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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김수영의 거침없는 문학적 모험
1부 탄생과 일제 강점기 1 가족: 아버지를 바로 보지 못하던 시인, 그렇게 아버지가 되다 _이경수 2 유교: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 정신 _김상환 3 일본, 일본어: 망령 씐 ‘식민지 국어’라도 맘껏 부려 썼다 _김응교 4 만주 이주: 이주와 패배, 그 극복의 원체험 _박수연 2부 한국전쟁기 5 한국전쟁: 나는 ‘민간 억류인’,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 _이영준 6 설움: ‘제일 욕된 시간’과 ‘벌거벗은 긍지’ 사이 생활고의 설움 _엄경희 7 박인환: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라 _맹문재 8 기계: 기계와 사물의 운동을 꿰뚫어 본 관찰자 _오영진 9 하이데거: ‘시간’에 민감했던 시인, 현실과 역사 앞에 물러섬 없었다 _임동확 3부 구수동 거주 시기 10 마포 구수동 시절: 생활의 감각과 사랑의 기술 _나희덕 11 전통: 전통적 인간에서 전통을 생성하는 존재로 _남기택 12 엔카운터: 냉전적 의도가 담긴 잡지 봉투를 뒤집어 시의 초고를 써 내려가다 _정종현 13 꽃: 노란 꽃을 받으세요, 지금 여기에 피어난 미래를 _오연경 14 자유: 시인으로서 자유로우려면 시민으로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_진은영 4부 4 ·19혁명 이후 15 혁명: 시와 삶과 세계의 영구 혁명을 추구한 시인 _김명인 16 적: 짙은 자기 환멸을 내쉴지언정 조국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_심보선 17 여편네: 독살을 부리는 자본 옆에서, 졸렬한 타박이라도 하여야 했다 _맹문재 18 돈: ‘돈’의 아이러니 속에서 싸우다 _김행숙 19 비속어: 시임에도 욕설을 쓴 게 아니라, 시라서 욕설을 썼다 _김진해 20 번역: ‘덤핑 출판사’의 12원짜리 번역 일, 그 고달픔은 시의 힘이 됐다 _고봉준 5부 시대를 비추는 거울 21 여혐: 우리는 이겼다, 아내여 화해하자 _노혜경 22 니체: 그의 산문에 두 번 등장한 니체, 닮음과 다름 _김응교 23 온몸: 무의식적 참여시의 가능성, ‘온몸’의 시학을 다시 생각하며 _신형철 24 죽음: ‘죽음의 시학’은 그를 여전히 살아 있는 시인으로 만들었다 _이미순 25 사랑: 사랑의 무한 학습, 지금 여기에 꽃피는 사랑의 미래 _김수이 26 풀: 우주의 화음을 품은 김수영 시의 극점 _유성호 대담 거대한 100년, 김수영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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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문학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다양하다. 김수영의 문학 자체가 현실과 현재에 개입하는 여러 개의 문이며 거대한 문이기도 하다. 시대와 사회를 넘어, 차갑게 경직된 현대의 수많은 개인들 사이로 활짝 열린 이 개방성이야말로 우리가 김수영을 통해 누리는 최대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 「서문」 중에서
곧은 소리를 부르는 곧은 소리, 모든 규정성을 깨뜨리는 무지막지한 소리에는 죽음충동이 꿈틀댄다. 죽음은 모더니즘이 숭배하는 창조적 파괴의 원리다. 그런데 곧음[直]은 과거 선비 정신의 핵심에 해당했다. 대 에 비유되는 선비 정신에는 죽음충동이 이글거린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모더니즘과 선비 정신이 서로 식별되지 않는 영점에서 만난다. --- p.33 김수영은 일본적인 것과 냉전적인 것을 함께 극복해야 했다. 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일본어 사용/민족문학=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픈 몸으로 걸으며, 이국어를 통해 세계 지성을 습득하고, 결국 그는 모국어로 거대한 뿌리를,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온몸으로 썼다. --- p.42 놀랍게도 꽃은 김수영 시에서 언제나 죽음과 동반한다. 김수영은 꽃의 과거와 미래를 시간의 관점에서,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 생물학적 정의에 따른다면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꽃은 새로운 생명이 준비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표상이기도 하다. 꽃이 혁명의 비유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전쟁에서 경험한 무수한 죽음과 그 죽음을 바쳐서라도 추구할 자유가 꽃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광경은 김수영 시학이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 p.49 헬리콥터는 횡단과 정복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높은 곳에 멈춰서 세상을 응시하는 데는 능한 기계다. 헬리콥터의 호버링(Hovering) 운동은 공중에 쉽게 멈춰 선 것처럼 보이지만 부단한 균형 잡기의 노력으로 간신히 이루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헬리콥터도 서러운 존재로 감지된다. --- p.83~84 김수영은 생활의 운산(運算)과 무위의 글쓰기 사이에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수없이 번민하며 내적 싸움을 이어갔다. --- p.108 마치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돌처럼, 세상이라는 더러운 물에 빠지지도 않고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초월하지도 않는 것, 생활이 뮤즈를 너무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김수영이 생활에서 얻어낸 균형감각 또는 속도감각이 아닐까 싶다. 생활과 예술 사이에 중용(中庸)의 길을 내기 위해 그는 부단히도 자신 속의 뮤즈에게 “노래의 음계를 조금만 낮”출 필요가 있다고 속삭였을 것이다. --- p.112 김수영에게 번역은 세계성을 호흡하는 지적 실천이었다.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산문 「시작 노트 6」, 1966)는 시인 자신의 말마따나, 그의 문학은 번역을 통한 타자와의 부단한 소통의 결과였다. 김수영은 외서 읽기와 번역을 통해 타자와 만나며 많은 결여를 지닌 자기(문화)를 아프게 자각했으며, 고통스러운 인식을 부둥켜안고 세계와 부딪히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그 고투에서 흘린 선혈이 그의 시와 산문 도처에 낭자하다. --- p.125~126 김수영에 대한 잡지 구독 지원이 냉전의 에이전시들이 의도한 대로 반공주의적 효과를 발휘했는가는 의문이다. 그 의도는 김수영에게 의식적으로 오인되거나 혹은 창조적으로 전유되면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지식인 그룹의 전언을 경청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보편으로 받드는 대신 자신의 현실 속에서 곱씹으며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자원으로 활용했다. --- p.128 김수영은 우리에게 기지(旣知)의 꽃을 잊어버리라고, 미지(未知)의 것이 도래하여 피어난 지금 여기의 노란 꽃을 받으라고 했다. 김수영의 꽃은 미완이고 못난 데도 있다. 꽃보다 꽃을 지지하는 산문의 줄기가 더 요란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사는 김수영의 꽃을 완성품으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입된 비뚤어진 글자를 다시 세우고 다시 비틀면서 그가 하고자 했으나 완수하지 못한 것, 그 문제 설정의 용기와 정직한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김수영의 꽃이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이다. --- p.142 한국전쟁 당시 김수영이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화장실에서 목 잘린 시체가 떠오르곤 하던 곳이었다. 그는 2년간 수용되어 있다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났다. 그러나 쓰려던 사상을 금지당한다면, 시를 통해 말한 것이 공적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발화로 인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형편 좋은 수용소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학적 자유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 닻을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온전한 것이다. 자유는 정착을 경계하지만 난파가 아니다. 물 위에 거주하려면 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위해 그는 역사 속에 시의 거대한 닻을 내리려 했다. --- p.152 지식인들은 늘 ‘적’을 분별하고, 적과 도덕적이고 지적인 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정당함을 선포하는 집단이다. 김수영 또한 그러했다. 그는 적 없이는 사유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김수영은, 생활의 세계를 살고 부여잡고 해찰했던 그는 끝까지 환멸을 느낄 수 없는 자였다. 환멸을 느끼는 자신을 환멸스럽게 여길지언정, 허접한 세상살이와 사람살이, 그가 그토록 흠모하는 모던한 세계의 반대인 대한민국에 환멸을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 p.167 김수영의 시는 비루하고 창피해서, 무섭고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바로 보는 정시의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김수영은 김수영을 바로 보고자 했는데, 김수영의 거울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본다. --- p.179 김수영은 번역을 “부업”(「번역자의 고독」) 삼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번역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김수영은 번역 텍스트와의 대화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문학론을 구축해갔다. 냉전의 주체들은 미국의 문학, 문화, 사회과학등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한국이 미국을 닮아가길 원했지만, 김수영에게 ‘번역’은 냉전적 사고의 일방적인 수용이 아니었다. --- p.198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 시로 말미암아 많은 여성 독자가 더 이상 김수영을 읽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아내 살해, 데이트폭력 살해 등 가까운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 살해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점증되는 시대 분위기를 타고 이 시가 다시 표면에 떠오른 것이다. 김수영이 왜 그토록 자주 아내를 시에 등장시켰는지, 김수영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인지 등 필연적인 질문들이 자칫 “읽지 않겠다”라는 손사래에 밀려 지워질 위기감도 생긴다. --- p.208 김수영은 ‘도중’에 죽었다. 아직 일가를 이루었다 하기엔 젊지만 그가 죽기 전 남긴 시들을 보면 어떤 경지를 향하여 한고비 넘어선 기운도 있다. 그가 영원히 길 위에 있으려던 건지 집을 한 채 지으려던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 중단됨을 결말로 삼아 독자인 나는 그의 인생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다행히 그는 죽기 전에 아내를 경유하여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과 마찬가지로) “죽음 반 사랑 반”(산문 「나의 연애시」, 1968)의 존재라는 통찰을 남겼다. 당대의 어떤 시인, 소설가보다 훨씬 집요하게 ‘여편네’를 탐구한 덕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힌 폭력가장이고 지일에는 창녀를 사는 속물이라는 평가를 김수영이 피해 갈 수는 없다. 60년대를 짊어지고 그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다. --- p.213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에 그림자 따위는 필요 없다. 온몸은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무엇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시인 자신은 의식적으로 무장된 실천적 지식인이어야 하되, 시를 쓰는 작업 자체는 그 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무의식적 투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를 염두에 두는’ 일반적인 의미의 참여시와는 그 출발점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바로 그와 같은 온몸의 시야말로, 문화와 민족과 인류와 평화에 공헌하는, 진정한 참여시일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우리는 이것을 ‘무의식적 참여시’라고 부르면서, 바로 이곳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31 김수영은 죽음이 삶을 각성시키고, 생성을 이어나가게 하고, 나를 공동체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은 시의 제재, 시의 주체, 언어의 문제에까지 관련된다. 이 점은 김수영만이 지니고 있는 죽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함으로써, 현대시의 모더니티를 말할 수 있었고, 참여시를 내세울 수 있었다. 김수영은 죽음의 시학을 완성하고 실천함으로써 여전히 살아 있는 시인이 되었다. --- p.242 김수영은 자신의 삶과 문학이 부정당할 새로운 시간을 기꺼이 열망했으며, 자신과 자신의 세대가 후대에 부정당하는 시간을 ‘사랑’의 시간이라고 명기해둔 바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욕망의 주체와, 욕망의 입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주체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김수영을 통해 우리가 곤혹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복잡성이자 모순이며 문학(사)의 난제다. --- p.256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시인이 100년 후에도 기억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거나 청년 세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세대나 우리 다음 세대만큼 김수영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김수영이 앞으로 100년 뒤에도 계속 읽히려면, 김수영을 오래 읽어온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자유롭게 김수영을 읽을 수 있는 자유, 발언권을 줘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김수영 시의 어떤 유산이 계승되어야 하는지, 우리 시대에 왜 김수영을 읽어야 하는지, 김수영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대담」 중에서 |
한국 현대시사는 김수영의 꽃을 완성품으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입된 비뚤어진 글자를 다시 세우고 다시 비틀면서 그가 하고자 했으나 완수하지 못한 것, 그 문제 설정의 용기와 정직한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김수영의 꽃이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이다. _본문에서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비루한 일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자리에서 진보와 혁명을 추구한 시인, 김수영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긍지와 사랑의 예언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겨레》에서 ‘거대한 100년, 김수영’이라는 타이틀 아래 반년간 평론 26편이 기획·연재되었다. 신문 한 면을 통째로 열어 한 시인을 이토록 다방면으로 조명한 특집이 극히 드문 만큼, 여전히 뜨겁게 호명되는 김수영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연재 글들을 수정·보완하고 육필 원고와 발표 지면 등 최초 공개되는 자료 및 특별 대담과 함께 엮어 새롭게 선보인다.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인 24명의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필자로 대거 참여했으며 가족, 일본/일본어, 한국전쟁, 전통, 돈, 비속어, 번역, 여혐, 니체, 온몸, 죽음, 사랑 등 26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김수영의 생애사와 작품론에 두루 접근하여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힌다. 김수영의 삶과 작품을 단순히 우상화하거나 신화화하는 대신 지금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김수영 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이며, 전통에 대한 긍정, 평범한 민중에 대한 긍정, 자유와 혁명에 대한 긍정, 더 나아가 자신을 향한 지금 세대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한 긍정까지 담아낼 수 있는 호탕한 제목이다. 이 책은 김수영을 각기 다른 키워드로 분석했다 하더라도 전기사적 요소를 배제하진 않았는데, 다양한 키워드와 평전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김수영의 삶과 문학의 전체적 면모를 직조한다. 1921년에 태어나 1968년에 세상을 뜬 시인 김수영. 한국 근현대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시인의 삶을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뜨겁게 자유를 갈망했지만 누구보다 먼저 혁명의 실패를 예감했고 그럼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혁명 이후에 대해 사유했던 시인. 이것만으로도 김수영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_본문에서 김수영의 거침없는 문학적 모험, 빛과 그늘을 아우르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26가지 시선 1부 ‘탄생과 일제 강점기’에서 「아버지를 바로 보지 못하던 시인, 그렇게 아버지가 되다」는 8남매의 장남으로 자라났으나 장남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은 김수영이, 시에서 아버지와 누이를 성찰과 정시(正視)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호명한 방식을 면밀히 검토한다.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 정신」은 단순히 서양의 모더니즘을 한국적으로 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종합하는 작시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위대함을 재발견한다. 「망령 씐 ‘식민지 국어’라도 맘껏 부려 썼다」는 일본어 창작을 곧 반민족으로 연결하는 고정관념을 비판하며 김수영 시에서 식민 체험의 흔적을 사려 깊게 읽어낸다. 「이주와 패배, 그 극복의 원체험」은 김수영이 일본 유학과 만주 이주에서 겪은 배반의 경험을 추적하는 한편, 연극 공부가 시의 언어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2부 ‘한국전쟁기’에서 「나는 ‘민간 억류인’,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는 자신을 ‘포로’ 대신 ‘민간 억류인’으로 불렀으며 ‘친공과 반공’의 이분법에서 탈피해 ‘자유’를 중시했던 시인의 태도에 주목한다. 「‘제일 욕된 시간’과 ‘벌거벗은 긍지’ 사이 생활고의 설움」은 김수영이 시에서 드러낸 대표적 정념인 ‘설움’이 촉발되는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며 생활에 대한 무능이나 무책임이 아닌 자발적 고절(孤節)로서의 소외와 긍지를 헤아린다.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라」는 서점 ‘마리서사’를 열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전개했던 박인환에 대한 김수영의 애증을 실감 나게 서술한다. 「기계와 사물의 운동을 꿰뚫어 본 관찰자」는 김수영을 기계-사물의 운동을 가감 없이 관찰해 본질을 파악한 시인으로 설명하면서 시 「헬리콥터」에 대한 ‘기계비평’을 시도한다. 「‘시간’에 민감했던 시인, 현실과 역사 앞에 물러섬 없었다」는 하이데거 전집이 낡고 닳을 만큼 하이데거에 심취했던 김수영의 시 세계를 하이데거의 철학 개념으로 해석한다. 3부 ‘구수동 거주 시기’에서 「생활의 감각과 사랑의 기술」은 김수영이 마포구 구수동 집에서 시에 대한 조급한 욕심을 내려놓고 생활과 예술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을 다룬다. 「전통적 인간에서 전통을 생성하는 존재로」는 김수영이 전통에 대한 반감과 부정을 넘어 시로써 전통을 긍정하고 현재화하는 양상에 귀 기울인다. 「냉전적 의도가 담긴 잡지 봉투를 뒤집어 시의 초고를 써 내려가다」는 김수영에게 잡지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가 우송된 냉전적 맥락과 이 잡지들이 시에서 어떻게 전유되며 주체성 형성의 자원으로 활용됐는지 살펴본다. 「노란 꽃을 받으세요, 지금 여기에 피어난 미래를」은 생성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꽃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자유와 혁명과 사랑이라는 꽃의 사상으로 만개한 일련의 과정을 되짚는다. 「시인으로서 자유로우려면 시민으로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불온사상을 인정할 때만 언론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며 이는 문학의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었던 김수영식 ‘자유’를 논한다. 4부 ‘4·19혁명 이후’에서 「시와 삶과 세계의 영구 혁명을 추구한 시인」은 김수영의 혁명은 정치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고 시와 삶에서 지속되는 총체적 변혁이자 거대한 사랑임을 설파한다. 「짙은 자기 환멸을 내쉴지언정 조국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는 모던한 세계를 흠모하며 조국의 후진성에 경멸을 느끼면서도 비루한 일상을 온몸으로 끌어안고자 했던 김수영의 내면을 묘파한다. 「독살을 부리는 자본 옆에서, 졸렬한 타박이라도 하여야 했다」는 물질주의에 매몰된 존재에 대한 멸시가 투영된 호칭으로서 시어 ‘여편네’의 의미를 분석한다. 「‘돈’의 아이러니 속에서 싸우다」는 먹고살기 위해 ‘매문’을 하지만 글쓰기로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표현의 용기를 실현하기보다 상품 가치에 매몰되기 쉬운 모순을 간파했던 김수영의 글쓰기를 ‘적과의 동침’으로 설명해낸다. 「시임에도 욕설을 쓴 게 아니라, 시라서 욕설을 썼다」는 김수영의 시에 쓰인 욕설을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표현이자 자유의 실천으로 규정한다. 「‘덤핑 출판사’의 12원짜리 번역 일, 그 고달픔은 시의 힘이 됐다」는 김수영이 번역을 ‘부업’ 삼았으면서도 번역에 지나치게 열중해 결국에는 번역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유한 문학론을 구축했음을 논증한다. 5부 ‘시대를 비추는 거울’에서 「우리는 이겼다, 아내여 화해하자」는 60년대의 시인인 김수영이 짊어져야 하는 한계점을 명확히 짚으면서, 시와 산문 속에서 아내에 대한 인식은 차츰 변화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여성혐오를 넘어서는 실천은 도중에 중단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산문에 두 번 등장한 니체, 닮음과 다름」은 김수영이 니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나 출발점과 해결 방식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적 참여시의 가능성, ‘온몸’의 시학을 다시 생각하며」는 김수영의 대표적 시론인 「시여, 침을 뱉어라」와 「참여시의 정리」를 분석하여 ‘몸과 그림자’의 관계를 밝히고 온몸의 시학을 ‘무의식적 참여시’로 적절히 설명해낸다. 「‘죽음의 시학’은 그를 여전히 살아 있는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죽음이 삶을 일깨우고 생성을 낳으며 자신을 공동체로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던 김수영의 시학을 살펴본다. 「사랑의 무한 학습, 지금 여기에 꽃피는 사랑의 미래」는 김수영이 사랑을 사회가 품은 영구 혁명의 가능성이자 개인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동력으로 파악했음을 강조한다. 「우주의 화음을 품은 김수영 시의 극점」은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풀」에 등장하는 풀과 바람의 관계를 ‘상응과 친화’로 설명하며, 때로는 스스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물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역설한다. “혁명이 성취되는 마지막 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100년이 흐른 지금, 김수영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김수영은 현실의 이면을 들춰내고 진실을 환기하려는 신념을 온몸으로 밀어붙여 한국 현대시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역사적 격랑에 촉수를 곤두세우며 자유를 억압하는 대상에 맞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나갔지만, 자신이 속한 시대의 한계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오점 탓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등을 돌린 독자가 생겨나면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에 부닥치곤 했다. 그러나 그를 덮어놓고 옹호하거나 맹비난하는 관점을 넘어, 김수영이 지금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총체적 변혁을 추구했던 그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평온한 독서를 거부하는 시, 독자에게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는 시를 써 내려간 김수영은 자기 작품이 지닌 한계점을 성찰의 계기로 삼는 시대가 올 것을 일찍이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판과 부정의 대상에 자신을 기꺼이 포함했고 자신에 대한 후대의 부정을 오히려 ‘사랑’으로 인식했다. 그에게는 모든 반동을 끌어안을 넉넉한 품이 있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에 실린 평론 26편은, 김수영의 명과 암을 세밀히 그려냄으로써 그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책이 김수영에 대한 새롭고도 발칙한 ‘반동’으로 작용하길 기대해본다. 지금 세대가 불편함을 느끼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며 비판하는 관점은 이해도 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개인의 한계만이 아니라 시대의 한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혐의를 부정하고 김수영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제가 덧붙여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1950~60년대를 살았던 김수영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김수영의 여성관에 대한 비판은 결국 김수영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오늘의 우리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_‘대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