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어느 저녁, 나는 오랜만에 소나타 곡을 들고 그 교수님 댁으로 어머니와 함께 갔다. 대구 서구에 있는 삼익 뉴타운이라는 아파트였는데, 거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머리가 참 꼬불꼬불하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남자 교수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이 분은 상당히 까다로워서 어린 학생들을 자신의 레슨 제자로 받아주지 않는데, 내가 남자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을 가졌다고 했다. 아무 것이나 한 번 쳐보라고 해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쳤다. 1분도 안 되는 내 연주를 듣더니, 곡 제일 앞부분에 있는 뭐라고 쓰인 음악 기호를 보고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다닌 피아노 학원의 어떤 선생님들도 그런 악상 기호에 대해서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고, 게다가 내가 먼저 질문한 적도 없었으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른다고 하니, 그 뜻을 알려주면서 그런데 나는 그 뜻과는 정반대로 하고 있었다면서, 역시 음악은 혼자서 하는 것은 힘드니 옆에서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고, 사실 이게 맞다. 그런데 당시 이 말은 들은 나는 속으로 무척 반항심이 일었다. 아마 사춘기여서 그랬겠지) 짧은 레슨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나보고 꼭 레슨을 받고 음악으로 가야겠냐고 물었다. 그 질문의 의도는 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그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나의 음악 인생」 중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5번은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면서, 모차르트 특유의 밝고 경쾌한 리듬이 시종일관 계속된다. 어떡하든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이 악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또 왼손 놀리는 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그 위에 나만의 감정을 실어내는 것이 목표다. 한 주에 한 번씩 제니퍼 선생님의 레슨을 받으며 한 줄씩 한 줄씩 그렇게 진도를 나가며 연습했다.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고 잘되는 부분도 있지만 진도는 일정하게 계속 나갔다. 레슨 첫 주에는 고작 이 정도 속도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웬걸 시간이 흐를수록 따라가야 할 양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충분히 잘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진도는 그래도 계속 나간다. 물론, 진도가 나간다고 처음 했던 부분들을 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것이니 앞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연습하고 레슨 받고 하는 건데, 썩 그렇게 만족스러운 소리가 내 귀로도 들리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점이었다.
--- 「민섭아, 너 참 잘했어」 중에서
4월 달까지는 학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중간고사 기간이 닥치면서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음악사와 시창 청음, 화성학은 중간고사가 있었는데, 책을 보고 시험 준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시험을 보기 위해 평소 그 시간에는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직장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는 데다, 곧 내 연주법 차례가 되는 것도 부담이었고, 반주자와 같이 시간을 다시 맞추는 문제 역시 정말로 힘들었다.
서서히 전공 실기를 더블로 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바쁘고 힘이 드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나타나고,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하고 까먹고 넘어간 것들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나에게 예약 문자를 보내어서 까먹지 않도록 자신을 다지기도 하면서 버텨냈다. 어떨 때는 물 마시는 것을 참기도 했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한 시간씩 운전해서 주차하자마자 곧장 수업에 들어가야 하고 또 끝나면 다시 벼락같이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바이올린을 들고 가야하는 화장실이 참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화장실 가기가 힘들 정도니까. 직장과 학교를 드나드는 것도 과부하가 점점 걸리기도 했다. 아. 이를 정말 어떡하지?
--- 「나와는 삶의 속도가 다른 반주자들」 중에서
이 곡은 지금까지 했던 곡들과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작곡 시기가 20세기다. 지금까지 했던 바흐나 모차르트가 18세기 사람들이니 200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곡의 느낌도 훨씬 다르다. 폴리시 댄스는 당시로서는 댄스 뮤직일까. 귀족들이 듣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즐겁게 놀기 위해서 만든 듯하다. 세계 1, 2차 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독일과 폴란드 일대에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만든 곡일까. 아무튼 밝고 경쾌한 리듬이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비트리오 몬티의 ‘차르다시’와도 비슷하다. (차르다시는 다른 악기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바이올린만의 깊은 세계가 느껴지는 곡이다. 바이올린을 좋아하든 별로 안 좋아하든 이 곡을 들으면 분명히 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곡이 아닐까.) ‘차르다시’처럼 경쾌한 느낌이 시종일관 계속되는 폴리시 댄스, 제일 앞 부분에 시작하는 메인 멜로디는 마치 새벽에 수탉이 우는 듯한 느낌도 나는데, 이 멜로디는 끝까지 수도 없이 반복된다. 그리 어렵지 않은 곡이니까.
--- 「수고 많았어요, 이제 졸업합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