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위기 담론의 경우, 신자유주의 노선 자체는 여전히 정상으로 인지하되 미시적 차원에서의 정책 실패를 강조하는 보수적 시각과, 신자유주의 자체의 실패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는 진보적 시각으로 대별된다. 첫 번째는 금융위기가 시장과 기술의 신속한 변화에 정책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주장이고, 두 번째는 위기를 시장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모순의 결과로 보면서 케인스주의적 경제 질서의 부활을 요구하는 구조적 접근이며, 세 번째로 위기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일상적인 모습으로서 권력관계의 근본적 재편 없이는 지속될 성질의 것이라는 급진적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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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 패권의 토대가 여전히 공고한지, 또 그 반대편에서 중국의 성장이 지속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금융위기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이 기존 예외주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국제적 리더십과 그 물질적 기반이 쇠퇴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패권 쇠퇴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인 셈이다. 지경학 전략은 바로 이러한 국제정치경제적 흐름에서 유행처럼 되돌아왔고,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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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호랑이 두 마리가 하나의 산자락에서 함께 살 수 없다[一山不容二虎]’는 논리가 미국과 중국에서 득세할 경우 세계 질서는 신냉전(또는 냉전 2.0)에 접어들 수도 있다. 이 경우 세계경제는 중국 블럭 및 미국 블럭으로 양분되어, 한국과 같이 안미경중을 해온 국가들의 경우에는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국력 격차 및 무역 구조(한국은 양국 모두에 대해 흑자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압박에 독자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양자 차원에서 직접적 대응하기보다는 다자 차원에서 국제기구를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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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는 수치상으로는 호황이지만 체감하기 어려운 ‘저온호황’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목표인 물가상승률 2%, 명목성장률 3%, 실질성장률 2% 달성에는 실패했다. … 여기에 도쿄의 반도체 재료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이후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파로 한국 내 일본 기업이 매출 감소에 직면하게 되었고, 한일 교역 감소와 금융시장 변동으로 인해 불안전성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 그럼에도 엔저 기조, 주가 상승, 고용지표의 개선 등으로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던 일본 경제가 아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에 의해 성장 동력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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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무역 질서는 초불확실성 속에서 변화를 거듭했다. 불확실성의 골이 깊었던 만큼, 보호주의의 유혹은 컸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대한 위협은 어쩌면 초불확실성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초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을 행사할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21세기는 미국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시아의 것도, 어느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세계 무역 성장률의 정체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 p.174
국제통화체제의 경로 의존성과 더불어 달러를 대체할 만한 대안적 세계통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달러의 지위가 유지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유로화와 위안화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달러의 지위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유로화는 달러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화폐이다. … 하지만 유로화는 달러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율성을 확보한 유로 지역을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유로 지역을 넘어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로화가 달러를 대신할 만한 국제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유로 지역에 한정된 유통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로 지역의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유로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로 지역의 위기가 발생하자 “달러의 세계적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유로화 자체의 생존”이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되었다.
--- p.191~192
국제금융질서가 왜 제한적으로밖에 개혁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세계경제의 구조적 권력을 가진 미국의 선택인데, 미국이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기존 시스템이 가진 최소한의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중국의 선택이다. 중국이 개혁 담론을 활발하게 펼쳤지만 새로운 금융질서가 내포하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결국 미국이 주도한 최소한의 개혁에 편승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로위기가 불러온 대안의 부재이다. 유럽은 2009년 유로위기 이전까지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통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주체였으나 유로위기의 시작과 함께 그 대안적 영향력이 급속히 감소했다.
--- p.215
미국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운송로 보호 연합체인 호르무즈 다국적 연대를 결성하고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연합체는 사실상 중국과 이란의 운송로를 차단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참여는 하되 특정 국가의 운송로를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 p.299
한국의 ICT 인프라의 사이버 안보 취약성도 문제이다. 한국은 사이버 공격에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다국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Deloitte)가 2016년 2월 발표한 「아태지역 국가보안 전망 보고서」(2014년 조사 기준)에 의하면 아태 지역 18개국 중에서 5개국이 특히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데 그중에서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사이버 리스크 점수는 척도 기준점수인 1000점 중에 884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8년 평가보다 약 2.7배 증가한 점수로, 한국이 초고속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 기반 구축 정도에 비해 보안 측면의 대응 능력 및 관련 인프라 수준은 상대적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 p.331~332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국의 ODA 증액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공여국의 ODA 정책은 국익과 긴밀히 연계되는 특징이 있는 가운데, 경제 및 안보적 국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을 대상으로 중국식 헤게모니 확산과 패권 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일대일로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 p.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