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나는 우리 아이와 너무 안 맞아요” 하면서 고민하는 부모님을 자주 만난다. 아이를 만나 보면 아이 역시 자신은 엄마(또는 아빠)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런 불일치의 원인은 무엇일까? 자녀가 성장해 자의식이 생긴 뒤부터는 아이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가치관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아이와 부모의 가치관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이때 갈등을 빚게 된다.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치관은 지문과 같아서 가치관이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당신이 하는 모든 것에 그 흔적이 남는다”라고 했다. 그만큼 삶에 있어 가치관은 중요하며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하려 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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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역할을 했을 뿐이고, 바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바뀐 역할을 수행한 것에 대한 칭찬과 격려는 없고, 원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과 추궁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결국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부모 말은 시시하다고 생각해버린다. ‘어차피 엄마(아빠) 맘대로 할 거면서….’ 실제로 상담실에 찾아오는 많은 부모들이 유찬이 엄마처럼 아이가 눈치도, 요령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들은 부모가 거짓말쟁이라고, 뭐든 자기 멋대로 결정하는 독재자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는 많은 규칙을 적용하면서 정작 부모의 삶에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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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유발하는 원인 그리고 재발하게 만드는 원인 중 1위가 이중적인 메시지라고 한다. 사랑한다면서 때리는 행위, 밥을 차려주면서 비난하는 말투, 같은 상황에서 부모의 기분에 따라 어제는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오늘은 맹비난을 퍼붓는 말투들이 아이들을 소위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린 시절 들었던 이중 메시지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에서부터 타인의 의도를 의심하고 어떻게든 앙갚음하고 싶고, 항상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성마름을 만들어내고,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인성 씨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기분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물어본 적 없이 자신의 프레임 안에서 끊임없이 이중 메시지만 던졌던 엄마로 인해 인성 씨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고, 사람들의 말 속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메시지만을 찾는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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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질문 중에 상담사는 왜 하필 “뭐 마실래?”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은 왜 수많은 대답 중에 “아무거나”라고 답할까? 상담은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마시고 싶다고 말을 할 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비록 본인이 원해서 오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마시고 싶은 차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상담 안에서 본인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 역할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게 되지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다. 자녀 대신 그 많은 선택을 일일이 다 해주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소하게는 마실 음료의 종류부터 시작해 입는 옷, 읽을 책과 봐야 할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자녀의 삶 전반에서 부모가 ‘선택을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삶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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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태어난 이후 세상과의 소통 이전에 자신과의 소통을 먼저 시작한다. 아이는 놀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놀게 되고 그러면서 ‘자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민준이 엄마는 상담실에 와서 아이의 행동에 대해 “아빠가 성욕이 강해서 아이한테까지 유전이 됐나 봐요”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자위는 나쁜 것, 더러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아이의 행동을 알게 됐을 때에도 혼내고, 협박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절대 하지 못하도록 야단쳤다. 그렇지만 민준이는 엄마가 그럴수록 더 자주, 더 은밀하게, 더강하게 자위를 하게 됐다. 자위를 통해 경험한 기분이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아닌 ‘상쾌함’과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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