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며 적는 글의 서문을 열다가,
서문이라는 단어 사이에 달이 들어와
획을 몇 줄 긋더니 어느덧 서간문이 되어 간다.
너도 달을 보고 있는 새벽일까?
--- p.16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는 문장을 보았는데
너와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게 나라면 나는 얼마나 소식가인지.
아니면 내 위는 얼마나 작아서
그 적은 추억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는가 싶다.
--- p.19
안녕,
안녕이라는 말이 가장 많은 걸 담겠지.
안녕, 안녕….
내일도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 담아서.
--- p.25
꿈에서 나는 갈 길 잃은 별이었는데,
갈 곳을 잃은 별이었는데…
가야 할 곳을 생각하니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나 마음이 우주처럼 아팠다.
--- p.47
보내는 글들은 별 하나 없는 어둠 아래 적으니,
기억해 줄 별도 없어서 사라지지 않게
잊히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지 않게
담이가 평생 곁에서 읽어 달라는 간절한 소망 하나.
--- p.54
우리 생이 결국엔 사랑으로 가득 차
사랑이 우리의 방식이라 하여도
누구도 말을 못 꺼내게 삶의 방식을 우리끼리 정해 두어요.
우린 아직 모든 것에 미숙하니까.
우린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인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하며
넘길 수 있는 사랑을 해요.
--- p.58
나의 세상에도 있었을까?
광활한 세상에서 나 하나만 찾아 주던,
찾아가던 존재가…
앞으로 그런 존재에게 닿을 수 있을까?
--- p.65
읽으면 부서질 단풍 같은 문장들이지만,
마음만은 닿아도 부서지지 않기로.
받으면 곧 겨울이겠지만,
가을 같은 사랑을 했다고.
짧은 새에도 온 세상이 서로의 색이었다고.
--- p.79~80
모두가 망각이 축복이라 해도
나에게 너의 소실은 언제나 불행일 테고,
누구의 말처럼
언제나 축복은 짧고 불행은 길던 것이 삶이니까.
그런 불행 역시 품고 갈 수 있다고 다짐하는 새벽이다, 담아.
--- p.89~90
사랑 아닌 것들은 너무나 사랑처럼 오고
사랑이었던 것들은 늘 사랑 아닌 척 온다.
담, 담이.
지나고 보면 사랑인 나의 사람.
--- p.96
이 편지가
가을이란 이름으로 겨울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담이, 담이,
이름도 두 번 불러 봐요.
한 계절을 마무리하는 것은 언제나 이별처럼 어색합니다.
--- p.112
편지에는 나 하나 너 하나 우리 하나입니다.
그러나 나 너 없어지고 우리만 남을 날을 기다려요.
생은 꼭 나를 지우고 너를 찾다 우리를 발견하는 과정 같아서.
--- p.126
이렇게 도달할 마음이면 사랑이라 적지 않아도 사랑이겠지.
닿지 못해도 파도만 보고 바다임을 알 듯.
--- p.140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너를 붙잡는 거라곤
고작 이 편지 위에서 하염없이 네 이름을 부르는 게 다인,
사랑 적으며 너 하나 정확히 알지를 못하던 나의 모습.
--- p.156
오늘은 너를 덮고 가는 거야, 사랑하는 담이.
우리 오늘은 서로를 덮어 주는 이불이 되자.
서로를 덮으려고 쓰던 문장처럼,
한 곳도 빠짐없이 덮어 주려고
끝없이 늘리던 문장이 되어 주자.
--- p.159
매번 글을 적으며 좋은 것은
언제든 네 생각을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세상은 내가 재단이 가능하다는 것.
그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너에게 줄 수 있고.
그렇다면 사랑, 사랑, 사랑, 조금 비틀어 나랑, 사랑.
이런 메모도.
--- p.163
나는 너를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너를 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p.175
언제나 대답은 무음이죠, 마음은 이렇게 울리는 진동이지만요.
--- p.182
담아,
삶은 때론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눈을 감고 있어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고
마음이 온통 흐려야 명확해지는 것이 있는데
담이는 그러한 존재지.
눈을 감고 있고
마음이 온통 흐려도
유일하게 떠오르던 존재.
때로는 어두워야 보이던 빛처럼
눈을 감아야 그제야 선명해지던 사람.
--- p.194
이 편지가 포옹이 될 수 있다면,
딱 삼 분, 삼 분만 안고 있자.
--- p.196
점 하나에도 불붙는 청춘의 사랑.
보기 좋은 문장은 두어 번 적어 속으로 읽으면
저 문장에도 담이가 셋이나 있구나.
청춘도, 사랑도 담인데 나머지 하나를 찾는다면,
내 밤을 단 하나만으로도 멈추는 작은 반점.
--- p.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