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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큰글씨책)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큰글씨책)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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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10*297*20mm
ISBN13 9791192265339
ISBN10 11922653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헤아려보니 예순아홉 꼭지의 이야기입니다. 사건과 배경이 어떠하든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문장에 등장하는 주인이 나였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나라는 주어를 빌려 썼을 뿐, 흑백 원고지를 관통하는 빨간 외투의 소녀는 당신입니다. 내 글의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그대이고 귀하이고 연인이고 이웃이고 동료입니다. 아들이자 딸이고 아내이자 남편입니다. 내 글 속의 당신은, 밤새워 이력서를 쓰는 절박함이고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애틋함입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일순이가 예쁜 것은 ‘개냥이’ 때문입니다. 개냥이는 일순이와 함께자란 고양이인데 새끼를 낳다 죽었습니다. 그러자, 한 번도 새끼를 밴 적 없는 일순이의 젖이 불었습니다. 그리곤 죽은 개냥이를 대신해서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 「둘」 중에서

저수지가 웁니다. 물에 가려진 것들이 따라서 웁니다. 울음은 얼어붙은 저수지 안에 가득합니다. 설움 때문이겠지요. 울음을 따라 균열이 얼음을 가릅니다. 갈라진 얼음 위로 지는 해가 피를 토합니다. 얼음 위로 뿌려진 노을은 갈라진 얼음만큼이나 서럽습니다. 노을이 서러워, 갈라짐이 서러워, 또 그렇게 저수지는 웁니다.
--- 「곡哭」 중에서

이상한 일이지요. 왜 지나간다고 하지 않고 건넌다고 할까요. 횡단보도 말이에요. 이쪽과 저쪽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같아서일까요. 아니면 사람과 도시를 묶어주는 매듭 같아서일까요. 당신은 어디세요. 저는 출발을 기다리며 멈춤 앞에 있어요.
--- 「온溫」 중에서

당신은 낙서하는 걸 좋아했어요. 책상 모서리에 ‘바보’라고썼던 것도 기억나요. 가느다란 머리핀이었던가요. 조각을 하듯이 핀으로 긁어 당신의 책상에 글자를 새겼어요. 그때 새긴 글씨는 지워지고 없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낙서로 가득하니까요. 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아직도 저는 바보와 멍청이의 경계에서 셋방을 살아요.
--- 「온溫」 중에서

보고도 본 것이 무언지 꿈결처럼 아득한 게 봄이다. 아득한 숨결 같은 봄이라서, 호흡기로 연명하는 환자의 맥박에 잡히고, 잠에 취한 노숙자의 굽은 등에 눌리고, 새벽을 열어내는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에 쓸린다.
--- 「봄」 중에서

문학은 손으로 써내는 가슴 속 언어입니다. 어깨나 이마에 붙이기 위한 계급장이 아닙니다. 문학(文學)을 자꾸 크고 거창한 학문(學文)으로 격상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으로 격상시키는 순간, 문학은 ‘항문’이 되고 ‘똥’이 됩니다
--- 「똥」 중에서

한 글자로 이름 붙여진 것 가운데서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숨’을 꼽는다. 숨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있다. 숨을 쉼으로 삶이 시작되고 숨을 멈춤으로 삶이 마감된다. 숨은 숲을 닮아서 끝없이 호흡해야 한다. 인간이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선 호흡이다. 숨 쉬지 않는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 「숨」 중에서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입술을 달싹이며 무슨 말인가 하였는데, 말은 내 귀에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렸습니다. 흩어진 말 속에는 말은 없고 흙냄새만 남아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쪼그려 앉으면 맡을 수 있던 흙냄새였습니다. 어쩌면 무화과나무 아래 굴을 파고 살던 개미들의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
--- 「흙」 중에서

아내의 손을 쥔 주먹에 힘을 더했다. 떨지 마라, 아내야.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세상은 가슴을 잃었다. 사람은 없고 밥그릇만 보이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설움을 앞에 두고도 고개 돌리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숨소리를 따라 들썩이는 허파는 있어도 생명으로 쿵쾅대는 심장은 없다. 떨지 마라, 아내야.
--- 「손」 중에서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작은 옹기가 태(胎)항아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걸음을 멈춘 곳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널따란 갈대숲이었다. 새끼줄로 촘촘히 여민 항아리를 아버지는 강물에 띄워 보냈다. 강물이 바람에 여울질 때마다 항아리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가라앉을 것 같아 애가 탔다. 노을 진 강물에 아버지를 따라 손을 씻었다. 까닭도 없이 눈물이 났다.
--- 「태胎」 중에서

어린왕자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구별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 같구나.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가 그 무시무시한 동물의 생김새를 발가락으로 땅에 그려서 보여줬는데, 인간들의 모습과 비슷해서 걱정이 되는구나. 설마 그 무시무시한 동물의 정체가 인간은 아니겠지?
--- 「인人」 중에서

들꽃 하나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이름도 없이 그냥 들꽃이라 불리는 그것들에게도,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이파리가 있습니다. 이름이 없어서 슬퍼하는 들꽃은 없습니다. 그것은 나와 당신의 착각입니다. 이름을 구걸할 여유가 들꽃에겐 없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씨앗을 열고 간신히 한철을 견뎌야 꽃대를 올립니다. 이름 없는 꽃은 있어도, 그냥 피는 꽃은 없습니다.
--- 「명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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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씨앗 하나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한다. 글자 하나는 어떨까? 저자는 글자 하나마다 우주를 하나씩 발견했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애(愛)’라는 노래의 변주곡으로 들렸다. 고마운 일이다.
- 손병휘 (가수)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수하고 뜨거웠던 30년 전의 나를.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식어버린 가슴을 다시 들끓게 하는 감동의 드라마 같은….
- 유승목 (영화배우)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제작했습니다. 제가 눈과 귀로 느낀 역사의 현장과 인물을 고향갑 작가는 가슴으로 느꼈나봅니다. 이 책에는 그가 느낀 가슴 속 울림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 최경진 (TBS PD)
저자는 나의 오랜 친구다.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그를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단언컨대, 이 책에 담긴 그의 글들은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전혀 새로운 것들이다.
- 한보리 (작곡가)
한 글자에서, 이토록 슬프고 아름답고 흥겹고 가슴 아픈 기억을 이끌어낼 수 있음에 찬사를. 책에 담긴 내면의 서사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보며 힘껏 응원한다. 그의 '첫' 산문 나들이를.
- 전민식 (소설가)
한 글자라니! 불퉁거리는 시문(詩文)들 내세우며 내처 싸우던, 그때나 지금이나 남녘의 바닷가에는 날카롭고 여린 칼날들이 새하얀 숭어의 배알퉁시로 몰려다닝께, 한 글자 마치거든, 퍼뜩 댕겨가불소!
- 박관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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