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내려오는 길, 처음 독군부의 공고문을 발견했던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런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익는 조선말이었다. “다들 어째서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오?”
나는 시침을 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봤다. 눈치 빠른 작자 하나가, 나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몰라서 묻는 것이오, 하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이 어찌나 해맑아 보이던지, 고향에 있는 친구 놈 생각이 떠올랐다.
--- p.40, 본문 「01 신홍균」 중에서
내가 한 말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주위를 경계하는 눈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동포에게조차 마음을 내어줄 틈이 없다는 것은, 먹고 입을 것이 없는 아픔보다 더욱 짙은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 주막에 가서 탁주 한 사발 사겠다고 했다. 그 말에 내 주변에 몰렸던 사람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무지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만난 동포가 더욱 반갑기 마련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망연한 기분이 들었다. “어리석구려.” 옆으로 스쳐 가며 한 남자가 뱉은 말이었다. 짙은 감색 저고리에 몇 번이고 천을 덧댄 옷을 입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빤히...
--- p.42, 본문 「01 신홍균」 중에서
1930년 1월 26일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대규모의 학생 항일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서울, 대구, 부산, 평양에서 학생들이 참여했다. 멀리 연변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흘러들어왔고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이번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도 그들의 뜻에 동조하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 보고 있기는 싫었다. (중략) 요시찰 집안으로 의사 시험을 몇 번 신청해도 수험번호조차 받지 못했다. 시험에서 여러 번 제외된 적이 있었지만, 가까스로 양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어렵게 취득한 양의사 자격증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기에는 가슴이 뜨거워져 견딜 수 없었다.
--- p.196, 본문 「02 신현표」 중에서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저녁.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이 됐다. 제3차 간공사건 재판에서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 것이다. 일반인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이토록 공기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작은 창틀로 보던, 작게 조각된 하늘이 넓게 드리워진 아래 땅을 밟고 서 있으니, 자유에서 오는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져 몸을 떨어야만 했는데, 밖의 햇살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다행히 금은화(金銀花) 달인 물을 몰래 들여올수 있어서, 상처는 덧나지 않게 치료할 수 있었다. 베인 상처는 아물기도 힘들지만, 거기에 청결 상태도 좋지 못한 곳에 있어서 다른 염증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컸다.
--- p.206, 본문 「02 신현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