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인류의 오랜 고정관념을 무너트렸다. 그때까지 수천 년에 걸쳐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대지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 철학의 위기를 깊이 사유한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정면으로 묻고 나섰다(1784년). 이에 대해 20세기 철학자 푸코는 유럽 사상사에서 철학이 ‘오늘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칸트가 처음이었다고 평가했다.
· 기나긴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일하는 사람들, 억압과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 사회의 생산을 도맡아 온 사람들 쪽에 서서 철학을 전개한 철학자가 마르크스다. 고대 노예와 중세 농노를 비롯해 사회 전체를 먹여 살려온 민중에 대해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침묵했다. 고대 철학자들은 노예들의 고통을, 중세철학자들은 농노들의 빈곤을 외면했다. 마르크스는 그러면서도 ‘현인’을 자처하거나 휴머니즘과 사랑을 주창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했다.
· 과학적 사회주의 철학이 과학 앞에 얼마나 열려 있었는지 진솔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 세기 넘게 철학을 실천한 경험을 통해 마르크스 철학이 미처 보지 못한 ‘어둠’이 드러났거니와 더 거슬러 올라가 근대 유럽 철학이 추구한 주체 의식과 휴머니즘의 한계 또한 또렷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세기 이래 우주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진실도 곰비임비 발견되면서 철학의 근본적 성찰과 새로운 인식론 정립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 인류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안간힘은 주체를 도드라지게 사유하는 철학을 낳았고 휴머니즘의 흐름은 데카르트에서 칸트를 거쳐 마르크스와 레닌 철학에 이르렀다.
· 인류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의 위상을 ‘해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가까스로 적응할 때, 우주과학은 다시 ‘차가운 진실’을 일러주었다. 지구는 물론 태양마저 중심이 아닐 수 있다는 불길한 의심이 과학적 사실로 확인되었다.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해는 평범하거나 어쩌면 그렇지도 못한 변방의 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근대 천문학 혁명에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혁명적 발견이었다. 지동설의 충격에서 겨우 다잡은 인류의 자부심과 존재감은 재차 뒤흔들렸다.
· 현대 우주과학의 발견 앞에서 자아나 주체를 중심에 둔 근대철학의 한계는 또렷하게 드러났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가릴 것 없이 고대 철학 이후 중세를 거쳐 실천적 유물론에 이르기까지 20세기까지의 철학은 모두 현대 과학이 발견한 우주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사유했다.
· 지금까지 철학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여러 시각에서 던져왔지만 사변적 접근으로 보편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철학의 관념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현대 우주과학이 발견한 우주의 진실에 근거해 ‘인간은 우주적 존재’라는 ‘과학적 존재론(scientific ontology)’을 내올 수 있다.
· 공룡의 눈과 외계 생명체의 눈을 상정해 사유하면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와 인식 주체로서 인간의 능력에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파악하는 과학적 존재론―정확하게는 ‘우주과학적 존재론’이지만 문맥에 따라 과학적 존재론 또는 우주적 존재론으로 표기―에 기반을 두고 철학의 우주 망각을 성찰할 때 ‘공룡의 눈’이 과거라면 ‘미래의 눈’은 외계 생명체다.
· 인간의 내면까지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몸에 담긴 ‘인식 장애’를 인정하는 인식론, 그 장애를 의식하고 최대한 벗어나려는 인식론, 인간에 앞서 자연 또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유물론에 동의하되 인간의 인식 기관 또한 자연의 부분이자 진화의 산물임을 의식하는 인식론이 과학적 선험철학이다.
· 인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을 상정할 수 있지만 인간 주체 또한 그 일부임을, 더욱이 인식하는 주체는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임을 우주적 선험론은 중시한다. 모든 인간은 실체가 아니라 우주와의 관계, 좁혀서 우리가 흔히 자연으로 부르는 지구와의 관계, 더 좁혀서 사회와의 관계로 존재한다.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과 인식하는 대상 모두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에 주목할 때 과학적 선험철학은 우주과학적 선험철학, 우주적 선험철학’으로 명명할 수 있다.
· 성찰하는 동물로서 인간은 자신만 되돌아보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공동체, 더 나아가 인류를 성찰하는 유적 존재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찰적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생명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는 존재다.
· 우주적 선험철학은 우주는 물론 그 미미한 부분인 인간의 내부에도 아직 철학이 파악하지 못한 ‘어둠’이 있다고 상정한다. 그 어둠에 숨어 있는 진실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열린 철학이 어둠의 인식론이자 우주적 인식론이다.
· 인간과 사회가 우주의 작은 일부라는 과학적 성찰, 인식 주체인 인간과 우주가 이어져 있다는 성찰적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구상할 수 있다.
· 우주적 선험철학에 근거한 역사 인식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맞물려 전개되어 온 세계사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드리운 ‘어둠’―인식의 생물적·사회적 선험성―을 남김없이 파악해내려는 성실한 성찰과 창조적 노동을 요구한다. 우주적 선험철학이 민중과 사회와 더불어 선순환을 이루며 숙성할 때 새로운 문명의 길을 활짝 열어갈 수 있다. 민주주의 성숙 단계에서 꽃필 새로운 문명의 구상은 인간의 우주적 위치와 삶의 의미를 천착하는 철학적 물음과 이어져 있다.
·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개성과 차이를 다채롭게 꽃피울 때 우주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면, 우주적 사회를 이루는 철학은 분명하다. 모든 개개인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조건을 갖춘 민주주의 정치 공동체, 사회적 황금률이 사람들 사이에 불문율이 된 공동체가 우주적 사회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