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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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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92g | 128*205*8mm
ISBN13 9791130819228
ISBN10 11308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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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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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뼈를 위하여

세 살, 그 어린
망각을 끝내 지켰어야 했다
못에 찔려 피가 터지고 속살이 뜨겁게 드러났지만
나는 야무지게 울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달려야 했다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
멈춰 서서, 왜 달려야 했는지 물을 틈도 없이
결국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보다 희망적으로
기차보다 빠르고 정확히……

회의(懷疑)하는 순간,
모가지를 덥석 물어 뜯어버릴지도 모를
모퉁이들 사이로
숲속 동화를 찾아가는 몽상의 아스팔트를
꿈꾸듯 달려야 했다

운명적 반전은 없었다
미구의 행운을 위해
저 태양의 건륜(建輪)으로
눈이 감길 때까지 달려야 했다

초원의 건물들은 오늘도
무지개처럼 반짝거린다


------------------------------------------------------------


목련 그늘

천지간에 하얀 꽃빛으로 놀러와
까맣게 저무는 것들을 탓하지 말라
목련 꽃잎 까무룩 흩어지면서
뜨락을 지을 때
어린 너에게는 천만년의 목소리로
놀자고 같이 놀아달라고,
다 늙은 너에게는
천지간에 새끼를 치는 뻐꾸기처럼
피붙이를 부르는 호곡(好哭)일 테니,
저 하얀 꽃잎은 절명하는 게 아니다
귀를 대이면 강물이 치고
뒤란을 떠메고 갈 듯 우짖던 참새 떼며
소나기 치던 마을을
오래오래 밝혔던 등불이었으니
하늘 닮은 눈동자들을 피워 올렸다가
저무는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첫울음으로 지는 때에
거기 적막이 더해져야
다시 눈부신 초록을 얻는 거다
푸르러지는 뒷동산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초록 아가

아가를 기다리고 있다 눈코귀입……
꽃잎차례 따라 천지사방 울음 퍼지는
아가가 태어날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산맥을 넘어오는 초록의 자손이며
시냇물 적신 대지의 춤으로
하늘을 비껴 푸르게 빛나는
아가를 기다리는 어둠의 별과 아침의 창문과
한낮의 발소리들을 위해 기도한다
배회하는 축복을 위해 미소를 띄운다
무구한 숨결과 태양으로 잉태한
젖니 붉은 아가가 찾아오는 동안
손도 발도 가슴마저 내어놓고
새들의 공중에게도 젖을 물리고
길이 끝나지 않은 바퀴에게도 젖을 먹여야 한다
아가가 곧 태어날 거라고
강물의 노래를 품은 아가를
초원의 무지개를 가진 아가를
천지현황(天地玄黃)의 너를 기다린다, 나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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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환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복숭아뼈를 위하여」)이라고 여기며 달린다. 건널목을 건너고 철교를 건너고 목 잘린 가로수 길을 첨벙거리며 건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스산한 길에 떨어진 마스크를 밟으며 발꿈치를 달군다. 그에게 달리기는 결코 여가활동이나 취미 생활이 아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걸음마를 뗀 이후” “무엇을 향해 나아갔던”(「첫,」)가 되물어보고 사무친 마음으로 언덕을 오른다.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벽길을 나서서 김밥집에 들른다.
화자는 복숭아뼈까지 힘을 내어 달린다. 못에 찔려 피가 나고 속살이 드러났지만 야무지게 견디면서 “불꽃 같은 몸부림의 노래”(「스티로폼 서정」)를 부른다. 더이상 울지 않기로 다짐하고 신념으로 흘리던 눈물도 그친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사랑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기꺼이 나아간다. 자식을 낳으려고 출렁이는 강물을 따라 흐른다. 공중이 새들에게 젖을 물리고 길이 끝나지 않은 바퀴에게 젖을 먹이듯이, 한 마리 까치가 더 멀리 날아가도록 지킨다. “길거리에 서서” “꾸역꾸역 밥을 삼켜본 짐승만이 볼 수 있는/지평선”(「길밥의 형식」)을 하늘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 맹문재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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