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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삶에도 문진표가 있나요?

엄마의 삶에도 문진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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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12g | 140*210*17mm
ISBN13 9791158772970
ISBN10 1158772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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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에그팬’을 들였다. 나무 손잡이에 무쇠로 된 4구 에그팬이었다. 계란만 톡 하고 올려 구우면 순식간에 호텔식 계란프라이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척 간단하리라는 기대는 이내 난관에 부딪쳤다. 기름을 먹이는 ‘시즈닝’이 완벽하지 못한 날에는 계란이 팬에 눌어붙어 타버리기 일수였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요리가 끝나면 한 번 더 기름을 먹여주었다. 아이들이 ‘보름달 계란프라이’를 기다리는 눈빛이 점차 간절해진다. 달인이 된 기분으로 정성껏 프라이를 구워내기 시작했다. 그날의 컨디션과 굽는 방식에 따라 계란프라이의 바삭함과 쫄깃함 그리고 노른자의 익는 정도가 달랐다. 나는 이런 과정이 〈붕어빵 타이쿤〉 게임처럼 즐겁기 시작했다. 이러다 너무 빨리 손에 익어 눈감고도 잘하게 되면 어쩌나 슬슬 걱정도 되었다.
팬으로 요리하는 일은 일종의 즐거움을 주는 ‘놀이’이다.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 성질과 모양이 천지 차이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는 순간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클레이로 원하는 작품을 만들고 흐뭇했던 아이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간단한 요리 하나로 성취감과 함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좋은 취미가 될 것만 같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이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앙텔므 브리야 샤바램이 말했다. 사소한 요리의 발견은 오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 pp. 35~36

좋아하는 음악을 잔잔하게 켜고 창문을 연다. 밖에선 매미가 라디오처럼 지지직 울었다. 뜨거운 열기를 품은 여름철의 눅눅한 공기가 커튼을 밀며 들어온다. 동그란 시계는 이제 오후 여섯시. 곧 있으면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든다. 들뜬 열기로 바사삭 타들어가던 햇빛은 하늘 위에 분홍색 보석을 흩뿌린다. 현란한 노을은 더위와 싸우느라 지쳤을 많은 이들을 위로한다.
여름과 겨울은 지갑이 가벼운 이들을 골라 괴롭힌다. 어르신들은 에어컨이 있어도 잘 켜지 않는다. 여름이면 혼자 사는 울 엄마도 두 뺨이 자두처럼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곤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올 여름엔 차가운 메밀국수를 대접했다. 국수집에서 꽝꽝 얼린 육수와 가지런히 제면된 국수를 들고 들어가는 길가에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나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엄마랑 함께 살던 어린 시절 온갖 추억들이 일렁이고 가슴 뛰게 하는 해질녘이었다. 속 시끄러웠던 마음도 수줍은 듯 불 빨간 하늘 앞에서 표표히 녹아내렸다.
‘엄마인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 pp. 132~133

흔적이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고민의 무게도 늘어갔다. ‘이게 식탁이야…… 신주단지야……’ 매직이나 펜이 묻은 자리에는 물파스를 발라 지워주고 움푹 파인 곳은 견과류로 칠해주었다. 극진히 돌봐온 지 삼 년이 지났다. 나무 식탁에는 점점 가족들의 흔적들이 남았고 고스란히 추억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무 식탁은 사람처럼 늙어갔다. 식탁 위에 매일 앉던 사람들도 조금씩 늙어갔다. 세월은 사람에게 기미와 주름살을 선물했고 나무 식탁 위에는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이들의 흔적이 늘어갔다. 샤워를 하다 무심결에 바라본 나의 배 위에는 가로로 선명한 출산의 흔적이 남았다. 우리는 어느새 닮아 있었다.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늘 나누어줘도 더 줄 게 없어 미안한 엄마의 마음을…… 나무 식탁이 함께 지탱해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간다. 오래된 장롱에 경첩을 수리해주고, 원목 장식장 위에 기름을 먹일 때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에 흐뭇해지곤 한다. 가구는 마치 오래된 동네친구 같다. 나의 지난 과오들을 모른 척 덮어주고 늘 옆에서 말없이 기다려주는 듬직한 친구. 물건 하나에도 영혼이 깃드는 걸 느끼자…… 삶이 좀 더 생경해지기 시작했다.
--- p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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