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코스 순위를 선정하는 기관들의 모든 평가에서 ‘샷밸류(Shot value)’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앞세운다. 샷밸류 평가 점수를 다른 항목(난이도, 디자인 다양성, 기억성, 심미성, 코스관리 등)보다 두 배로 배점한다. 샷밸류가 높아야 좋은 코스라고 보는 인식도 있다. 그런데 샷밸류는 국내외 전문 자료들에서 명료하지 않게 설명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샷밸류의 개념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모호하게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코스를 평가하는 패널(심사위원)들 가운데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족하게 아는 사람, 또는 오해하는 이들이 더욱 많다.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으면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과 전문 자료들을 취합 요약하여, 샷밸류의 개념을 정리해 둔다.
첫째, 한 샷의 샷밸류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샷밸류는, 그 샷을 목표 지역에 적중하여 세우기 어려운 정도를 뜻한다. 샷의 거리와 방향, 탄도의 높낮이와 볼 회전 등의 기량을 얼마나 발휘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볼이 놓인 위치와 상태, 목표지점의 거리와 크기······
---「롯데스카이힐제주 컨트리클럽 편(셋째 권)」중에서
3대에 이른 코스의 변화는 단순히 취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진화’라고 보는 게 맞겠다. 수목 정원 조경은 선대(先代)의 호암 湖巖 이병철 회장이 이룬 조형적 미감을 최대한 살리되, 전략적인 플레이 루트와 그린 공략에 있어서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의 도전적인 서구풍을 적극 도입하는 한편, 페어웨이를 걷는 느낌은 본디 정원형 코스의 평안함을 지켜서 조화를 이룬 듯하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이렇듯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음을,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 짐작한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반면에, 애초의 코스가 문화유적과 같으므로 원형 그대로 보존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골프계 사람들 사이에 떠돈다.
---「안양CC 편(첫째 권)」중에서
블랙스톤 이천 코스의 난도가 높은 것은. 무엇보다도 코스가 수비와 공격을 함께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의 길은 교향곡처럼 장려하지만 플레이를 시작하면 골퍼의 공격을 방어함을 넘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골퍼에게 도전해 오는 느낌을 준다. 목표점 없이 보면 아름다운 자연풍광이지만 플레이어가 공략을 시작하면, 이른바 ‘도전적인 코스’로서의 ‘도전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전적이라 평가되는 골프장에서 이런 느낌을 가끔 만나는 데 견주어 이 코스에서는 자주(거의 모든 홀에서) 마주치게 된다.
이런 성격은 이곳과 비슷한 지형에 기댄 여타 코스들과 사뭇 다르다. 위성사진을 보면, 이 코스는 부근 골프장들과는 뚜렷이 다르게 자연 지형을 거의 보존하면서 길을 냈음이 선명히 드러난다. 근처 골프장들은 여주·이천의 완만한 능선을 펴고 다듬어 ‘평화로운 모험’의 스토리를 빚어낸 곳이 많은데, 이 코스는 이곳 지형의 근본 흐름을 찾아내서 더 역동적으로 강화하고, 자연 생명력이 골프 게임에 강렬하게 참여하도록 했다.
---「블랙스톤이천 골프클럽 편(셋째 권)」중에서
그러나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군자리코스 자리에 어린이공원을 짓기로 결정한다. 여러 갈등 끝에 군자리코스를 포기한 사단법인 서울컨트리클럽은 그 매각 대금으로 한양CC를 인수하게 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어린이대공원을 지었던 까닭이 궁금했던 차에, 당시의 사정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1972년 5월 평양에 밀사로 파견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북한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는데, 북한에서는 그에게 평양 시내 ‘어린이공원’을 관람시켰다 한다. 당시에는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던 때여서 자랑하고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던 듯하다.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에도 당장 어린이대공원을 만들라 지시했다 한다. 즉시 조성하라는 명령을 따라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이미 부지가 잘 조성된 군자리코스가 ‘징발’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은 1972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원했다.
---「서울·한양CC 편(둘째 권)」중에서
18홀 내내 바다를 보는 골프장은 나라 안에서 이곳뿐이다.
1번 홀부터 코스로 넘나들던 바다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볼수록 푸른빛이 짙어진다.
5번 홀 티잉 구역에서부터는, 가까운 나정 고운모래 해변과 전촌항, 더 나아가 감포항의 희고 붉은 등대들까지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그 너머 쪽물 풀어놓은 듯한 바다가 하늘과 닿는다.
구십 년대 중반의 어느 가을, 나는 경상도와 강원도에 이르는 동해안 길을 목적지 없이 여행했다.
울산 장생포에서 몽돌해변과 정자항을 거쳐 나정 고운모래해변과 솔밭길, 감포항과 오류고아라 해변, 구룡포로 이어지던 바닷가 마을들은 내 기억 한 쪽 벽면의 푸른 벽화처럼 넘실대고 있다. 그때만 해도 인적 없던 문무대왕 해중릉 앞 파도치는 모래밭에 널렸던 반 건조 오징어의 슴슴짭조름한 바다 맛을, 마을마다 고요하던 햇빛과 바람의 음률을, 나는 수십 년 동안 그리워했다.
---「골프존카운티 감포 편(셋째 권)」중에서
골프에서, ‘명문 코스’와 ‘명문 클럽’은 다르다. ‘명문(名門)’이란 큰 업적을 이룬 인물을 많이 낸 뿌리 깊은 가문이나 학교 등을 이르되, 스포츠에서는 우승을 많이 하는 등의 뚜렷한 실적을 낸 구단 등속을 뜻한다. 골프장 가운데서는 첫째, 이름난 토너먼트 등을 개최하여 변별성이 검증되고 특출한 우승자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등 골프 문화 발전에 기여도가 높은 골프 코스를 ‘명문’이라 하며, 둘째, 사회에서 명망이 높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회원으로 모여서 파급력 있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클럽을 또한 ‘명문’이라 한다. 셋째, 위의 첫째, 둘째 조건을 함께 충족하는 곳은 두말할 나위 없는 명문이다.
첫째의 ‘명문 코스’를 대표하는 곳으로 미국의 유명한 퍼블릭 코스인 ‘페블비치골프링크스’를 들 수 있겠고 둘째의 ‘명문 클럽’으로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안양CC'를 높이 쳐왔다. 셋째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의 세계 정점에는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자면 ‘나인브릿지’ 등이 있겠다
---「해슬리나인브릿지 편(둘째 권)」중에서
골프코스 디자이너 송호 씨가 설계한 코스들을 내가 실제 라운드하면서 느끼고 발견한 몇 가지 (장점)특징들을 적어둔다.
?첫째, 그는 한국의 산중 지형에서 코스 루트를 찾아내는 데 두드러진 능력을 입증해왔다. 예를 들어 양평 ‘더스타휴’에서는 다른 설계가들이 모두 포기한 지형에서 길을 찾아내 이른바 ‘상위 랭킹 코스’로 빚어냈다. 춘천의 ‘더플레이어스’에서는 가파른 악산(嶽山)에서 평활하고 유장한 27홀 코스를 끌어내는 능력을 보인다. 토목학을 전공한 강점이 우리나라 지형에서 발현되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그는 이븐파를 칠 수 있는 수준의 스크래치 플레이어로서, 플레이어의 다양한 상황을 스스로 체험하며 코스의 변별력을 안배하는 장점을 보여 왔다. (세계적 설계가들 중에는 골프를 잘 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는 여러 등급의 골퍼들이 자기 수준에 맞게 공략하는 다양한 루트와 방어 장치를 경험을 통해 빚어냄으로써, 플레이어빌리티(playability)와 게임의 재미를 높이는 기교를 발휘해 왔다. ‘킹스데일’, ‘세인트포’ 등에서 그런 특징이 잘 보인다.
셋째, 그는 시대적 흐름과 상황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온다. 산중에 듄스(Dunes) 코스를 구현한 춘천의 ‘라비에벨 듄스’, 샌드 벙커 없는 코스를 시도한 ‘설해원 레전드코스’ 등은 매우 실험적이다. 그런 한편······
---「엘리시안제주 컨트리클럽 편(셋째 권)」중에서
선수 출신인 잭 니클라우스는 다른 코스 디자이너들과는 설계의 관점과 방법이 달랐던 듯하다. 그는 현장의매 홀 각 지점을 걷고 밟으며 직접 손으로 스케치를 했다. 티잉 그라운드와 IP 지점, 그린의 높이와 굴곡, 벙커의 위치와 모양 등을 플레이어의 진행 위치에서 보는 입체적 시각으로 그려냈다.
토목이나 조경을 전공한 설계가들이 등고선 도면을 주된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과 달리, 그는 플레이어의 눈높이에서 보는 최종적인 모습(Final Appearance)을 통찰하고 구현했다. 현장을 걸으며 내리막과 오르막, 보이는 구간과 안 보이는 구간을 직접 세세하게 스케치했다한다.
“티잉 구역에서 그린이 보이게 한다”는 것이 잭니클라우스의 ‘코스 설계 철학’이라고 흔히 알려지는데, 그는 티잉 구역 뿐 아니라 모든 플레이 구역에서 골퍼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Look &Feel)’ 하는 직관적 배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공략 방법을 판단할 요소들을 플레이어의눈앞에 되도록 많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잭니클라우스GC 편(둘째 권)」중에서
매 홀마다 5개의 티잉 구역(블랙, 블루, 화이트, 골드, 레드)을 두었다. 골퍼들이 자기 실력에 맞게 티를 선택하면, 300야드 이상 보내는 프로선수도 200야드 남짓 티샷 비거리의 보기플레이어도, 14개의 모든 클럽을 골고루 사용하게 된다. 홀에서 드라이버 샷이 떨어지는 자리를 랜딩 지점(Landing Zone) 설계(측량) 용어로는 IP(intersection point)라 한다. 이 코스는 블랙티에서 260미터, 블루티에서 230~240미터, 화이트티에서 180~220미터, 레드티 150미터를 기준(평지 기준)으로 IP를 운용하고, 남은 거리에서 다양한 클럽으로 어프로치를 시도하도록 했다(코스의 길이는 이 IP를 기준으로 재는데, 이 균형이 깨지면 변별력과 공정성이 무너지게 된다. 정상급 프로선수들의 토너먼트에서 드러난 변별성은 그 안배가 적절하다는 방증이겠다).
---「세종필드 골프클럽 편(둘째 권)」중에서
15번 홀, 바다 건너 200미터 거리에 놓인 그린으로 공을 보내야 하는 플레이어의 심장 근처까지 바닷물은 밀려온다. 섬처럼 아득한 그린 너머에는 파인비치의 상징이라는 한 그루 소나무(Pine)가 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다. 그 뒤 수평선으로 언뜻언뜻 섬들이 떠간다. 핀을 향해 똑바로 공을 치면 170미터 이상 보내야 절벽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으니 이 홀은 ‘플랜B의 자비’가없다. 잘 치는 고수나 잘 못 치는 하수나 모두 그린을 직접 노리고 공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프로 수준의 골퍼들은 그린 위 어느 자리에 공을 떨어뜨려야 할지 선택하겠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에게는 절벽을 넘겨 그린에 도달하는 것이 과제인 홀이다. 비교적 가까운 왼쪽 절벽 너머로 안전하게 공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이 장엄한 홀에서 누가 그렇게 비루하게 치고 싶겠는가. 그렇게 치고 나면 스스로를 탓하며 잠 못 이룰 것 같다.
---「파인비치GL 편(둘째 권)」중에서
강진은 어머니 여신(母神)의 가랑이 같은 모양 땅이다.?태평양에서 밀어온 바다의 장대한 기운이,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을 가르며 깊숙이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 산은 탐진강을 적셔 흘리고 해양은 구강포를 밀고 들어와 교합하며 엄마 품속처럼 살가운 강진만을 이룬다.?강산과 바다가 서로를 끌어안고 깊이 받아들이며 온기를 주고받는 곳이다.
베아채코스 1번 파5 홀은 그 생멸하는 자연의 이야기 속으로 감응해 들어가는 문이다. 티잉 구역에서 보면 넓은 페어웨이가 유장하게 물결치듯 바다로 뻗어나가 구강포의 푸른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몸은 티샷을 하고 걸어 나가지만 넋은 먼 바다에 홀려 떠나는 느낌이다.
이 홀에서 공과 목표지점만 노려보는 골퍼는 이미 그린피의 절반 이상은 낭비한 것이다. 숨죽여 흐느끼는 자연의 관능은 느끼지 못할지언정 눈앞의 애틋한 풍광에는 젖어보고 가야 한다.
---「다산베아채 골프앤리조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