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바람마저 모래를 품은, 건조한 중부에서 자란 제이드 이클립스에게 동부는 늘 기분 나쁜 곳이었다. 음습한 기후, 사방에 널린 끈적끈적한 물에는 수상쩍고 징그러운 마물들이 바글바글했다. 물과 숲과 그늘이 많고, 발길 닿지 않는 곳에는 불쾌한 비밀들이 숨겨진 땅.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제 동부에 끌려온 지도 다섯 해인데, 슬슬 적응할 때 되지 않았어? 이 정도면 너도 엄연한 동부인이라고, 이클립스 경?’
‘시끄러워.’
뭐 하나 뜯어먹을 게 없나 호시탐탐 그를 따라다니는 젤다 블랙도, 그를 이곳까지 끌고 온 외눈박이 베아트리체도…… 정말이지 전형적인 동부인들이었다.
제이드 이클립스는 부츠를 휘감는 식인 식물을 검으로 토막 내 가며 늪지를 헤쳐 나갔다.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녹색 점액이 손에 묻자, 피부 껍질이 붉게 일어나고 화끈한 통증이 느꼈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다가 끝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염병할.”
이러고 있는 게 벌써 반나절인데. 목표물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목적지는 아직도 멀고, 동물인지 식물인지도 헷갈리는 이 빌어먹을 마물은 쳐 내도 쳐 내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대로 몇 시간쯤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랬다가는 줄기가 온몸을 감고 체액을 빨아 먹어 그를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내가 이놈의 숲에는 다시는 발 안 디디겠다고 맹세했는데.”
혹하는 게 아니었어. 베아트리체가 개인적으로 주는 의뢰는 제대로 된 게 없단 말이야. 하나같이 보상이 터무니없이 커서 수상쩍은 의뢰였는데, 그 예감이 매번 맞아서 길을 나섰던 태반은 시체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걸 몇 번 겪고도 낚이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 중에서도 끝장나게 막사는 놈들밖에 없었다. 빚으로 묶여 꼼짝도 못 하는 그나, 돈 냄새만 맡으면 눈이 돌아가 이성을 잃는 젤다 블랙 정도.
물론 이번 의뢰도 비슷한 종류였다. 사람 하나만 납치해 오면 된다더니, 그 사람이 있다는 장소가 나비미 숲, 마물 지대의 가장 위험한 정중앙부였다.
(중략)
그것은 거대한 뱀이었다. 몸통은 고목나무 둥치만 하고, 사람 얼굴만 한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눈을 마주친 사람을 마비시키고, 독이 어린 숨결만으로도 바위를 쪼개고 생물의 숨통을 조인다는 위험도 최상의 마물.
바실리스크.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꾸역꾸역 삼켰다. 죽기 전 바실리스크의 눈을 마주했는지 그것은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수풀에 뻗어 있는 사람 몇을 더 삼킨 뱀이 다시 낙엽 사이를 갈랐다. 이내 그것은 육지에 남은 먹잇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 뱀이 늪에 고개를 처박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제이드는 직감했다.
저것이 내 위치를 알아차렸구나.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구나.
“빌어먹을.”
제이드는 눈을 감고, 품 안의 단도를 만졌다.
바실리스크는 날개가 없을 뿐, 어떤 의미에서 드래곤보다 더 처치하기 어려운 마물이었다. 저것의 비늘에는 날붙이가 먹히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온몸이 마비된다.
유일한 약점이 두 개의 노란 눈인데, 눈을 마주하지 않고 어떻게 눈을 공격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혼자서.
이건 애초에 실력 있는 마법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사아악!
뱀은 늪을 빠르게 헤엄쳐 왔다. 끈적거리는 물살이 무겁게 출렁이며 그의 팔을 적셨다. 제이드는 단도를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는 검을 뽑기 전 늘 기도를 한다고 했다. 서부에서 온 퇴역 기사였던가. 딸이 불치병에 걸려 전 재산을 날리고 길드로 온 자였는데, 정식 기사 출신이어서인지 그는 신앙심이 남아 있었다.
―테레지아여. 저를 살펴 주시고, 다가오는 죽음의 물결에서 건져 주시고, 제 검이 있는 곳에 승리가 있게 하소서.
하지만 제이드의 기도는 달랐다.
“한 번에, 깔끔하게, 실수 없이.”
그는 그 세 마디만을 외며 무감각하게 검을 휘둘렀고, 지난 삶을 견뎌 왔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똑같이 하면 된다. 똑같이…….
의식이 있는 채로 뻣뻣하게 굳어져 뱀 새끼 위장에서 소화되다 구울이나 사령이 되는 것보다는 자결이 낫겠지. 제이드는 목 근육을 더듬어 제 목동맥 자리를 찾으며 되뇌었다.
“한 번에, 깔끔하게, 실수 없이…….”
그러나 칼날이 그의 목을 파고들려는 순간, 무언가 그의 로브 끝자락을 붙잡아 당겼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단도가 손에서 떨어져 늪에 처박힌다.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긴 밤색 머리카락이 눈앞에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제이드는 턱을 붙잡는 손길을 느꼈다.
이내 가느다란 목소리가 속삭여 왔다.
“삼켜.”
사람?
제이드는 코끝을 찡그리며 다가온 자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