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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플라워

어글리 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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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52g | 125*205*11mm
ISBN13 9791195530526
ISBN10 11955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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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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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깜짝 놀랐다
갓 태어난 아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뭔가 찌그러진 느낌의 괴이한 성기였기에
아이에게는 추화라는 이름이 생겼다 용하다는 점쟁이가 지어준 이름 어글리 플라워
어글리 플라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피는 꽃이 서러웠다 자신의 서러움과는 상관없이 꽃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렸고 꽃의 번식력에 감탄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견딜 수 없는 호기심으로 꽃을 만지고 냄새 맡고 입을 대보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어글리 플라워는 도끼로 자신의 꽃을 뿌리째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몸서리쳤다 소년이 되어가면서 그의 주변에는 여자들뿐만이 아니라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그를 더듬는 남자들마저 꼬이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손목을 긋듯 면도칼로 그의 꽃을 그어버렸다 꽃 위로 터지듯 뿜어 나오는 피를 보며 그는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자 병원의 어지러운 조명 아래 그의 꽃은 봉합이 되어 있었다 그 후로 그의 꽃은 더욱 기괴해졌고 시도 때도 없이 피는 일은 더 잦아졌고 잘 시들지도 않았다 학교와 동네에서 그를 보며 웃고 수군대는 소리로 그는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꽃이 드러나지 않도록 압박붕대로 꽃을 묶어버리고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그 사이로 아주 못생긴 꽃 하나
나비와 벌 대신 벌레들만 달려드는 꽃 하나
구름도 웃어대고 별들도 웃어대는 못생긴 꽃 하나
어글리 플라워는 혼자 울다가 웃다가 소리치다가 다시 길을 걷다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시간에 어느 움막에서 나오는 음악에 멈추어 섰다 처음 듣는 이상한 음악이었다 꽃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꽃이 춤을 추는 광경을 어글리 플라워는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저마다 사랑에 눈이 머는 순간에
달빛 아래서 혼자 길을 걷는 못생긴 꽃
달빛 아래서 혼자 춤을 추는 못생긴 꽃
어글리 플라워는 이제 겨우 자신의 꽃이 처음으로 부끄럽지 않았다
--- 「어글리 플라워」 중에서

밤에 닿은 적이 없었다
밤의 속살을 만지고 싶었다
언제나 너무 뜨겁거나 너무 추워
기쁨과 상처가 없는 일상은 눈물이 난다
너는 아무도 없는 틈과 사이마다 스며있다
문을 열면 어디에서든 왈칵 네가 쏟아질 것 같아
라디오를 켜면 너는 음악과 음악 사이에 숨어 있다
DJ의 옅은 기침 사이로 스민다
해가 져도 오지 않는 밤
환한 어둠 따윈 밤의 세계가 아니다
너는 도처에서 파도치지만 너를 볼 수 있는 곳은
비행하는 모기의 눈 속 어딘가
밤은 온 적이 없어도 태양은 뜨고
너는 도처에 있지만
만질 수가 없다
--- 「만질 수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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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한 ‘코기토’로서 시인은 시공과 관념과 인식을 통합시킨, 자신만이 완성할 수 있는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세계에는 “허공 속에 피어난 꽃들처럼” 생각이 피어난다. “피어나기만 하고 질 줄 모르는 생각들”은 그러므로 지지 않는 몰락이다. 몰락하되 지지 않는 것. 이기지도 않았으나 지지도 않은 세계의 절대적 실존. 그곳에는 또 구름과 함께 말들이 나부낀다. 말이 없었으면 시인은 어쩔 뻔했을까. 그에게 언어는, 다시 말해 입과 혀는 장애가 없는 이상세계인 동시에 그를 매력적인 코기토로 만들어준 절대적 기관이다. “가벼워지지 못한 날개는 위험하다”는 언술에 이르면, 시인에게 말은 오래 전에 죽은, 몰락을 완성한 세계를 떠도는 새가 물어다 준 구원자다. 구원은 그렇게 가볍게, 왈칵, 찰나에 이루어진다.
황용순 시집 『어글리 플라워』는 언어실험 기관으로서 시인이라는 코기토가 만들어낸 일종의 장치다. 시집 전반에 흐르는 비장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섹시한 미장센들만으로도 이 시집은 오랫동안 관찰되고 끊임없이 해석되어야 한다.
- 김도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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