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지요. 나를 중심으로 국가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심지어 반려동물과의 관계도 있지요.
그런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생활한 지 벌써 두 해가 지났어요. 바로 코로나19 때문이지요. 매일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니며 친구들과 뛰어놀던, 당연했던 일상이 멈춘 지 삼 년이나 된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요. 마스크 벗은 친구 얼굴은 상상도 되지 않고요. 승강기에서 이웃을 만나도 비켜서게 되었어요. 더구나 변이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날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어요.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비록 비대면으로 만나고,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일상이라도 말이에요.
어때요? 긍정적인 자세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동시집 속 동시들을 만나 볼까요? 한 편, 한 편 어떤 행복이 들었는지 찾아볼까요? 여기서는 마스크 벗고, 재잘재잘 신나게 자, 그럼 출발!
--- 「머리말」 중에서
삼촌 개 똘이가/ 꿩을 잡았다며// 산에서 내려오던/ 삼촌이/ 꿩을/ 높이 쳐들었어.// 사실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죽은 꿩을// 발로 툭툭/ 두어 번 쳐봐도/ 꼼짝도 않던/ 꿩을// 삼촌은/ 똘이가/ 잡았다고/ 자랑해 준 거지.// 얼마 전/ 멧돼지랑 싸우다/ 눈 한쪽을 다친/ 똘이를
--- pp. 42~43 「1부 진실과 진실 사이」 중에서
“잘들 있지?/ 잘 먹고, 잘 노나?”// 증조할머니/ 어디 가시면/ 삼촌에게 전화해서/ 묻는 소리// 두고 온/ 염소들 이야기다.// “새끼를 쳤나?/ 아픈 덴 없지?/ 다친 애들도 없고?”// 농장 염소들,/ 증조할머니한테는/ 그냥 다 손주다.
--- pp. 46~47 「1부 마찬가지 손주」 중에서
“홍시 하나 가져오지.”// 요양원 계신 할머니가/ 혼잣말 하는 걸/ 할아버지가 들었는지// 동네, 감 익는 집마다/ 설멍설멍 다니며/ “홍시 있나?”/ “홍시 있수?”/ 묻고 다니신다.// “홍시, 홍시.”/ 혼잣말을 하고/ 다니신다.// 할머니는/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홍시를 벌써/ 열 개나 모았다./ 할아버지는
--- pp. 54~55 「2부 홍시」 중에서
아따!// 잠자는 시간/ 네 시간 빼고// 갯바위 미역 따서/ 가져와 널지.// 스무 가닥 한 뭇/ 싱싱할 때 널려고/ 새벽빛에 일어나지.// 머리대로 열 맞추고/ 길이대로 맞춰 널고// 시계 따위 필요 없어./ 미역이 내 시계여.// 갯바위 검푸른 미역/ 국물 내면 뽀얀 국/ 너 생일날 먹은 국/ 그것이 그놈이여.// 아, 그려!/ 밥 먹고, 똥 싸는 시간은/ 뽀너스여!
--- pp. 86~87 「2부 외할머니 시계」 중에서
망했다./ 수학 시험// 어머니한테/ 각오하고 말했는데/ 괜찮단다./ 다음에/ 잘 보면 된단다.// 나는 아무래도/ 미심쩍어// “시험 망했어요, 어머니./ 수학 망했어요.”/ 울먹이는데도// 된장찌개도 끓여주고/ 재밌는 개그도 해준다.// 아무래도 함정 같다.
--- pp. 100~101 「3부 혼돈」 중에서
다 큰 누나가/ 고등학생 누나가/ 기숙사에서 오면/ 어머니한테 치댄다.// 밥하는 어머니/ 등 뒤에서 껴안고,/ 어머니 옆에 누워/ 꽈악 끌어안고// 어머니가 걸어가면/ 옆에 착 붙어/ 팔에 매달려 걷고/ “엄마아, 엄마아.”/ 는적는적 어리광이다.// 누나 속에/ 아직/ 아기가 남았나 봐.
--- pp. 114~115 「3부 남은 아기」 중에서
아버지랑 꼭/ 단둘이 가고 싶어// 따라오려는 동생에게// “지금 나가면/ 골목길 모퉁이 돌 때/ 귀신이 으흐흐 나올지 몰라!/ 봐, 달이 으스스하잖아?/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널 따라올 거야./ 그림자 귀신!”// 막, 막,/ 무서운 얘기로/ 동생 떼놓고/ 아버지랑 걷던 사랫길// 커다란 아버지 손이/ 내 손을 꼭 쥐고/ “오랜만이지?”/ 내 얘기 다 들어주고/ 나한테만 웃어주는데// 나는 자꾸만/ 동생 생각이 났어요.
--- pp. 120~121 「3부 산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