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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02g | 130*205*20mm
ISBN13 9791168670280
ISBN10 116867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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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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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도 긴 세월 앞에 부질없어

빼빼로 데이라는 열하루, 팔십 난 옥금이 누님이
파크골프 치러 회천 구장에 왔네
초이튿날 동갑 영감 먼 길 보내고 벌써 맘
추슬러 평소처럼 곱게 차려입고 공 치러 왔네
있는 듯 없는 무심한 빈자리
오래 산 날들에 묻혀 사소한 일은 아니었지만
공 치러 왔네

폐암으로 먼 길 떠난 영감이야
교장으로 퇴직한 몸이었으니 애들 데리고
뭍으로 수학여행 떠난 것만 같고
안부를 묻는 빈말들이 더 야속한 오늘 같은 날은
일부러 부침개라도 부쳐야 할 것 같은데
한때는 영감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할 때
분홍 빛깔 떨림 같은 것도 가물가물하니
가야 하는 길, 나 두고 여행 가듯 떠난 사람
인연도 오래 산 세월 앞에 부질없어라

운동 삼아 매일 치던 파크골프는 두 달 넘겨 왔으니
공이란 것이 아무리 둥글다 해도 공, 그것이
간밤에 돌아눕던 쪽으로만 굴러 생각처럼 안 되네
금이 누님이
나갈 대회는 닷새 후로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르고 뭍으로 수학여행 떠난 사람은
빈 왕릉 보다가 불국사 지나 석굴암으로 합장하며
오르는 중인 듯,
누님 이마에는 땀만 송송하네

--------------------------------------------------

후박나무를 베다

삼사십 평 마당 한가운데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있다
원시림처럼 가지는 하늘을 덮어 습한 그늘은
키 작은 식물을 키우지 못했다
온실에서 노란 하귤 달고 마당으로 이사 온 나무는
다 떨어져 열매는 보여주지 않고
삼백 원씩 사다 깐 잔디는 흉내만 낼 뿐
어디선가 날려 온 잡풀만 자랐다

빌려온 기계톱이 윙윙거리고
수십 년 마당을 지켜온 후박나무 정령에 대한 예우인가
아내는 붉은팥과 거친 소금을 뿌렸다
망설임의 끝,
아마존 밀림의 거목을 베듯이 후박나무 벨 때
북국의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한 이유로
누군가는 영원할 것 같던 철의 밥통에서 낙마하고
후박나무의 잘린 밑동은 볕 쬐는 의자가 되었다

태양은 중천에 머물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갈색 선글라스 콧등 걸친 아내
빨랫줄에 옷들이 펄럭이는 걸 보다가
노란 열매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당을 걸었다
원 그리며 천천히 걸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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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멍’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한다. 15년 넘게 시를 썼으니 멍든 마음도 시가 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었겠다. 처음 만날 때 흰머리 시인이었는데 긴 시간 지나도 변함없이 흰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집 속에서는 나이를 먹고 있었다. 시인의 ‘안녕’이란 말이 이리 찡할까. 고향의 안부를 묻는 안녕, 먼저 간 가족들과 안녕, 가까운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들을 가늠하며 안녕을 떠올리는 시인이다. 쓰임이 다해 마지막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온몸을 불태워 누군가의 추위를 녹여주는 폐목처럼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시인은 따뜻해야 한다. 한결같이 사람들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며 시 하나 풀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시인을 만나면 술 한잔 사야겠다.
- 김정희 (시인, 아동문학가)
시인의 선연한 멍 자국을 본다. ‘글은 그 사람의 삶, 詩는 그 사람의 영혼’이라는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며 증명하는 시인의 詩 앞에서 숙연해진다. 파란만장한 삶 살아내고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노란 콘크리트 아지트에서 흘러간 뽕짝 들으며 꿩엿 달이 듯 詩를 통해 허물을 벗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새 삶을 향해 타전 중이다. 고로쇠나무, 하귤나무, 왕벚나무, 고무나무, 후박나무 다 잘라내고도 까치집 때문에 자르지 못한 야자나무 한 그루는 애정의 흔적이며, 바로 그 잔정이 詩의 모태다. 반려견 자크와 깜보를 잃고도 다시 비타와 인연 맺은 시인은 오늘도 너털웃음으로 꽃구경 나간다.
- 양순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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