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는 시조 분야에서 보면 가객들의 가집 편찬과 기녀들의 연모지정, 작자 미상의 장시조들의 해학과 풍자가 주류를 이룬 시대였다. 이 책에서는 김천택, 김수장, 박효관, 안민영, 송계연월옹 같은 가객들의 시조와 소백주, 다복, 구지, 매화 같은 기녀들의 시조 그리고 「각시네 되오려논이…」, 「민남진 그놈…」, 「시어머니 며느리가…」 등등 무명의 장시조들을 다루었다. 여기에 덧붙여 고시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개화기 시조를 소개했다. 개화기 시조는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시조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개화기 시조는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며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문학 장르였다. 필자는 이에 개화기 시조를 고시조의 마지막 자리에 올려놓았다.
조선 후기 시조와 기녀시조는 문화사적 측면에서, 장시조와 개화기 시조는 시대사적 측면에서 주로 논의했다. 이들의 시조 대부분은 생몰연대를 알 수 없어 따로 분류해 다루었다.
필자는 시조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공시적·통시적 측면에서 조명했다. 많은 시조들을 총체적으로 다룰 수 없어 시대마다 언급해야 할 시조들을 선정, 이를 시대순으로 정리해 제목을 새롭게 붙여 집필했다. 그리하여 전 5권으로 압축, 이 책을 끝으로 일단의 완결을 보았다.
1권은 『시조는 역사를 말한다』, 2권은 『시조로 보는 우리 문화』, 3권은 『시조로 찾아가는 문화유산』, 4권은 『문화유산에 깃든 시조』 본서 5권은 『시조의 문화와 시대정신』이다. 이 중 『시조로 보는 우리 문화』는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다섯 권은 중고등학생들부터 대학, 대학원생들에 이르기까지 시조를 입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독을 권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청구영언』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으로 『가곡원류』, 『해동가요』와 함께 조선의 3대 가집의 하나이다. 이에는 고려 때부터 18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의 시가 1,015수(시조 998수, 가사 17수)를 수집·정리하여 가곡의 유형(중대엽·삭대엽)과 음조(평조·우조·계면조)에 맞게 묶어 후세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있게 하였다.
시조는 이때까지만 해도 학자와 문인들의 전유물로, 도학적·관념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등장한 가객들은 시조의 제재를 일상생활 속에서 취해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 때로는 해학적 표현으로 시조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에 악장인 북전, 가사인 「맹상군가」, 사설시조인 만횡청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조를 정리하여 시조 발전과 후진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 p.24~25
진양 기녀 옥선의 시조이다. 누가 정이 좋다고 했는가. 이별도 인정에 속하는 것이더냐. 이별은 평생 처음이요 님은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이다. 아마도 정 주고 병 얻은 것은 나뿐인가 하노라.
평생 처음으로 사랑한 님이건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기약 없는 사람이다. 님께 선뜻 정을 주고 말았으니 얻은 것은 못 고칠 상사병뿐이다. 처음부터 깊은 정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기녀도 사람인지라 밀려오는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기녀들의 시조는 대부분 바람같이 스쳐가는 사랑들이다. 정 주지 말았어야 했건만 사랑 앞에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도 예와 다를 바가 없다. 남녀 간의 사랑이 어찌 기녀들에게만 있겠는가. 애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유교 이념에 철저한 당시 사대부들의 생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
솔직 담백한 기녀들의 사랑이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 p.138~139
친일파를 비판, 풍자한 대표적인 개화기 사설시조이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에 이어 1906년 통감부 설치,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 7조약, 군대 해산,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1909년 사법권을 박탈한 기유각서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근일에 개 규칙’들은 이러한 조약, 각서들이고, 낯선 일본인은 반갑게 맞이하고 낯익은 조선인에게는 컹컹 짖어대는 일곱 마리 개들은 이에 앞장선 친일파들을 지칭한 것이리라.‘ 일곱 마리’라고 숫자를 특정한 것으로 보아 ‘정미칠적’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미칠적이란 정미 7조약 체결에 찬성한 내각 대신 7인(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을 가리킨다.
---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