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자꾸 짐을 챙겨 떠나야 할 일이 많았다. 처음 짐을 지고 도착한 곳은 고등학교 기숙사였다. 그렇게 언덕이 가파른 학교를 코 앞에서 다니다 보니, 떠난다는 것은 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기숙사를 벗어나 동생과 함께 동생의 고등학교 근처로 자취방을 얻었다. 트럭에 한가득 짐을 싣고 도착한 곳은 서울의 작은 오피스텔. 스무 살이 되고 집이 생기니 떠난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떠나고’ 싶어 졌다. 그렇게 파리로 떠났다. 갑자기 떠났다. 왜냐고 묻는다면, 고등학교 때 열심히 배워 둔 프랑스어를 써먹어보자는 이유에서였다. 책 속에서만 보던 문장들을 들고 호기롭게 떠났다. 공항에 도착해 한글이 사라진 표지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떠난다는 것은 다른 행성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파리는 다른 행성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 다른 행성 같던 도시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길목 길목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왠지 이 곳에선 내가 꿈꾸던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1년 뒤에 난 파리의 대학교에 합격했다.
처음이었다. 나를 배웅하러 나온 가족들이 점점 멀어질 때, 나는 처음으로 떠나기가 두려웠다. 낯선 모든 것들을 적응해내기도 전에, 일상이 시작되어버렸다.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떠난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고, 난 잠시 멈추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평범한 일상들을 보냈다. 음악을 자주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과 저녁도 먹었다. 그런데 어쩐지 시간이 맴도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동생과 짐을 한가득 싸서, 다시 파리로 떠났다. 워킹 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었다.
이 책엔 100장의 일기가 담겼다. 돌아오기 100일 전부터 아쉬워 적어 둔 문장들을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떠날 때가 되니 삶에 태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던 하루가 간직하고 싶은 날이 되고, 지도를 만들었다.
모든 여행에 응원을 보낸다.
목적지가 없더라도 말이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에서
엄마가 우리 남매에게 농담처럼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아침잠이 너무 많아. 프랑스 가면 좀 일찍 일어나려나.’
프랑스랑 한국은 서머타임 기준 7시간, 혹은 8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오후 3시면 프랑스에선 이른 아침. 그래서 우리 엄마는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부터 우리가 혹시라도 시차라는 강제적인 생체리듬 차이로 인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걸 하셨다.
정말 재밌는 사실은, 결국 똑같다는 것이다. 처음 막 도착해서는 눈 뜨면 새벽 5시 6시. 해가 다 떠있지도 않을 때 일어나 씻고 앉아있으면 왠지 내가 새로운 인간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갈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는데, 그 기상시간이 하루 이틀 지날수록 뒤로 미뤄지는 것이다. 6시에서 6시 40분, 그러다 8시 9시 …. (이하생략) 다행히 일을 일찍 시작하게 되어 점심때가 다 되어 일어나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주말엔 어김없이 열두시가 넘어 일어나곤 했다. 과학적인 원리가 있는 건지 나도 참 궁금하지만, 결국 인간의 본성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엄마도 내가 그 사실을 말하자 웃으며 한숨을 쉬시는데, 재밌는 건 한국으로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난 아직도 가끔 그런 농담을 하신다는 것이다. 왠지 그 멋진 도시에 가면 마법처럼 아침에 눈을 떠 맛있는 빵집으로 향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인걸까. 나도 그러다 보면 왠지 다시 가게 되면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환상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한다.
--- 「너희 아직도 파리 시간으로 사는 건 아니지?」 중에서
이 곳은 편의점이 없다. 몸을 숙여 냉동고를 뒤적일 일이 없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은지가 꽤 오래되었다.
오랜만에 동생이랑 동네를 한바퀴 돌다 문득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 기웃거리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겉에 초코가 코팅된 것이
네 개가 들어있던 박스를 발견했는데, 일단 집어 들고 나왔다.
두 개는 뜯어서 하나씩 손에 쥐고, 두 개는 박스에 담긴 채로 손에 들고 걸었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 먹고 싶어 눈을 떼지 못하는 누군가 있다면 기꺼이 하나 건네 줄 마음으로.
활짝 열린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어쩐지 이 날은 산책이 즐거웠다.
오랜만에 먹은 아이스크림이 생각보다 달콤해서 그랬을까.
아님 내 손에 누군가에게 기꺼이 건넬 아이스크림이
두 개나 더 있어서 그랬을까.
--- 「97일 전」 중에서
이 날은 나에겐 아직도 자랑할 만한 기억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게 되었던 시기에 우리는 파리에 있었다. 칸 영화제는 말 그대로 세계적인 영화 행사이자 프랑스 남부 지역인 칸에서 개최가 되기 때문에 예술에 관심이 남다른 프랑스인들은 그 해의 황금 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하철 역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기생충의 포스터가 하나 둘 화려하게 걸렸고, 개봉 전부터 우리는 포스터 앞을 지날 때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자부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켰다. VF/ VO, 보통 이렇게 두 가지로 영화가 나뉘는데, 하나는 프랑스어 버전. 그들에겐 더빙판 정도가 되겠고, 하나는 오리지널 버전. 원어와 프랑스어 자막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오리지널 버전이 한국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맥락만으로 넘기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우리는 주변에 앉아있던 프랑스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가 그 영화의 일부분인 마냥 신기한 듯, 한 번씩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 이렇게 작은 영화관에 주는 파급력이 이만큼이라니. 나름의 평론과 감상을 나누며 들뜬 표정으로 나가는 관객들을 보며 봉준호 감독 당사자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졌다. 그저 같은 한국인일 뿐인 우리를 잠시나마 연예인처럼 만들어준 감독님께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다.
--- 「파리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 중에서
주말 일과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 위에 따뜻한 햇살이 등에 얹어지는 포근한 기분으로 눈을 뜬다. 가장 먼저 창문을 열어 오늘의 날씨와 공기의 감촉을 어림해 본다. 우리 집은 5층인데 건너편 집의 한 칸 아래에 있는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보았다. 까만 그림자 같은 것이 창틀에 드리워져 있는데, 잠이 덜 깬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까만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주말에는 창밖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고양이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시선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아이가 움직이면 나도 따라간다. 조금 낮은 옆집의 지붕 위로 햇살을 따라가 기지개를 켠다. 주말에는 꼭 앞집의 까만 고양이를 구경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가까워 오고, 고양이도 사라진다.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동생을 깨울까 잠시 고민한다. 조금 더 자도록 두는 게 좋겠다. 가벼운 몸으로 약간의 동전을 챙겨 집 앞의 빵집을 들리려 마음먹었다.
우리 집 앞에는 세 군데 정도의 빵집이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그 중 크로와상이 제일 맛있는 골목길 코너에 위치한 빵집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꽤나 시크한 성격이지만, 내 얼굴을 이제 좀 아시는지 인사하면 밝게 받아 주신다. 동생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사러 나가야겠다. 아침이라기 보다는 점심에 가깝지만.
---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 1」 중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버스킹은 커다란 로망이었다. 언젠가는 멋진 곳에서 자유스러운 몸짓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파리에 가게 되었을 때 생각했다, 이보다 멋진 곳이 있을까. 길거리의 수많은 악사들, 노래하는 집시들이 있는 파리에서 노래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저 앰프를 챙겼다. 매번 승무원들에게 저게 무엇인지 설명해야 했고, 기내로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봐야 했던 골치 아픈 짐이었다. 그리고는 몇 달을 일하느라 묵혀 두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날이었다. 저 앰프를 개시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고, 우린 무작정 저 무거운 걸 장바구니에 끌고 센 강변으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아무데서나 공연을 하다간 경찰이 제지할 수도 있다고 해서, 넓은 광장이 아닌 인적이 드문 산책길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연결해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를 몇 곡 불렀다. 막상 시작하니 부끄러운 마음에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날 우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었다. 드문드문 찾아와 노래를 듣던 관객들, 말도 안 되게 예뻤던 하늘. 평생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영화와 같았던 장면이었다.
--- 「파리의 소심한 버스커」 중에서
파리가 그립다. 그렇게 알 수 없던 도시가 보고 싶다. 마지막을 조금 더 멋지게 장식할 걸. 그렇지만 원래 진짜 마지막엔 별 게 없다. 이미 그 마지막을 향해 가며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 마지막이 진짜 마지막이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 「나, 다시 올 거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