 왔구나!”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진지하게 들어라. 난 네가 훨씬 더 나이가 들었을 줄 알았어. 그러니 이제야 널 찾은 게 어쩌면 당연하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네가 바로 뼈를 보는 사람이야. 벌써 예언자를 만났느냐?”
아주 훌륭해. 못 보던 전략인데. 징글징글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나의 스승이 오랜 옛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준비해 두었지. 안타깝게도 그분은 3년 전에 어디론가 사라졌어. 그리고 그녀가 얼마 전 나벤슈타인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는 소문이 들렸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그녀는 계속해서 같은 예언을 해 왔어.” 노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예언이란 멍청한 짓이지. 기껏해야 자신의 미래도 보지 못하면서.
“어떤 예언이었는데요?” 어떤 육감이 자꾸만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지금 이 천막 안에서 뭔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뭔가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그들이 너에게 올 것이다. 뼈를 보는 사람을 제시간에 예언가와 만나게 하여라. 악령과 환영의 동맹만이 벨텐 제국을 지옥 불에서 보호할 수 있어.”
황당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지만 그녀는 분명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노파의 말은 파린의 마음에 와닿기까지 했다.
노파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처음엔 네가 아닌 줄 알았어. 예언은 늘 ‘그들이 너에게 올 것이다’였으니까. 나는 두 명이 나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고, 넌 그냥 지나다 우연히 들어온 사람인 줄 알았다.”
“무엇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는데요?”
“네 손을 잡았을 때.” 그녀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넌 혼자가 아니야. 두 명이지. 그리고 너희들 중 한 명은 뼈를 보는 사람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악령이구나.”
‘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잠자코 있었다. 징글징글도 아무 말 없이 둘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저는 그냥 매장꾼일 뿐인걸요.” 파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네 대답이 오히려 내 말이 옳음을 입증해 주는구나. 너에겐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어. 그렇지?”
‘사람들은 누구나 심정지로 죽죠.’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체 스승은 어떤 분이셨죠?” 파린이 물었다.
“아주 특별한 여인이었지. 대양의 반대편 머나먼 나라에서 온 마법사였어. 나는 스승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단다.”
몇 달 전이었다면 파린은 이 노파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의 믿을 수 없는 경험이 그를 변하게 했고, 이제는 예전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노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터놓고 싶지는 않았다. “마법사라고 하셨어요? 동화책에 용과 요정과 함께 등장하는 마법사 말인가요?”
“그렇다고 해 두지.” 그녀가 받아쳤다. “악령에 관한 음울한 이야기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 그녀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파린을 응시했다. “숨바꼭질 따위나 하고 있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해. 네 안에 그것이 있는 걸 알아. 그걸 숨기려 너 자신이 숨는 짓은 하지 마.”
그녀는 홀짝이며 차를 들이켰다. “네가 가는 길을 내가 도울 수 있어.”
지금까지 파린은 아무에게도 비밀을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기이한 노파가 그의 비밀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두려울 정도로 가까이. “오늘 점괘는 이 정도로 끝내죠.” 파린이 최대한 심드렁한 척 말했다.
“좋아. 뼈를 보는 사람. 네가 날 믿지 못하는 것 이해해. 하지만 그렇다고 네게 주어진 숙명을 피할 수는 없어.”
“운명이 준비해 놓은 좁은 오솔길을 제가 걷고 있다는 말이죠? 저도 알아요.” 그는 자신이 그런 말 따위 믿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하품을 했다.
“내 말이 너무 큰 부담이 된다는 거 알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곧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거야. 그때 날 불러. 그럼 널 도와주마.”
내가 너무 심했나? 그녀는 굳은 얼굴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린은 혼란을 느끼며 일어서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노파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나는 파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p.1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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