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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걷는사람 시인선-061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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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66g | 125*200*10mm
ISBN13 9791192333106
ISBN10 119233310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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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기 싫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집 말고 다른 장소를 갖고 싶어서

회사 집 회사 집
무한 반복이 싫어서

캠핑 의자를 산 너의 마음도
나의 마음 아닐까

가을이 오고 있네
가을이 오면 플라타너스 커다란 잎들이 너의 의자 옆에서 마구 뒹굴고 그럴까

혼자였는데 더 혼자가 되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 「캠핑 의자」 중에서

아버지는 병원에 계시고
어머니는 우리를 불러 모았다

춥다,
너희 아버지가
이렇게 따뜻한 사람인 줄 몰랐다

우리는 다 모였으나
아버지만큼 따뜻했을까
--- 「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중에서

어느 날 어머니는 무언가를 끓이다
냄비를 태우고 말았다. 그냥 수세미로는
지울 수 없었던, 어머니의 부탁으로 나는
힘들게 그것을 지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실수는 할 수 있으니까.

다른 날엔 무언가 끓어 넘쳤다. 쯔쯔,
아버지는 혀를 차시며 화를 내었다.
정신이 어디 가 있느냐면서,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이제 동시에 무언가를
할 수가 없구나, 어머니는 잠시 맥을 놓았다.
아버지의 타박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풀죽은 모습으로.

나는 먼 옛날의 어머니처럼 여러 개의 음식을
동시에 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아직 젊다. 하지만 나의 이 젊음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한다.
--- 「밥하기」 중에서

노인을 본다
나의 미래를 본다
섬뜩하다

옆에 있는 미래를 보고도
현재는 변하는 게 없다

미래가 후회하는 과거를
현재가 살아가고 있다

사라진 다음 후회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과거에 대해 말한 거지만
미래에 대해 말한 것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날아온 사람처럼
아버지가 서 있다
--- 「당신은 미래에서 온 사람」 중에서


그분은
당신이 탄생시킨 모든 것에 대해
사랑을 말하십니다.
사랑해서 낳은 거고
나 혼자 외로울까 다른 이를 낳은 거라고.
세상에 없던 우리를
먼저 사랑했다고 합니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남을 당한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사랑했을 겁니다.
그래서 외로웠을 거예요.
--- 「그분은 외로웠을 거예요」 중에서

소리가 들리는 내 왼손을 향해
내 다리를 붙잡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허공으로 머리를 뻗었습니다
목이 빠질 정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동안 울었던 것은
다른 고양이를 찾고 있었던 걸까요

자기 목소리인데
자기 목소리인 줄 모르고
내 다리에 엉겨 붙었습니다

외로움은
쓸쓸함은
힘이 셉니다
--- 「외로움은 힘이 셉니다」 중에서

외롭다는 말을 종이에 적었다

종이에 적어 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어서
종이에 적어 본 것이다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나와 햇살이 오래 들여다보았다
--- 「오래 들여다보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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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다정하다. 외로움은 시의 공명통이어서 현을 흔드는 미세한 소리들에도 전폭적으로 반응할 줄 알게 한다. 심지어 가청권 바깥으로 밀려난 여리고 흐릿한 이름들과 기억들, 저 너머로 추방당한 숨결들에 제 얼굴을 찾아 줄 줄 안다. 미래의 성과를 위해 현재를 말소시키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서 외로움은 잘 벼린 지각의 한 방식이기도 하여 아슴아슴한 통증을 통해 우리는 희미하게 존재하는 사물들의 기척과 기미, 기운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시인에게 외로움은 그래서 결핍과 부재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자기인식으로서의 가능성을 품은 꿈의 장소가 된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모든 걸 사랑하는 것일까」처럼 언어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변두리 잡초’에게 ‘돌나물꽃’이란 이름을 찾아 줄 때 상추로만 단일화된 「텃밭」의 일상은 더욱 풍성해지고, 무한반복의 나열적 삶에 놓인 「캠핑 의자」의 소모되는 차이를 성찰할 때 가치 있는 차이의 가능성이 회복된다. “우울함에 피곤함이 도금”된 자본과 속도의 휘황찬란을 통과하는 시는 또한 직선이 아닌 커브여서 “돌 때 부드럽지 못하고/쇳소리를 내며/불꽃을”(「나라는 관성」) 튀기기도 한다. 시의 외로움이 일으키는 불꽃은 마침내 “무엇이 남는다면 결국/쓸모없는 것으로” 폐기되는 쓸모의 왕국에서의 ‘다시 만날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한 「산책」으로 이어진다. 언뜻 수월한 것으로만 보이는 산책은 웅숭깊고 다감하며 여럿 미감들이 와서 놀게 하는 의미의 공터를 품고 있다. 「크로스바」의 부조리를 알게 된 높이뛰기 선수가 국어를 가르치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시를 쓴다. 방풍나물에「젖은 손」 끝의 향이 묻어나는 시집에 하마터면 코끝이 닿을 뻔했다.
-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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