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이거나 동정하는 시선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꽂히는 시선, 시선, 시선들. 제가 그 시선들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자존감은 사라지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까요? 제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숨기려 하지는 않았을까요? _27쪽
아들의 행동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한눈에 봐도 발달장애인인 게 티가 납니다. 그때 아들 옆에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서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아들이 제자리 뛰기를 하는 순간 여자아이의 엄마가 아들을 힐끔 쳐다봅니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과 자리를 바꿉니다. 이제 아들 옆에는 여자아이의 엄마가 서 있습니다. _43~44쪽
장애가 없는 딸은 딸대로 예쁩니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자라가는 딸은 그 나이에 맞는 기쁨을 부모에게 선사해줍니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은 장애가 있어서 예쁩니다. 느린 속도로 커가는 아이만이 줄 수 있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매일 매 순간 선물해줍니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불행하고 우울하기만 한 게 아니랍니다. _68쪽
“장애인이랑 뭘 하고 노냐고? 왜? 장애인은 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야? 동환이가 놀 줄 모르던? 장애인이면 놀 줄도 모르는 것 같아? 그리고 뭐? ‘장애인 아니랄까 봐?’ 장애인이라서 물 트는 장난을 친다는 거야? 그런 장난은 누구라도 칠 수 있어. 왜 너는 장애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 오늘 네가 한 말들은 장애인을 무시하는 거야.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던?” _82~83쪽
길을 걸으면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아저씨가, 농구공을 들고 가는 남학생 무리가, 교복 치마를 짧게 올린 여학생 무리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 엄마의 모습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길거리 풍경의 하나이듯 깡충깡충 뛰어대는 발달장애인이, “우어 우어”라고 말을 하는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대는 발달장애인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풍경의 하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_103쪽
비록 일부 특수학교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직도 공공연히 보조의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건 학교 현장에서조차 장애인이 장애인으로 대상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존중받아 마땅한 인권을 지닌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 행동을 억제해야 하는 장애인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_109~110쪽
노화란 그런 것입니다. 살아온 나이만큼 오래 사용한 신체 기관들이 곳곳에서 이상 신호를 일으키고, 그것들을 고쳐가고 달래가며 우리는 나이를 먹어갑니다. 그러다 더는 고쳐도 고쳐지지 않는 시기가 찾아올 때 우리는 신체 기능을 하나씩 잃어갈 겁니다. 누군가는 눈, 누군가는 귀나 코, 누군가는 신장이나 대장, 누군가는 목이나 허리, 그렇게 하나씩 우리 신체에 장애가 찾아옵니다. 노화로 인한 기능의 저하, 장애인이 되어갑니다. _150쪽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세상에서 만나야 합니다. 세상은 장애인을 남의 일이라고 배척해서도 안 되고, 장애인과 그 가족 역시 세상에서 상처받았다며 숨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어차피 장애와 비장애는 그 경계조차 모호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정상’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노화를 맞게 될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장애인이 될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신체 기능의 저하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됩니다. 그런 우리는 정상적인가요? 아니면 비정상적인가요? _178~178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