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만큼은 둘이서 사이 좋게 놀자. 내가 좋은 곳으로 안내할게. 일본에서 최고로 좋은 곳. 이렇게 서로 살아 있다는 건 뭔가 애틋한 일 같기도 해.
--- p.54 「다스 게마이네」 중에서
괴로워할 자는 괴로워하고 떨어져 나갈 자는 떨어져 나가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 p.84 「부악백경」 중에서
‘진정한 의미의’라든가 ‘본래의’라든가 하는 형용사는 수두룩하지만 ‘진정한’ 사랑, ‘진정한’ 자각이란 과연 무엇인지 명확하게 쓰여 있지 않다.
--- p.112 「여학생」 중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야 할 최선의 장소, 가고 싶은 아름다운 장소, 자신을 펼쳐나가야 할 장소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좋은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올바른 희망과 야심을 품고 있다. 기댈 수 있을 만큼 꿋꿋한 신념도 갖고 싶다고 초조해한다.
--- p.113 「여학생」 중에서
본능, 이라는 말에 부딪히면 울고 싶어진다. 본능의 크기, 우리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힘을 매번 확인하게 될 때마다 미칠 것만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얼이 빠져버린다. 긍정도 부정도 없는, 단지 커다란 무엇이 머리 위로 푹 덧씌워지는 것 같다. 그러고선 나를 멋대로 끌고 다닌다. 끌려다니며 만족하고 있는 기분과 그것을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감정을 품은 채로. 왜 우리는 자기 자신만으로 만족하고 자기 자신만을 평생토록 사랑할 순 없는 걸까?
--- p.117 「여학생」 중에서
지금, 이라는 순간은 재미있다. 지금, 지금, 지금, 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은 저 멀리 날아가고 새로운 ‘지금’이 오고 있다. 다리의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면서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다. 나는 사실 지나치게 행복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 p.118 「여학생」 중에서
로코코라는 말을 얼마 전 사전에서 찾아보니,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용은 없는 양식이라고 정의되어 있어서 웃고 말았다. 명쾌한 답이다. 아름다움에 무슨 내용이 있을까. 순수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무의미하고 도덕 따위 없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로코코가 좋다.
--- p.135 「여학생」 중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나와 진짜 나를 분명히 구분 짓고 그저 좋게 좋게 처신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남에게 욕을 얻어먹더라도 언제나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평생을 자기만큼 연약하고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고생 따위 하지 않고도 일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사서 고생할 필요도 없을 텐데.
--- p.138 「여학생」 중에서
당사자는 괴롭고 고통스러운데도, 간신히 참아내며 세상으로부터 뭔가를 들어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도, 역시나 두루뭉술한 교훈만 되풀이하며 대충 어르고 달랠 뿐이다. 우리는 늘 부끄럽고 무책임한 말에 속고 있다. 우리는 결코 찰나주의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너무 먼 산을 가리키며, 저기까지만 가면 반드시 좋은 전망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지금 이렇게 극심한 복통을 앓고 있는데, 그 복통에 대해서는 본체만체하며, 자자, 조금만 참아, 저 산꼭대기까지만 올라가면 되니까, 하고 말하는 게 전부다. 분명 누군가는 틀렸다. 나쁜 건 바로 당신이다.
--- p.152~153 「여학생」 중에서
내일도 또 똑같은 날이 올 것이다. 평생, 행복은 오지 않는다. 그건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 올 것이다, 내일은 꼭 오리라, 하며 믿고 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크게 쿵, 소리를 내며 이불에 쓰러진다. 아아, 좋다. 이불이 차가워 등이 시원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온다, 라는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행복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는데, 이튿날 근사한 행복의 소식이, 버린 집을 찾아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온다. 행복은…….
--- p.153~154 「여학생」 중에서
그렇지, 난 장사꾼이었지. 돈 때문에, 난 아름다운 그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멸시받아왔던가! 잘 받겠습니다. 전 장사꾼이에요. 멸시받은 그 돈으로 그 사람에게 멋지게 복수해줄 겁니다.
--- p.180 「직소」 중에서
서둘러라, 메로스! 늦어선 안 된다! 사랑과 진심의 힘을 지금이야말로 일깨워줄 때다.
--- p.199 「달려라 메로스」 중에서
이제부턴 애교고 뭐고 통하지 않는 진짜 어른의 일이다. 쓰고 싶은 것만 쓰고 싶다.
--- p.207 「도쿄팔경」 중에서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여유였으나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적어도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돈 걱정 없이 좋아하는 것만 쓸 수 있다.
--- p.207 「도쿄팔경」 중에서
다시, 한 작품을 썼는데 역시 불만족스럽다. 한숨 돌리고 또 다른 한 편을 쓰기 시작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작은 콤마의 연속일 뿐이다. 영원히 유혹하는 저 악마에게 나는 서서히 먹히고 있다.
--- p.221 「도쿄팔경」 중에서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됐을까? 나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p.236 「도쿄팔경」 중에서
원고료든 인세든 혼자 힘으로만 벌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두의 합작품이다, 모두 함께 나누는 게 사실은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p.279 「고향」 중에서
나는 방 안을 빙빙 돌며 지금 눈물 흘리면 거짓이다, 지금 울면 거짓이다, 하고 자신에게 말하며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도 모르게 방으로 도망쳐 혼자 울면서 어머니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씩 착한 아들. 아니꼽다.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 천박한 영화가 있었는데. 서른네 살이나 처먹고서 이게 뭐 하자는 거냐.
--- p.298 「고향」 중에서
’이제 와 효자 노릇이라도 할 셈인가. 경찰서나 들락날락하는 주제에 말이야. 울면 거짓이다. 눈물은 거짓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팔짱을 끼고 방을 휘젓고 다니는데 금방이라도 오열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담배를 피우고 코를 풀고 별짓 다 해가며 끝끝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 p.299 「고향」 중에서
형들이 날 용서했는지 안 했는지, 그런 건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평생 용서받을 리도 없겠지만, 용서받으려는 그 뻔뻔스러운 생각도 버려야 한다. 결국, 문제는 내가 형들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다. 사랑하는 자는 행운아다. 내가 형들을 사랑하면 그만이다. 괜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는 혼자 자작하며 실없는 자문자답을 계속하고 있었다.
--- p.303 「고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