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과 고기는 언뜻 비슷한 용어처럼 느껴진다. 실제 고기를 근육 식품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근육을 먹는다고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근육과 고기는 비슷하면서도 명확하게 다르다. 근육이 란 동물의 운동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뼈에 붙어있는 혈액, 힘줄, 껍데기를 포함하여 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어류를 포함한 가축과 사람의 살을 지칭하며, 생사와 상관없이 쓰는 용어이다. 이에 비해 고기란 생명이 끊어진 동물의 사체로부터 얻는 것 중에 인간이 식용할 수 있는 근육이다. 곧 살코기를 말한다. 죽은 살인지 살아있는 살인지, 그리고 식용 가능한지가 근육과 고기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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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업의 발달과 함께 구대륙에서 유사 이래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서구인들은 새로운 황금 옥토에 놀라워했다. 그곳 광활한 들판에는 가축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풀이 가득했다. 이같이 아메리카 신대륙은 구대륙에 없는 새로운 식량 자원 식물과 향신료도 가득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축산업의 발달도 가속화되었다. 노동자들이 도시로 대거 몰려들면서 생활수준도 함께 향상되었다. 가축의 대량생산과 신대륙에서 보내온 고기가 유럽대륙에 넘쳐나고 새로운 향신료가 도입되었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될수록 자연스럽게 대중은 배부르게 잘 먹게 된다. 대표적으로 잘 먹게 되는 귀한 식품이 고기이고 식육 가공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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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고기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대중에게 제물 봉헌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고기를 재분배하는 사회적 기제라고 분석한다. 귀한 고기를 제물로 드리면서 신에게 용서를 빌고, 강화된 권력 아래 대중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의식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축제의 기원이다.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제물Opfer ’이라는 단어는 ‘축제Fest ’와 같이 쓰인다. 축제는 신을 찬양하고 나서 봉헌된 제물을 대중이 함께 나 누어 먹고 즐기는 놀이 문화이다. 축제에서는 신의 음식이 사람을 위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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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물 의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로 성행하였다. 그들은 희생 동물을 화환으로 장식하고 노래를 부르며 제단으로 함께 갔다. 모두 도살되어 죽음을 맞이할 동물을 신에게 바친다는 신성한 마음으로 참여했고, 이어서 맛있는 고기를 함께 먹고 춤과 노래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성스러운 분위기에서 도살된 가축의 피는 제단 위에 뿌려졌고, 먹을 수 없는 부위는 불에 태우고 나머지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것이 그들의 동물 희생 의식이었고, 신을 위한 제물 의식이면서 먹고 즐기는 군중 행사였다. 희생 후 남겨진 제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분배 효과도 누릴 수 있어, 지도자는 대중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계기가 되었다. 동물의 희생을 통하여 인간은 공동체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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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수많은 생명체가 있지만, 척추 포유동물에 속하는 영장류인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았다. 인간의 주변에는 원숭이, 침팬지도 있고, 사자, 호랑이 소, 말, 양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벌레와 그보다 작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함께 살아가고 있어 모든 생명체가 공존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존경쟁의 냉혹한 자연법칙 하에 적자생존만이 있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최근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을 자기들의 먹이인 줄 알고 덤벼들고 있지만, 오늘날 인간의 시조 시절처럼 큰 위협을 주는 맹수는 없다. 아프리카나 시베리아에 사자나 호랑이가 있어도 인간의 삶에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가 그들을 이미 제압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히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여 그들의 고기를 먹고 있다.
인류가 문명의 세계에 진입한 후 고기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모두가 즐기기에 항상 부족하여, 고기는 남자의 음식이었으며 권력자가 이용한 신의 음식이었다. 먹거리를 정의한다면, 그렇게 품위 있고 고상하지 않다. 먹거리는 인간이 인간 외의 생물체를 살생하거나 약탈해서 얻은 유기체다. 무, 배추, 토마토, 고추, 감자, 쌀, 보리, 밀 등 식물성 식품도 마찬가지다.
왜 인간은 고기에 열광하는가? 고기는 외형과 내장기관, 근육의 미세구조, 오감과 감성, 어쩌면 영혼까지도 인간과 유사한 동물을 죽여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살육의 기쁨과 죄의식, 먹고 싶은 욕망과 망설임이 혼재한 상태에서 얻어진 음식이다. 그러나 고기에 대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욕망이 승리를 거두었다. 불에 지글지글 익으면서 풍기는 향과 고소한 맛이 모든 심적 갈등이나 장애물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고기에 농축된 고 영양가 때문에 인간은 적자생존에서 유리하게 진화하였다. 사람의 근육은 희생된 타자의 근육을 섭취하여 축적되었다. 자기 몸속에 소 5마리쯤은 들어있을 것이라고, 어느 아르헨티나인은 농담했다. 인간의 근육은 고기와 여러 식품을 통하여 유전정보를 받아 형성되었다. 물론 섭취한 고기가 곧바로 근육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기에 들어있는 고급 단백질이 인간의 살점이 되는 데는 기여하고 있다.
신을 위한 고기는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중의 먹거리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고기섭취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실현되었고, 또 다른 먹거리의 풍족함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고기섭취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소비층도 생기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나 다른 눈으로 소, 돼지를 바라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들이 인간과 너무나 가까운 생물체라는 사실이다. 원시 선조가 동굴벽화에 표현한 동물의 인간화, 반인반수의 모습은 혼란스럽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측은지심 따위의 감정일 것이다.
가축의 대량사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항생제 남용, 열악한 사육환경, 환경오염 문제, 붉은색 고기와 가공식품의 과잉섭취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직도 보신탕을 즐기는 마니아가 있는가 하면, 애완용 동물이나 반려견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개고기 식당 옆에 애완견 용품점이나 애완견 카페가 영업 중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40년간 식육학食肉學을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근육의 미세구조와 근육의 고기 전환, 도축과 도체처리, 육질과 위생증진, 포장·유통·가공기술의 개발을 위해 연구소와 학교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식육학과 영양학에서 추구하는 고기의 가치와 사회학이나 환경 분야에서 관찰하는 고기는 약간의 거리가 있음을 느낀다. 동물애호가나 채식주의자가 보는 고기에 대한 관점은 말할 것 없다.
대중에게 고기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달해야 하고, 그래서 그들이 고기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영양성분이 우수한 고기, 위생적인 고기를 알아야 하고, 자신의 건강에 맞는 식이 방법을 택해야 한다.
고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음식인가? 왜 고기를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가? 고기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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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