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꺾인다는 건 이런 것이다. 그 제약회사의 주가가 어떤 이슈 때문에 잠깐 오른다 하더라도,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그 시절만큼은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것. 그래프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을 때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것. 정점을 찍고 내려가기 시작한 뒤에나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스물아홉에 체득한 ‘꺾인다’의 정의였다.
--- 「꺾이는 나이」 중에서
종종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문예창작’이라는 분야를 가장 먼저 지워버릴 거라며 두려움에 떠는 친구들을 목격한다. 하지만 글쎄, 기껏 AI를 발명해놓고 그깟 글쓰기에 활용할 만큼 이 세상은 녹록지 않다. ‘대단한’ 과학 기술의 맹신자들은 언제나 인문학과 사회학, 철학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하간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 먹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금액의 규모에는 상관없이.
--- 「불안정의 기원」 중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이 내게는 늘 고역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학교나 학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들과 만든 세상이 전부였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세계가 한도 끝도 없이 불어났다. 그 수많은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또렷하게 붙들고 있기가 어려웠다. 여기에선 이런 성격으로, 저기에선 이런 성격으로, 주변 환경에 맞춰서 행동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 「반가운 전화' 중에서
“세상에 너만 힘들게 사는 줄 아니? 다 힘들어. 먹고살려고 그냥 참는 거야. 정신 차려라.”
엄마나 아빠와 다툴 때 이런 소리를 들으면 괜히 더 열 받고 발끈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정곡을 찔려서 그런 게 아닐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에 코웃음 치면서도 정작 ‘그래서 네가 청춘이라 아파본 적은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큰소리칠 수 없는 입장 아닌가?
--- 「에세이는 내가 아니라 네가 계약했어야 했네‘ 중에서
그 어떤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은 우정이라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이고 완벽할지 모르지만 나는 가끔 그 맹목적인 10대의 우정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아무런 조건 없이 멀어질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해서.
--- 「스물 넘어서 만난 친구는 다 가짜 친구야」 중에서
이미 전부 시도해봤기에 얻은 인생의 ‘진리’를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종용하는 일은 뭐랄까, 조금 꼰대 같다. 그 깨달음의 경로나 시기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를 테지만,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다고 한들 그것들을 남에게 강요할 만한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리라. (…)
나는 이 사회가 점차 ‘20대’들에게 자꾸 각박해져만 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생판 남인 어른들이 맡아야 할 역할은 나보다 사회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 ‘이건 해라, 이건 하지 마라’ 하고 지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20대는 내가 그랬듯, 우리가 그랬듯 삶의 궤적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우고, 난관에 부딪치며 단단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그들에게 최대한 ‘안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바리케이드를 세워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 아닐까?
--- 「상처 주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중에서
내가 이렇게나 변했는데 왜 좋아하는 일들은 그대로일까? 아직도 밀가루가 고기보다 좋고, 외출보다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게 좋고,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살이 찌는데, 나는 불행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작은 불행들을 선택하게 되고야 말았다.
--- 「죽고 싶은 여름」 중에서
나는 외모 강박을 벗어던지겠다고 그런 흐름에 완전히 반기를 들 만큼 대범한 사람이 아니다. 불편한 옷보다는 편한 옷이 좋고, 로퍼보다는 워커가 좋고, 타투와 피어싱이 좋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해가며 살아갈 필요를 느낄 뿐이다. 주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많아지면서 거금을 들여 정장을 한 벌 맞춘다거나, 신발장에 운동화나 샌들이 아닌 구두를 하나 장만하는 일. 딱 그 정도의 노력만 있더라도 괜찮은 20대 후반이 되기로 했다.
--- 「마스크의 순기능」 중에서
“인간은 다 죽었으면. 동물들만 행복했으면.” 같은 말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게 무섭다는 말.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 인간이 인류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다음 강의 내용이 거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심란해지는 바람에, 밤에는 잠 한숨 못 잤다. 생각해보면, 그래 내가 원래부터 인간이나 인류를 그저 증오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 「아포칼립스에 끌리는 이유」 중에서
얼마 전에는 자동차를 비롯한 ‘탈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보다 자전거를 배워본 적 없는 여자들이 많다는 화제가 나왔다. 나 역시 그랬다. 남동생은 아빠에게 반강제로 자전거를 배웠는데,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물론 아빠는 내가 먼저 자전거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거절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운전’에 대해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잣대가 엄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운전면허가 없거나, 자전거를 못 타는 또래 남자애들은 아주 드물다. 자동차 동호회나 바이크 동호회에서 여자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데다,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의 비율로 남자가 압도적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누구도 여자들에게 ‘운전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남자들에게 “너는 왜 면허도 없냐”고 묻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