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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떠난 인어

사막으로 떠난 인어

: 지병림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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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344g | 128*182*17mm
ISBN13 9791197825699
ISBN10 11978256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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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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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소주잔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들고 웃을 때의 미소는 뭐든 다 들어줄 것만 같았다. 너무 살가운 사람…. 예쁜 사람…. 소주처럼 달달하게 내 마음의 빗장을 녹여주고, 촉촉하게 나를 바라보는…. 장국영을 닮은 그의 눈빛을 언제라도 기꺼이 마주하고 싶었다. 내 앞에 놓인 소주잔을 가득 채워주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의 눈빛엔 호감을 뛰어넘은 신뢰와 안정감이 어려있었다.
--- p.21

백인 남편은 엄마에게 가방을 사주면서 무한한 우월감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처럼 말도 안 되는 나라와 수십 년째 힘겨루기나 하고 있는 엄마의 조국을 측은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본인이 엄마를 수렁에서 구원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나라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들을 자신이 얼마나 손쉽게 이룰 수 있는지 증명하느라 신났을 것이다. 오믈렛와 토스트로 아침을 차리고 백인을 닮은 아이들과 잔디를 깎으면서 엄마는 과연 행복했을까? 나를 포기하는 대가로 엄마는 무엇을 얻었을까?
--- p.26

부푼 가슴을 안고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봄이 훌쩍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곧 가을이라니, 잊혀진 여름은 잠시 쉬어 가는 경유지 같다. 환승역…. 아, 아직도 목적지에 이르지를 못했다는 말인가. 봄날 품어보았던 모든 기대와 꿈은…. 너와 하나가 되어 평생 해로하리란 약속은…. 잠깐 쉬어 가는 경유지였을 뿐인가.
--- p.50

“전여친도 승무원 지망생이었어요. 힘든 일이라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하겠다고 하길래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는데,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더라고요.” 승무원과 사석에서 만난 일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승무원과 맞선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신기해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굳이 아닌척하려고 애쓰고 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로 앞뒤도 없다. 항공업과 관련된 온갖 인연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한 수 위에 서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없어 보였다.
--- p.92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의 일원처럼 나를 다정하고 깍듯하게 대했다. 나를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 같진 않았다. 이제 엄마라면…. 더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엄마, 행복해…? 엄마가 발라준 새우를 먹다 말고 나는 물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려고 엄마를 보러온 게 아니었는데,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 p.110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오랫동안 달을 바라보았다. 해가 떠난 자리를 달이 메꾸고 있었다. 심연과도 같은 검은 우주는 빛을 잃었지만 쏟아지는 별들로 부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달을 향해 물었다. 아, 정말 엄마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걸까요? 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의 마지막 음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 p.113

그동안 당신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 어땠는 줄 알아? 다락에 감춰둔 홍시가 행여 흠이라도 나면 어쩌나, 누가 훔쳐가면 어쩌나, 늘 안절부절이었어. 그런에 이렇게 당신을 품에 안게 된 지금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아, 이제야 살 것 같아…!
--- p.226

상이 차려지자 그는 황제처럼 느긋한 자세로 고고한 식사를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쥐고 스테이크를 자른 다음, 왼손으로 포크를 눌렀다. 한 점씩 고기를 입으로 옮기고 여유롭게 씹어 삼키는 그의 눈빛엔 계획과 규율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진행시킬 일들과 그에 소요될 에너지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 생각이 있다는 얼굴이었다.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어줄 사람 따윈 개의치 않는 눈치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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