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곁을 떠난다는 것은, 궁금한 것을 더 이상 물어볼 데가 없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은 궁금함을 가져가지 않는데, 그 궁금함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으니 계속 떠난 사람들이 그렇게도 그리운 것이 아닐까.
--- p.16
지금도 벌초를 하러 갈 때면 건너편 마을을 본다. 이제 예전 모습은 없어지고 공장 건물들이 들어섰으므로 옛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같은 그림이다. 할머니처럼 푸근한 얼굴을 한 또 다른 할머니가 계속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신다. 우리 할머니는 우울해 보였다. 마당의 소가 가끔 울었다.
그날 우리 할머니도... 울었을까.
--- p.50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지만 밤새 가로등은 빛을 낼 것이었다. 길을 밝히고, 주변의 나무와 풀들을 밝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추겠지. 다시 해가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밤은 다시 밝게 빛나는 가로등으로 인해 또 한 번의 빛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생각했다. 해가 저물었지만, 아직 오늘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밤은, 가로등 빛에 의지해 빛날 것이다. 내일 새벽이 오기 전까지 길을 비추어줄 가로등이 있으니 이 밤, 좀 더 멀리까지 걸어도 좋겠다.
--- p.88
내가 오늘 그에게 베푼 선의는 호구 짓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너무나 인간적인' 최대의 선의였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어느 쪽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오늘 베푼 선의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같은 모습, 같은 부피가 아니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혹여 내게로 올 수 없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대신 전해진다고 믿고 싶다. 그러니 내가 오늘 베푼 선의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기로 한다.
그는 내가 일어서기 전 말했다.
"23시간 59분 59초가 되었더라도 아직 하루가 간 건 아니잖아요. 1초가 남았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그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내가 베푼 선의를 되돌려 받은 것일까.
--- p.103
걸음의 속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느긋하게 내 속도로 걷던 나는 갑자기, 마치 일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걸었다. 그러다 횡단보도를 만났고 신호등을 바라보며 잠시 멈추었을 때, 그제야 나의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멈추거나 쉴 시간 없이 부지런히 뛰듯 걷는 시간이 있었다. 핑계가 대부분이었지만 바빠서 운동은 못 하겠다고, 나중에 은퇴하고 시간 많아지면 그땐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살아야지 했다. 하고 싶지만 돈이 안될 것 같은 일도 은퇴하고 해야지 했다.
--- p.119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은퇴 이후의 시간이 하루 48시간이 된 것도 아니고, 12시간으로 줄어든 것도 아니다. 나의 속도, 나의 발걸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른 이의 발걸음을 따를 필요도 없고, 지나온 발걸음의 속도를 다시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 p.120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같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라는 것. 이런 것들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대부분은 잊고 산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존재하지만, 늘 덕분인 것이지만 그래서 잊고 살기도 하는 것 말이다. 좁은 임도를 모두 내려와 지방국도를 만났을 때 둘이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한 사람이나, 보조석에 탄 사람이나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쌩쌩 달린다면, 또 어느 순간 외길 임도의 막막함을 잊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언젠가 산의 어둠이 내려온 막다른 길에서 홀로 앉아 편지를 쓰는 날이 온다면, 오늘 함께 했던 길을 떠올리며 잠시 덜 외로울 수도 있겠다.
우리가 그 무섭던 외길 임도 몇 킬로를 둘이 함께 왕복했었던 때가 있었지, 하고 말이다.
--- p.132
나는 지금도 가끔 '우리말 해례'를 본다. 사실, 우리말인데 남의 나라말처럼 어렵기만 한 그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라는 걸 먼저 고백한다. 하지만 나는 그 '우리말 해례'의 저자 서문을 가끔 읽어본다. 그 어떤 것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놔주지 않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흔하지 않다. 나 역시도 지치지 않고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p.151
오래도록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오랫동안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는 것, 그리고 오랜 후에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도 여전히 런던의 그 지하철 아케이드에선, 그가 서투르지만 진지한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
--- p.171
활짝 피어난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꽃들이 시들고 저물어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마지막 남은 한 송이로 남을 때까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꽃을 보는 눈길, 꽃을 대하는 마음 역시 삶의 모습이었으면 싶다. 활짝 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생도, 조용히 시들어가는 인생도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들일 테니 말이다.
--- p.183
유품이라는 것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내가, 나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품 정리가 아니라 사는 동안의 내 마음 정리 정돈 말이다.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것들이 마음속에 쌓이고 뒤엉킨다. 두서없이 쌓인 마음의 먼지도 점점 두꺼워진다. 결국 이런 뒤엉킨 것들과 쌓인 먼지를 한번 털어내고 정리하는 일이 자서전을 쓰는 일이 아닐까.
--- p.212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신 것은 봄이었다. 오월에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도록 가본 일이 거의 없던 화장장을, 그해엔 다섯 번을 갔다. 사람이 연기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죽음이 늘 머리맡에 앉아있는 것만 같던 한 해였다.
--- p.214
생각해보면 지나온 인생의 모든 길에 신호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의 길에선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표지판은 많았지만, 진행과 멈춤의 때를 명확히 알려주는 신호등은 적었다. 그런 것이 인생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 대부분 회전교차로이거나 비보호 좌회전 길일 것이 분명하다. 많은 일이,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몰려 돌아가고 있는 혼잡한 회전교차로지만 피할 길 없이 진입해야 하는 순간을 종종 만날 것이다. 때로 6차선 대로에 비보호 좌회전 길을 만날 수도 있다. 사방에서 차가 오는데 뒤차는 빨리 좌회전을 하라고 경적을 울려댈지도 모른다.
--- p.224
결국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이 늘어나는 일인 것이 맞다. 살다 보면 핑계 대지 않고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어른으로 용기 내어야 하는 일도 점점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핑계와 이유, 용기와 주책 사이에서 이기주의자의 중심 잡기는 오늘도 참 쉽지 않다.
--- p.229
또다시 새해가 다가온다. 한 해를 맞는 마음에 희망만 있을 리는 없다. 내 시야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이 길 끝이 또 어디로 이어질지 두근대는 불안과 떨리는 마음도 함께 있다. 한 해가 지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한 달이 지나면 달력을 넘겨 새로운 한 달을 맞는다. 한 주가 지나면 또 다른 한주가 주어진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희망과 불안이 적절히 섞인 새해는 연말에만 오는 새로움이 아니다. 인생의 숨 쉬는 매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새로움이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내 마음이 이끄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보기로 한다.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