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사람이 그리워 먼길을 돌아왔다

사람이 그리워 먼길을 돌아왔다

: 한의사 이환(李桓)의 따뜻한 문안편지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정가
16,000
판매가
14,40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66g | 145*215*17mm
ISBN13 9791155551813
ISBN10 115555181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람이 그리워

시골 한약국


“원장님, 이거 드셔 보세요.”
어느 날 환자 중 한 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는 내가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 쑥스러운 듯 서둘러 치료실로 들어갔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주방에서 흔히 쓰는 투명 비닐봉지가 매듭으로 묶여 있고, 그 안에는 주먹 크기의 붉은색 물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양념한 돼지 껍데기였다.
나는 시골 한의사다.
문득 〈시골 한약국〉이라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 생각난다. 선생이 어렸을 적에 몸이 약해 시골에 가서 몇 달 휴양을 하였는데 머무르던 집 할아버지의 권고로 용하다는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고 건강해졌다는 내용이다.
의원은 녹용과 삼을 넣은 보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약방에는 약재가 없고 약 살 돈도 당장 없다고 하였다. 어린 피천득 선생의 눈으로 보아도 약국 천장에는 먼지 앉은 몇 개의 약봉지만 매달려 있었고, 약저울도 녹이 슬어 있었다.
그래도 그 의원에게 마음이 끌려서 이튿날 그와 함께 사오십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환자인 피천득 선생의 돈으로 자기가 지어먹을 약재는 물론, 한약방을 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진피
陳皮, 후박厚朴, 감초甘草, 반하半夏, 행인杏仁 같은 재료를 사게 했다는 얘기다.
오래전에 읽은 그 수필 내용이 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것일까?


--------------------------------------------------------


컴퓨터보다는 사람을


불과 여섯 달 전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었다. 연구단지에는 고학력의 사람들이 많아 상대의 성만 알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성씨에 ‘박사님’만 붙이면 얼추 들어맞는다고들 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스스로 자랑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인 곳이다.
사실 연구단지는 병원을 개업하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다. 그곳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공계 출신들은 합리와 논리에 큰 가치를 둔다. 아무리 휘황찬란해 보이는 내용일지라도, 비합리나 비논리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다시는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해 끝끝내 이해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연구자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칭찬받을 만한 장점이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매우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그들은 많은 내용을 ‘예습’해 온다. 자신들의 증상을 관찰하고 논문을 찾듯이 인터넷에서 병명을 알아내어 의사 앞에 리서치 결과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의사의 치료법에 대해 질문을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의사 중에는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그렇게 다 알아서 진단까지 내릴 거면 스스로 치료까지 하시지 왜 병원에 오셨습니까?”라고 쏘아붙이는 사람도 있다.
서양의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양의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질문이 많은 연구원들인데, 하물며 서양 과학의 시각으로 봤을 때 비과학적이고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가득한 한의학의 경우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지적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여, 진료실 밖에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는데도 기氣나 혈血로부터 시작하여 경맥經脈, 침법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연구단지에 개업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바로 내가 이공계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의학을 잘 풀어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원래 나는 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박사까지 수료하고도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흥미나 보람을 별로 느끼지 못했었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며 에러를 잡아내거나, 논문들 속에 파묻혀 영어와 그리스어가 섞인 복잡한 수식들과 씨름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물론 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로 인해 사회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사람들을 좀 더 ‘실제적으로’ 돕고 싶었다. 컴퓨터나 수식 대신 사람을 만나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듣고,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료해 주고 싶었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박사 과정까지 10년 넘게 골몰했던 전공을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에는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내 인생 전반기에 이루어 왔던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한의사로 살아가는 삶이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결코 만만한 게 아니지만,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결정이었는가 다시 확인하곤 한다.


--------------------------------------------------------


오일장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결국엔 자영업을 하는 것이다. 건물주와 씨름하기도 하고, 까다로운 환자의 갑질을 견디어 내며, 직원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여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이 아니다.
대도시의 각박함에 지쳐 갈 무렵, 마침 건물 임대 만료 시기가 가까워 오면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외곽지역을 물색하던 중 찾아낸 곳이 세종시의 끄트머리였다. 병원이 밀집해 있지 않은 장소일 것, 임대료가 높지 않을 것, 인구 밀도가 적당할 것,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도 연이 맞았는지 이곳은 내가 결정하여 옮겨 오기까지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곳 환자들은 작은 일에도 감동을 잘한다. 조금만 효험이 있어도 즉시 기뻐하면서 내 의술을 칭찬한다.
“원장님이 오래오래 여기 계시게 하려면 우리가 잘혀 드려야 허는디.”
그들은 병원에 와서 침이나 약으로 치료를 받기 전에 이미 심리적으로 치료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매스 미디어가 발달했다 해도, 아무리 교통이 발달하여 문화적으로 평준화되었다고 해도 도시와 시골 간에는 정서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투박하고 따뜻한 온기이며 때묻지 않은 인심이다.
환자들은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귤 2개, 뻥튀기 몇 개, 박카스 1병, 떡이나 빵 같은 음식물, 심지어 칫솔 한 개를 부끄러워하면서 내미는 사람도 있다. 돼지 껍데기도 그중 하나다. 나는 돼지 껍데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 즐겨 먹지 않는다기보다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시골의 이런 소박함과 정겨움을 좋아한다.
시골에는 귀가 어두워 한 번 말해서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환자가 많고, 허름한 옷차림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와서 치료용 베드에 그냥 눕는 사람도 있다. 잘 씻지 않아 알코올 솜으로 피부를 닦거나 손으로 만지면 때가 밀리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평소에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노숙자들을 상대로 진료 봉사를 많이 해 온 내게는 이런 일들이 싫거나 낯설거나 놀랍지 않다.
우리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오일장이 열린다. 원래 전통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을 즐겨 찾는다. 투박하지만 푸짐한 길거리 음식들, 대형 마트에서처럼 깨끗하게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값이 헐하면서도 실속 있는 물건들. 그곳에는 사람 사는 향기가 있어서 좋다. 우리 병원 환자 어르신들도 그 장터에서 사 온 음식이나 물건들을 내게 갖다 주는 것이리라.
이번 주말에 또 오일장이 열릴 것이다. 이번에는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만한 옛날 과자를 사다 놓아야겠다. 나도 시골 한의사답게 구수하고 수더분하고 인정이 넘쳐야 하지 않겠는가.


--------------------------------------------------------


고치려고 하기 전에 걸리지 말자


안 아픈 디가 없슈


시골이라서 더욱 그렇겠지만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중년을 넘긴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은 허리를 삐끗했거나, 발목을 접질렸거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하다가 다쳤거나 하여 통증의 원인과 부위를 비교적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 환자들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근력이 약해지고 관절에도 퇴행성 변성이 생겨, 딱히 이유가 없어도 만성적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육체노동을 해 온 노인들을 문진問診하다 보면 난감할 때가 많다.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목, 어깨, 허리, 손, 발, 무릎, 종아리… 온몸이 다 아파유~”
“어디가 특별히 아파요?”
“걍 여기저기 다 아파유~ 안 아픈 디가 없슈.”
“언제부터 아프신데요?”
“오~래됐슈~”
“치료받으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
“아유~ 사는 것도 대간해유~ 걍 딱 갔으믄 좋겄는디~ 가지도 않고~ 맨~날 아프기만 허고 죽겄슈~”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환자들의 호소가 마음에 직접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몸을 직접 느끼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축적된 시간과 경험이 나를 가르쳤을 것이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대화도 각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내용이 많아졌다. ‘이게 바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면 한편 쓸쓸하기도 하지만, 환자들을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으로 궁색한 위안을 삼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한 사회에 노인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고령화 사회, 고령 사회, 초고령화 사회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14%를 돌파하여 이미 고령 사회가 되었으며, 10년 안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 한다.


--------------------------------------------------------


몸으로 배우다


몇 년 전에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다.
아침에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허리가 시큰한 느낌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었다. 주저앉을 뻔했는데 간신히 세면대를 잡고 한참을 버텼다. 그리고 통증을 최소화하는 자세로 겨우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고 내가 어째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본능적인 조치였을 것이다. 허리를 더 이상 펴지도 못하고 구부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어떻게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침대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허리를 삐끗하여 고생하시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지금의 나와 비슷했을까? 그 후 아버지는 내가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하면 “허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너도 아빠 체질을 빼닮았으니 허리 다치기 쉬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이가 젊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잊어버렸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으레 그런 것이려니 했었나 보다.
한참 후 겨우 몸을 조금씩 움직이게 되면서 현실적인 고민들이 떠올랐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환자들을 볼 수 있을까?”
그날은 다행히 추석 연휴 첫날이어서 며칠의 여유는 있었다. 당장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지만 빨리 낫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해부학책 그림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픈 허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며 허리 주변의 뼈와 근육과 인대의 구조를 확인하고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 머리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허리를 삐끗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하고 실한 편이 아니었다. 운동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근력이 약해, 힘을 쓰거나 몸을 부딪치는 운동보다는 순발력이 필요하고 네트를 사이에 두어 몸싸움이 필요 없는 스포츠를 즐겼다. 축구처럼 격렬한 운동을 하면 며칠 동안 근육통이 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도 더뎠다. 관절도 약해서 발목을 접질리는 일도 잦았으며, 다른 관절들도 부상을 입는 일이 많았다.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되어 재건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무릎은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이식수술을 받았는데 해가 더할수록 시큰거리기도 한다. 팔꿈치에는 테니스 엘보가 있어서 다소 무리했다 싶으면 아프고, 어깨는 양쪽 쇄골이 한 번씩 골절된 적이 있고, 오른쪽 어깨는 움직일 때 ‘뚝~ 뚝~’ 소리가 날 정도로 관절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손목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잘못 짚은 후로 몇 달 동안이나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허리는 그동안 튼튼했었다. 딱히 아팠던 적도 없었고 허리힘이 필요한 운동에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기에 ‘나는 허리가 튼튼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그 허리가 부실해지다니….
허리는 건물의 기둥 같은 것이어서 허리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 파급되는 전신의 부분들이 즉각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허리가 안 좋으면 당장 걷고, 눕고, 앉는 기본적인 동작부터 불편해진다. 이런 것들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도 요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농사를 짓거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허리를 다쳐서 만성적으로 통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날마다 만나다시피 한다.
허리가 아플 때 표현하는 말이나 형용도 매우 다양하다. 시큰거린다, 우리~하게 아프다, 욱신거린다, 뜨끔뜨끔하다, 결린다, 묵직하다, 끊어질 것 같다 등등….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허리를 다치기 전에는 환자들의 이와 같은 표현을 확실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직접 다쳐보니 환자들의 표현이 그대로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시큰거리는 것이구나, 이럴 때는 우리~하고 묵직하고, 이럴 때는 욱신거리는 것이구나. 참 우리말은 표현이 구체적이고 섬세하고 정확하다.
외국인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자신의 통증과 그 느낌을 어떻게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외국인 환자와 대담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환자가 증상을 설명할 때다. 내가 허리 통증의 다양함을 알고 나서야 그들과의 소통은 단순한 언어 소통이 아니었다는 것, 언어 이전의 더 깊은 풍습과 전통의 소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목, 손목, 무릎, 어깨, 팔꿈치 같은 관절은 내가 다치거나 아팠던 적이 많았기에 한마디만 들어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부상의 원인이 무엇이며, 해부학적으로 정확히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회복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며,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뿐만 아니라 양방병원에서는 어떤 치료 방법을 쓰고 한방 치료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도 대략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해부학 수업 시간에 배웠을 뿐만 아니라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릿속으로 다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몸으로 한번 겪어 보면 그 모든 지식이 순서대로 꿰어지고 체계가 잡혀 정리된다.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은 의사가 환자보다 더 많이 갖고 있을지 몰라도, 그 병에 대한 이해는 아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허리를 다쳐 통증 때문에 괴로웠지만 누워 있는 동안 요통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피상적 지식들이 제대로 이해되고 바로잡혔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근골격계가 약하여 자주 다치는 것에 대해 속도 많이 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할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돌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내가 관절이 약하다고 하면 나와 허물없이 친한 사람들은 내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의사가 관절이 아프다고 하면 환자들이 오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병을 앓아 본 의사가 그 병의 치료법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기 마련이다. 약한 아이를 둔 의사가 소아 환자를 건강하게 치유해 주려 고민하고, 힘든 일을 많이 겪어 본 의사가 정신적으로 아파하는 환자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관절이 아픈 경험이 있는 의사가 전혀 없는 의사보다 그 치료법을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보통 오복五福으로 치는 것은 그 첫째가 수壽요, 그 뒤를 이어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는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단순히 장수한다는 것을 으뜸의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온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보면, 부실한 몸으로 100세까지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러나 의사이기 때문에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를 대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며, 고통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환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절망과 암담함이 내가 감내해야 할 날마다의 정서다. 생명에 대한 애착은 인간의 본능일진대 그에 대해 어찌 가볍게 언급할 수 있으랴. 특히 육체의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의 자리에서는 더할 것이다.
병원에 자주 오는 노인 중에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가 있다. 그는 당뇨가 생긴 지 30년도 넘어 지금은 날마다 인슐린을 주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달달한 음료수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해 하루에도 믹스커피를 여러 잔 마셔야 한단다.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인공 오줌보를 달고 살면서도 식욕을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 모습을 마주 대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운동하시면 더 나빠지진 않을 텐데요. 어려운 운동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 오실 때 조금씩이라도 멀리 돌아서 오시면 그것이 곧 운동이지요.”
“운동? 나는 운동하기 싫어. 걷는 것도 귀찮어. 그냥저냥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 뭐.”
그러나 나는 그에게 ‘그럭저럭 살다가 간다’는 말이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간다’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깨우쳐 주고 그도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지만, 그의 상태는 내가 바라는 만큼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다. 옆에서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 줘도 결국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한다.
그의 앞에 앉으면 가끔 내가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아무리 좋은 의사도 병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일정한 거리 밖에 있는 제삼자요, 관찰자이며, 기껏해야 조력자에 지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의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환자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
한의학 서적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성인불치이병치미병聖人不治已病治未病’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성인은 이미 발병된 병을 고치려 하기보다 아직 걸리지 않은 병을 미리 예방한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40세 이상 국민에게 격년으로 기본 건강검진을 무료로 제공한다. 각자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환경이 되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진지 잡수셨어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는 가벼운 인사들은 결코 가볍거나 하찮은 말이 아니다. 숙면을 취하고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고 정상적으로 배설하는 일들, 건강이란 이렇게 평범한 생활 습관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 너무도 당연하고 진부한 말이겠지만,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절제하고 자기 관리에 힘쓴다면 더 나은 노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웰빙과 웰다잉


한때는 유행처럼 웰빙well-being 열풍이 번졌었다. ‘잘 산다’는 것은 그 의미와 방향이 광범위하여 잘 먹고 잘 입고 풍족한 가운데서 누리는 윤택한 삶 전체를 포함시켜야 하겠지만, 웰빙은 그중에서도 잘 먹는 것과 특별한 연관이 있는 듯하다. 궁핍한 시기를 견뎌 온 70대~90대 어른들에게 ‘보신’은 ‘고기를 먹는 일’과 같았다. 돌잔치나 결혼식에 초대를 받으면 뷔페식당에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다. 그것이 불과 20년 전 일이다.
하지만 경제가 조금씩 발전하고 사회 분위기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과식을 하거나 육류를 탐하는 식습관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고급 식당에 가면 유기농 자연식, 무공해 식품,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조리한 음식을 아주 조금씩 골고루 예술품처럼 내온다. 음식뿐 아니라 주거, 의류, 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주위 모든 환경에 웰빙 바람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웰빙 자리에 웰다잉well-dying이 자리를 잡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외할머니 칠순 잔치를 했는데, 그때 할머니는 “인생 칠십 고래희라고 했는데 내가 일흔까지 살다니… 남 보기가 부끄럽구나” 하며 어색해하셨고, 축하하러
온 손님들도 칠십이라는 나이를 놀라울 만큼 고령으로 여겼던 것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그 후로도 23년을 더 건강하게 사셨으니 스스로 당신을 잘 관리하신 것 같다.)
지금은 60세는 중년이요, 80세가 되어야 비로소 노인층에 끼일 수 있는 시대다.
음식이 풍성해진 요즘 양보다 질에 더 큰 가치를 두듯, 수명이 길어질수록 나이보다 삶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에도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생명만 연장하려는 사람들보다 품위 있고 깨끗한 최후의 이미지를 남기고 가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앞으로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두 90세 이상 100세까지 살게 될지 모른다. 육신은 점차 쇠약해 갈 텐데 우리 몸이 맞이하게 되는 긴 시간의 선물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오복 중의 첫째라는 장수를 무상으로 누리면서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웰빙 하다가 웰다잉 하기 위해서는 불치이병치미병不治已病治未病의 의미를 차분하게 새겨봐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  모바일 쿠폰의 경우 유효기간(발행 후 1년) 내 등록하지 않은 상품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모바일 쿠폰 등록 후 취소/환불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4,4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