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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과 숲의 거리
중고도서

숨과 숲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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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96g | 115*188*11mm
ISBN13 9791156625681
ISBN10 1156625688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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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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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장 아픈 날
기도를 가지고 태어났어,
나는

형, 질문을 가지고 다시 오면

그때는 우리 안아도 보자
이름도 물어보고

이제 이별 같은 거 그만하자,
우리
형 문장이 익숙했어 그래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었어
--- 「합평」 중에서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어떤 단어로도 지칭할 수 없는 장소에서
네가 내게 물었어

나의 여름을 너의 겨울처럼 살아내줄 수 있겠냐고

자살을 위한 밧줄 매듭이 유행인 시절에
네가 나에게
내가 나에게

신이 내려오는 기적 대신 눈이 내렸어
우리라는 벅찬 단어로
--- 「제1악장 타란툴라」 중에서


전화 속에서 울음이 밀려왔다 그 당시에 애인은 울면서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이 없었고
숨과 숲의 거리를 고민했다

숲은 공기를 만들어내니까 숨과 가깝지 않을까 언어적 형상이나 발음이 유사하니 더 가깝지 않을까

애인은 그래도 좋았던 기억도 많았다고 말했다
나는 맞다고
숲에서 선물이라는 단어를 끄집어오고 여행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숨이라는 말처럼
숨 쉬는 일이 버거웠는데

그게 너로 인해 비롯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 「파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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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스무 살 무렵 우리는 강의실에서 만났다.“ 너는 시인이 될 거야.” 맑고 천진한 표정으로 사뭇 진지한 질문을 던지곤 하던 김도경에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 후로 긴 시간을 견디며 무르익은 시들을 대하니 그때의 예감이 떠오른다. 이제 그는 음역이 넓은 성악가처럼, 또는 여러 역할을 소화해내는 배우처럼, 삶을 다채롭게 연주하고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우주적 공간이나 신화적 시간으로 멀리 뻗어가며 상상 놀이를 펼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의 불안과 결핍을 아프고 날카로운 서사를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주로 밤과 꿈에서 길어올린 이 모호하고 싱싱한 언어들은 첫 시집이라는 특권과 자유를 한껏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시인의 뛰어난 리듬감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잘 짜여진 음악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1악장 타란툴라」 「2악장 누구에게나 불이 있다」 「3악장 도시에서 사라진 삐에로」, 이 세 편의 시는 각 악장의 서곡에 해당한다. “연주회에 와줄래요?” 사랑스러운 초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울음’과 ‘물음’이 빚어낸 매력적인 ‘화음’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활과 리라를 켜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볼 수밖에 없다.
- 나희덕 (시인, 교수)
도경의 시 중에서 듣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상정돼 있는 작품, 예컨대 「긴 나선형을 그리는 음표처럼」 「제주도는 돌담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더라고요」 「합평」 「레옹」 「파훼」 같은 시들이 특별히 좋았다. 자신을 위한 시들에서 도경은 “상상 놀이”를 즐기는 기발하거나 사색적인 예술가이지만,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시들에서는 다정하고 정확하게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다. 말로 타인의 마음을 열고 싶으니 다정해졌고, 오해 없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니 정확해졌으리라. 이 다정함과 정확함으로 도경은 그가 바라는 “우리”라는 이름의 시공간을 종이 위에 짓는다. 나는 그런 도경이 다른 도경보다 더 근원적인 도경일 거라고 믿고 있다. 그가 시인인데도 오히려 “듣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제주도는 돌담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더라고요」), “내 시를 믿지 말라”며 자기를 할퀴듯 반성하는 것도(「파훼」) 그가 본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그가 쓸 문장들이 어차피 그를 그런 미덕 쪽으로 이끌 테니까. 도경의 시를 읽으며 우리도 그곳에서 만나자. 다정하고 정확해지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시보다 더.
-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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