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적으로 억압된 아이들은 무언가를 시험해 보고 발견하고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닫힌 듯 사물에 대한 관심이 적은 반면, 내면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을 해낸다. 내면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한 아이는 놀이에 몰입하지 않고 피상적으로만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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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시험해 보면서 그 사물의 특성을 발견해 나간다. 아이는 이 세상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며, 자신이 무언가를 알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주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아이가 모든 발달 단계에서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러면 자신의 능력을 체험할 수많은 행동 기회가 아이에게 열린다. 이런 경험을 한 영아는 자신감이 커지며, 보육원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에 대해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결국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아이의 원천적인 관심을 유지시키는 일, 독립적이며 자유놀이를 펼쳐나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일은 대부분 어른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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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약근 조절을 둘러싸고 생긴 문제는 단순히 아이가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조절에 서투르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심리상태와 긴밀하게 연결된 관계 형성과 사회적인 행동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참고문헌 2). 피클러 연구소의 경험에 따르면, 괄약근 조절과 관련한 어른과 아이 사이의 갈등은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육아를 담당하는 어른과의 관계가 원만한 아이는 전혀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이런 발달 과정을 무리 없이 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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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아가 되풀이해서 자기 손을 쳐다보고 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거나 자기 주변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장난감을 건네준다. 아기가 주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주위를 둘러 보거나 자신의 침대 곁을 오가는 보육교사를 계속 쳐다보는 행동, 침대의 격자 난간을 살펴보고 몇 차례 건드리는 행동, 침구에 달린 끈을 잡아 들고 보는 행동 등을 가리킨다. 생후 3개월이 지나면 영아는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아기 침대의 격자 사이에 줄을 묶어 달아 둔 딸랑이처럼 영아의 시야에 놓여 있는 장난감은 영아가 자기 손을 발견하는 것을 방해하고, 영아의 시선이 손에서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하도록 주의를 분산시킨다. 게다가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없고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는 장난감은 영아에게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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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난감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영아의 손가락 움직임이 점점 섬세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영아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건드리고, 만지고, 쓰다듬는다. 또 한 갈라진 틈이나 튀어나와 있는 부분처럼 물건의 표면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들을 발견하고는 긁어 보고, 그 틈새나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시험해 본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부스러기를 줍기도 하며, 자신이 신고 있는 실내화나 다른 곳에 붙어있는 실을 떼어내 오랫동안 가지고 놀기도 한다. 영아가 이런 손놀림을 반복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표면의 모양이 각기 다른 장난감을 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삼키거나 눈이나 귓속에 넣을 수 있는 작은 물건은 놀이 울타리 안에 놓아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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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 정도가 되면 영아는 다양한 방법으로 물건을 다루기 때문에 익숙해진 몇 가지 물건 이외에 새로운 놀이 도구를 필요로 한다. 커다란 놀이 울타리나 방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우리는 각 아이에게 6개 내지 8개의 놀이도구를 준다. 놀이 공간이 좁아서 옆으로 몸을 돌리거나 뒤집거나 몸을 쭉 펴서 자신의 장난감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쉽게 손이 닿는다면 이보다 적은 수의 장난감을 주어도 된다. 따라서 생후 6개월 이상 12개월 이하의 아이들이 점점 더 다양한 놀이를 하는 경우에는 이전 시기보다 훨씬 많은 장난감을 줄 필요는 없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방의 다른 쪽 구석에 놓여 있어도 보통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하거나 기어서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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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독립적인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전제조건 중 하나는 놀이 울타리이다. 영아가 아직 옆이나 위를 보고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시기에는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격자 모양의 나무 울타리를 설치해 보호한다. 이런 울타리는 이미 기어 다니거나 일어설 수 있는 아이들로부터 그 영아를 분리하여, 영아가 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놀이 도구를 마음껏 탐색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울타리를 사용하여 하나의 공간을 분리하면, 배밀이를 하거나 기어 다니는 영아들이 이미 걸어 다니기 시작한 18개월에서 24개월의 아이들에게 깔리는 일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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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세 정도, 즉 여러 가지 사물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아이는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아이는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놀다가 그것들 가운데 모양이 같은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처음에는 드물지만, 시간이 지나면 때때로 아이는 이따금씩 구슬 체인 몇 개나 컵 몇 개를 나란히 놓아둔다. 그러고는 마치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인 것처럼 이전의 방식대로 계속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의도적으로 모양이 같은 물건을 찾아 한곳에 모은다. 아이는 방금 전에 자신이 바구니 속에 집어넣은 것과 모양이 같은 놀이 도구를 방바닥에서 발견하고는 집어 든다. 그렇게 모양이 같은 놀이 도구를 서너 개 모아 놓은 뒤, 거기에 다른 것들을 가져다 놓거나 새로운 놀이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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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물건 가운데 원하는 것을 찾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사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음을 발견하며, 그것들의 특징을 관찰한다. 아이는 그것들을 비교하면서 다양한 물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고, 서로 일치하는 특성에 따라 물건을 분류하여 한 곳에 모은다. 관찰하고, 비교하고, 어떤 특징에는 주목하면서 다른 특징은 무시하고, 일정한 특징을 근거로 여러 그룹으로 분류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분명 아이들이 무언가를 모을 때 인식 및 행동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고 과정이다.
아이는 이곳저곳에서 찾아 모은 알록달록한 천이나 블록의 바구니를 바라보면서, “내가 저걸 해낸 거야!”라는 만족감과 기쁨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물건 모으기는 다른 놀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는 경험,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체험을 제공한다.
모은 물건을 보존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아이는 그 과정에서 “내 것”, “네 것”, “우리 것” 같은 개념을 접하며, 이와 연결된 행동 방식을 배우게 된다. 물건 모으기는 독립적인 놀이로서의 의미를 점차 잃어버리지만, 무언가를 모으고 보존하려는 소망과 욕구의 형태로 아이의 내면에서 이어진다. 그 욕구는 산책길에 주운 나뭇가지나 조약돌을 상자나 서랍 속에 고이 모아 두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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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이 양도 충분하고 아이들의 관심에 부합한다고 해도, 여러 명이 함께 놀다 보면, 특히 특정한 물건을 모으는 놀이를 하다 보면 때때로 서로 무언가를 빼앗는 일이 생겨난다. 이 경우 대부분은 아이 중 한 명이 다른 장난감을 통해 만족함으로써 갈등이 해결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아이는 자신이 선호한 장난감이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다른 아이에게 빼앗긴 것을 모욕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장난감을 두고 갈등을 겪는 아이 중 한 명이 그 장난감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 기꺼이 친구에게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합의하지 못해서 서로 싸우는 일도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이는 보육교사에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육교사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난감은 항상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규칙을 명백하게 전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장난감을 빼앗아간 아이의 마음을 이 해한다는 것도 전달해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아니다. 보육교사가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표현하려면, 아이가 갖고 싶어한 장난감과 똑같은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거나,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똑같은 장난감을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런 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거나 잠시 틈을 낼 상황이라면, 아이가 갖고 싶어한 장난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거나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 아무도 양보하지 않고 한 아이가 울거나 두 아이가 모두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장난감을 빼앗겨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뿐만 아니라 있는 힘을 다했지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얻지 못한 아이도 다정한 말과 위로와 이해가 필요하다. 후자에게는 아무리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더라도 친구가 가지고 노는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힘을 사용하여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규칙이다. 그러므로 보육교사도 아이가 빼앗아간 장난감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빼앗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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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영아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혼자서 자유롭게 놀도록 놔두는 것은 영아의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보육교사의 지도가 없는 가운데(가정에서는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이 없는 가운데) 아이가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노는 것이 아이의 발달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영아 발달 대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이에 필요한 외적 조건이 지속적으로 충족되고, 아이가 어른의 개입 없이도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놀이를 하는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를 돌보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며, 어른이 지켜보지 않더라도 아이가 안정감을 느낀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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