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사람을 ‘작은 우주’로 생각했습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을 자연으로 인식합니다. 조금 비슷하지요? 자연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람 자체가 자연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머물다 가는 자연은 〈오행〉, 즉 목(나무), 화(빛과 열), 토(땅), 금(쇠붙이, 단단한 것), 수(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도와주거나 혹은 견제하기도 합니다. 도와주는 것을 ‘상생’이라고 하고 견제하는 것을 ‘상극’이라고 합니다. 줄여서 ‘생한다’거나 ‘극한다’고 말합니다.
목(木)은 화(火)를, 화(火)는 토(土)를, 토(土)는 금(金)을, 금(金)은 수(水)를, 수(水)는 다시 목(木)을 생합니다. 그런가 하면 극하기도 합니다. 나무(木)는 땅(土)를 헤집고, 땅(土)는 물(水)를 막으며, 물(水)는 불(火)를 끄고, 불(火)은 쇠붙이(金)을 녹이며, 쇠로 만든 도끼(金)는 나무(木)을 다듬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자연의 질서가 부여하는, 목화토금수로 구성되는 표식, 즉 바코드 같은 것을 갖게 됩니다. 해도 달도 날도 그리고 시간도 모두 각각 자기 오행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걸 ‘사주’라고 하고 ‘선천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바코드 안에는 나 자신의 그리고 나와 내 주변 인물과 상황들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배우자, 부모, 직업, 미래, 건강, 학업 등 모든 것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까지도. 그러니 신께서 제일 잘 압니다.
선천운이 좋으면 인생이 따사롭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됩니다. 때론 좋은 명예도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좋은 선천운을 갖고 태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5% 정도 될까요? 나머지 95%는 대개 균형 잡히지 않은 사주를 갖고 태어납니다.
· 선천운과 후천운
사주가 좋든 나쁘든 간에 누구나 삶에 기복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좋은 사주를 갖게 되면 어려움이 오더라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반면에 나쁜 사주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회복도 더디고 기복의 폭도 더 커지면서 운세가 점차 아래 방향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선천운과 후천운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 두 운이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루면 운세가 좋아지고 조화가 깨지면 운세가 나빠집니다. 후천운은 크게 10년마다 오는 대운, 그 해의 세운, 그달의 월운, 그리고 일진이라고 해서 그날의 운, 이렇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운이 선천운이 필요로 하는 운에 해당하면 좋은 운이라고 말할 수 있고 불필요하거나 필요한 운을 공격하면 나쁜 운이 되는데요, 이런 운에 해당하면 당연히 삶이 고단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후천운은 각기 주어진 궤도를 따라 주어진 일정 기간(10년, 일 년, 한 달, 하루) 지속되다가 다른 오행으로 바꿔 탑니다. 즉 후천운의 가장 큰 특징은 ‘가변적’인데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후천운도 따라서 바뀝니다.
· 선천운인 사주를 보완하는 이름
이름은 후천운에 해당하지만 다른 후천운들과 달리 변하지 않고 달리 개명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고 같은 힘을 냅니다.
좋은 이름은 선천운을 보완하게 됩니다. 즉 사주의 부족한 점을 보태거나 넘치는 점은 좀 덜어냅니다. 사주의 질이 높아지면서 좋은 운이 올 때는 좋은 이름과 함께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동시에 나쁜 운이 올 때는 이를 적당하게 막아내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이름을 가지면 나쁜 상황에 닥치더라도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골프로 비유하자면 ‘컷오프’는 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쁜 이름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 이름의 또 다른 진짜 힘(energy)
이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사주 보완뿐만 아니라 그 이름처럼 자기 스스로 그렇게 되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동력이라고 합니다. 영동력은 이름의 영(spirit)이 움직여서 그 이름이 지향하는 모습처럼 되게끔 하는 힘을 말합니다. 이름의 각 글자 획수와 그 수들의 조합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 형 이 정 사격’이라 부릅니다. 이들 사격 수리의 상호작용에 따라 어떤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지게 되고 실제로 그런 모습처럼 살게 됩니다. 가령 장군의 이름을 가지면 장군처럼 되고 노숙자 같은 이름을 가지면 노숙자처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름에 정말 그런 힘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요. 사람이 영적인 존재인 한 이름도 영적인 존재이며 영적으로 작동합니다. 가령 홍길동(洪吉同)이란 이름을 가졌다면 우선 짝수, 짝수, 짝수라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길자와 동자의 획수를 합한 12획(원격)은 흉수리에 해당합니다. 12획은 ‘연약, 빈곤, 고독, 실의’ 이런 불운을 암시하고 있고 실제 삶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전체 획수인 정격 22획 또한 열매를 못 맺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젊은 나이에 요절할 수도 있는 이름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이름은 영적인 기운(energy), 즉 영동력을 갖게 되고 또 그 힘이 작동하게 됩니다.
· 이름을 왜 잘 지어야 하는가?
이름은 선천운인 사주를 보완해서 사주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그 이름처럼 되려고 하는 힘(영동력)을 갖고 있기에 좋은 이름을 가지면 추진하는 일이 내 의지대로 술술 풀리게 됩니다. 그러면 좋은 이름을 가지면 구체적으로 뭐가 좋을까요? 나부터 좋아지고 달라집니다. 나 자신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내가 해내고 말리라’ 이런 마음가짐도 생깁니다. 남보다 철이 먼저 들고 건강해져서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앞서갑니다.
내 주변 상황들과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직업, 배우자, 공부, 돈, 인간관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등등 이런 주변 상황이 더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학업성적이 우수해지고 특히 시험에 강해지게 됩니다. 내 뜻을 펴기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배우자를 둡니다.
한마디로 반듯한 인물이 되어가고 훌륭한 자녀들도 갖게 되지요. 재물복도 있게 됩니다. 잘되면 명예까지도 덤으로 얻게 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좋은 이름은 ‘날개’입니다. 돌부리를 만나면 살짝 들어줍니다. 반대로 나쁜 이름은 ‘짐’입니다. 나를 누릅니다. 치고 올라가야 할 시점에 슬그머니 밑으로 잡아 내립니다.
· 좋은 이름 바로 짓기
예로부터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복(福) 짓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미 자연의 이치를 이름에 담으셨습니다. 항렬자가 그렇습니다. 문중에서 돌림자를 정하실 때 상생의 개념에 기반했습니다. 가령 어느 항렬자가 목(木)에 속하는 글자였다면 그다음 항렬은 화(火), 그다음은 토(土), 금(金), 수(水) 순으로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즉 웃어른이 아래 후손을 생(生)하게끔 지으셨습니다. 이름을 공부하는 후학으로서 조상님들의 그런 지혜와 정성에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아버지 백산 선생님께 이름을 배워 대를 이어 짓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을 바로 짓는 것은 곧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책도 ‘복을 짓는 마음’으로 엮었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다듬어진 일 세대 작명가 백산 선생의 작명이론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작명의 기초를 잘 세우시고 좋은 이름도 많이 지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청년 같은 열정으로 당신이 가진 걸 전부 쏟아부어 주신 아버지 백산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평소 역의 세계에 대해 폭넓은 가르침을 주신 신산 김용연 선생님과 어려운 와중에도 쾌히 출판을 도와주신 안암문화사 이창식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3월 광화문에서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