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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생각한다

: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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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46g | 152*225*30mm
ISBN13 9791197320446
ISBN10 11973204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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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담론은 대개 소비 주체로서의 90년대생를 다뤘다. 이 책은 정치적 주체, 시민으로서 90년대생의 목소리를 담는다. 90년대생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민주주의, 입시, 민족주의에 관한 청년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했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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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의 어떤 요소가 한국을 시대의 급류에서 맨 앞에 서게 한 것일까? 사회를 일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이들을 서열화하는 위계성, 그 피라미드 속에서 어떻게든 위계를 거부하고 상승하고자 하는 상향심, 모든 이들이 표준적인 대세를 따르고자 하고 남들도 대세에 따르게 만들고 싶어하는 적극적 집단주의, 국가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 모순적 국가관, 도덕을 통해서 발언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보다도 세속적 상향을 원하는 이중적 심리. 아마 한국 문화의 이런 요소가 세계화, 정보화라는 변화를 맞닥뜨려 이 사회에 무언가 유별난 결과물을 만들어내 이 사회를 ‘미래’로 끌고 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문」중에서

K의 특성은 그 자체로 명쾌하게 이해되기보다는 어지러움을 더한다는 점에서 혼란한 이 시대에 아주 적합한 듯하다. 그리고, K에 함축되어 있는 상향의식, 위계의식, 속도 지상주의, 강력한 국가 역량 같은 것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류가 빚어낸 오늘날의 세계에 아주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상기하였듯 이런 요소들은 K가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기이하고 혼란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따라서 K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으며, 반대로 오늘날의 세계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서문」중에서

사회갈등의 격화와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라는 현상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는 장르를 막론하고 상당한 강도의 갈등을 반영했다. 대중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음원 차트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팬덤과 기획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되어 전장처럼 변모했다. 웹소설은 이전보다 ‘한국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위계를 거슬러 오르는 사회적 상승, 적대적 세계 속의 투쟁, 경쟁이 야기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며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웹소설보다 정도는 약했지만, 웹툰 또한 유사한 흐름을 겪었다. 내용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소비 양태의 변화도 발견되는데, 서로 대립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끼리 콘텐츠와 플랫폼을 둘러싼 갈등을 벌이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지금의 20대가 되었는가」중에서

한국에서 2010년대의 콘텐츠가 투쟁적으로 변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인터넷이 대중문화 생산과 소비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PC의 확대에 이은 스마트폰의 보급은 앞서 설명한 대로 온라인 세계와 현실 세계의 벽을 없애버렸고, 특히 디지털 원주민 세대로 올수록 온라인 공간의 사건에 더 빠르고 강하게, 잦은 빈도로 반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콘텐츠의 생산자와 공급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이 급격히 확대된다는 것을 뜻했다. 소비자는 자신이 경험한 콘텐츠의 좋은 점, 혹은 싫은 점에 대해 즉각적 피드백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 피드백이 집단적인 수준으로 확대되어 콘텐츠 생산자와 공급자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소비자 선호는 자연스레 더욱 기민하게 움직이게 되었고, 공급자는 과거보다 훨씬 더 소비자들의 직접적인 열망을 해소해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만 했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정보화의 격랑: 콘텐츠와 커뮤니티」중에서

90년대생 소비자와 상호작용하며 콘텐츠들이 새롭게 진화한 결과, 새로운 한국 콘텐츠들은 국제적인 인기까지 얻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빠른 상호작용과, 격렬한 경쟁의 결과물로 개별 콘텐츠가 엄청난 질적 상승을 이뤘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열광적 반응을 전부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한국의 90년대생들이 겪은 세계화나 정보화로 인한 사회적 압박을 다른 국가의 비슷한 세대가 공유하는 데서 이 같은 열광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정보화의 격랑: 콘텐츠와 커뮤니티」중에서

90년대생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생각해보면, 가치 추구 대신에 그들이 어떤 영역에 인지적 자원을 할당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계층화가 상당히 진행된 90년대생은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영역에 몰두했다. 먼저, 사회경제적 상층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던 90년대생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해진 경쟁에 투신했다. 그들의 삶은 최소한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학업 경쟁과 그 뒤를 잇는 취업 경쟁, 그 뒤의 자산 경쟁의 연속으로 묘사되었다. 어떤 생애주기에서 어떤 영역에서 누구와 경쟁하는지가 그들 사이에서도 지위를 결정지었기 때문에, 경쟁에 휴식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 경쟁에는 많은 경우 그들의 부모들까지 가세하여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으며, 경쟁자 당사자에게도 심한 정서적 압박을 주곤 했다. 거기에 SNS 문화는 심지어 문화적 소비마저도 더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90년대생들의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중에서

따라서 90년대생 사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여 규칙이 해킹당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고, 외부의 개입으로 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 불확실해지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개입과 교란으로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시험으로 평가되는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며 그 결과에 따른 차등과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을 차라리 더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공정’보다는 다만 불안을 더는 키우지 않는 것과, 신뢰의 기반이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90년대생들의 가치, 혹은 가치의 부재」중에서

각국은 초기에 중국에서 생산되는, 아니 하사되는 것에 가깝던 마스크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으며, 타국으로 향하는 마스크를 중간에 낚아채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이 우러르던 명품 의류 기업들은 직원들을 재배치해 수제 마스크 생산에 투입했다. 반면 한국은 초반 패닉에 의한 사재기가 정부의 배급 시스템에 의해 진정되자 누구도 마스크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구축한 배급 시스템도 중요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에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저부가가치 제조업, 요컨대 말단 제조업 기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중에서

의료 영역을 국가가 징발하고 역시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공공인력과 협력시켜 위기를 돌파한 것을 한국이 과거 구축한 병영 국가 시스템과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국가의 강력한 권력은 언제든지 사회의 각종 자원을 징발하여 국가가 원하는 목표에 투입할 수 있도록 배치할 수 있었다. 군부 정권 시기에 이 강력한 권력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억압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지만, 교육과 산업, 보건을 비롯한 각종 사회 발전과 근대화에 추진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국가 권력은 수많은 인적·물적 자원에 관여해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았고, 대신 방임했을 때 움직이지 않았을 것들을 훨씬 빠르게 움직이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중에서

굳이 분류한다면, 국가의 동원력·행정력·정보력을 활용한 한국의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구 국가들보다는 중국에 더 가까웠다. 자유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든 그저 정밀한 행정력이 부족해서든 프라이버시와 같은 개인권을 더 잘 보장해준 서구 국가들은 바이러스 대유행을 겪어야만 했다. 말단 제조업 덕택에 마스크 수급 문제를 재빨리 해결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은 중국 쪽에 놓여야 마땅했다. 즉, 코로나19와 ‘K-방역’은 자유, 개방, 투명성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대한민국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 방역에서 강력한 국가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추적하고 저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 능력이었다. 앞선 글에서 이미 보았듯이 한국의 국가 기구는 인터넷, 스마트폰, CCTV 등의 새로운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행정력을 마음껏 발휘했고 그러한 행보를 통해 감염 폭발을 끝끝내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술만이 전부라고 할 수도 없었다. 발전한 서구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조치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있었음에도, 사회에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가 기구가 효율 중심의 적극적 행정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방임을 택했다. 즉,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기 위해 진짜 필요했던 것은 정교한 추적과 격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기구의 조합이었다. 이 조합이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유독 성공적이었던 방역의 본질이었다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국가의 위기, 그리고 부활: 1990-2020」중에서

즉,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식과 환멸이 확산되었으면서도 동시에 한국인들은 여전히 엄청나게 민족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순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지적하는 글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물론 샘 오취리 사건 같은 몇몇 일화적인 순간에 소위 식자들이 대중의 민족주의적 반발심에 불편함과 비판의식을 토로하기는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환멸과 강렬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공존을 기존의 민족주의 비판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의로 설명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지금 이 순간에도 민족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을 찌푸리는 이들마저도 ‘국뽕’에 젖어 들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영혼을 향한 속삭임: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하여」중에서

그 결과 한국에서는, 특히 청년층에서는 민족주의가 퇴조했으면서도 퇴조하지 않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공적 가치, 혹은 구성원 간 협력의 기반으로서 민족주의는 썰물처럼 빠졌고, 국가 동원 기제로서 민족주의는 조롱을 사게 되었다. 반면,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이들의 도피처로서 민족주의는 2010년대에 대대적으로 부흥했다. 사람들은 소위 전범기라는 일본의 욱일승천기 비슷한 문양이라도 보이면 성스러운 민족의 이름으로 타인들을 교정하고 공격하러 몰려갔으며, 일본과의 정치적·경제적 갈등에 누구보다 분노하며 반일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일본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을 인터넷에 박제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정체성을 통해 대리만족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한국에 찬사를 보내는 채널을 구독했다. 즉, 민족주의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최적 협력체로서 민족국가의 공적 기반이라는 역할은 사실상 사라진 데 반해 증오 표출과 대리만족을 통한 자부심이라는 심리적 역할만이 남은 것이다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영혼을 향한 속삭임: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하여」중에서

나는 그래서 이주민 문제를 생각할 때 차별이나 혐오 같은 표현보다 더 현상을 잘 드러내주는 말은 ‘갑질’이라고 생각한다. 갑질은 위계 서열을 파악한 이가 자신보다 낮은 위계에 있다고 판단되는 이에게 얼마든지 위세를 부리고, 인격을 모독하고, 그의 삶에 간섭하려 하는 행위다. 갑질에서 중요한 건 다른 모든 정체성 이전에 부분적으로나마 표준화된 수직적 위계와 서열이 가장 크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가장 강한 특성은 그들이 타인에게 늘 갑질을 당하면서도 기회가 보이면 언제든지 갑질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라는 것일
테다.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아래로부터의 한국적 다문화」중에서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현대사회의 가장 거대한 물결인 세계화가, 이주민의 물결을 두 갈래로 갈라놓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이질적 느낌을 서울대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 본격적으로 느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많은 수는 ‘세계화’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방학마다 유럽이나 미국을 왔다 갔다 하고,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으며, 세계의 여러 문화와 음식에 정통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만나는 ‘외국인’들이 그 외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동질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 ‘아래로부터의 한국적 다문화」중에서

그러니 중요한 것은 논쟁의 외피를 쓴 조직 간 세력 다툼에서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NL은 ‘품성론’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반지성주의적 조직 방법론과, 한국인에게 여전히 지배적이던 민족주의 감성을 활용하여 그 주도권을 쥐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NL은 정치적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적 정합성이 아니라 분개의 감정을 불태울 수 있는 도그마였으며, 인간적 접근을 통해 동료를 포섭하고 그들에게 도그마를 주입하는 방법론이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사실 애초에 80년대의 학생운동이 차분하고 논리적인 고려보다는 광주 학살과 신군부에 대한 분개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NL의 승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386의 형성」중에서

이로써 완성된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서사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전후 30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안티테제의 집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북한과의 전쟁, 미국의 도움 등을 정권이 제시한 시각과는 반대로 해석하였으니,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안티테제와 언더도그마가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한국이 안티테제로만 행동하면 한국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미국과 일본의 자본주의 세력에서 이탈하여, 북한, 중국과 우호를 다지고, 수출을 위해 소비자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재벌에 맞서 국내 대중의 후생을 위하여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고,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와 농민이 모든 권리를 획득해야만 한다는 식이었다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386의 형성」중에서

따라서 운동권 이념의 주류를 형성했던 NL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은, 사회주의보다는 신전통주의라고 보아야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통해 노동계급이 이끄는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 볼셰비키의 후예가 아니었다. 대신에 군부 독재 시기에 진행된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갖은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한국에 복원하고자 했던 이들로, 계보를 찾자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라고 해야 옳았다. 실제 그들이 위정척사파처럼 근대화에 맞서 유학자의 사회적 헤게모니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가정과 지역사회로부터 교육받아 익숙하게 내면화한 성리학적 감성에 강한 친화성을 보이고, 함석헌이나 신영복을 비롯하여 전통주의적 인간론과 영성론에 감화된 것은, 근대성을 지향한 소련식 사회주의보다는 위정척사파의 감수성에 더 어울렸다.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신전통주의 혁명론: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386」중에서

그러니 386 본인들부터가 대학 문을 나오자마자 국민 대다수에게 풍요를 보장해주는, 충분히 성숙하고 번영하는 한국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 대학 교육을 받은 35%가량의 60년대생 엘리트 그룹은, 혁명을 꿈꾸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후 한국 사회의 각종 영역의 핵심 중추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들이 80년대 정권에 반대하는 막강한 힘을 구성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이 고등교육의 수혜를 입은 한국 사회 최초의 대규모 인구 집단이었다는 데 있었다. 혁명론을 버리고 고도성장의 절정에 있던 한국 사회 각지에 참여한 순간부터, 그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될 것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신전통주의 혁명론: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386」중에서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에서, 586 논쟁에 불을 지핀 ‘조국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조국 사태는 여전히 독재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가는 586이 실제로는 자산 증식과 계층 세습에 골몰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드라마보다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들은 반일을 선동하는 노래인 ‘죽창가’를 부르면서 유니클로를 구매하는 청년들을 비난했고, 그러면서도 일제 렉서스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미 제국주의가 남북한 협력을 가로막는 것에 분개하고 중국이 미국을 몰아낼 것을 은연중에 기대하면서도 자녀를 어떻게든 미국에 유학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말하면서도 강남, 목동, 분당 등의 아파트 가격에 누구보다 민감한 사람들이었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고 교육 경쟁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자녀들에게 갖은 스펙을 만들어줘 어떻게든 명문대에 들여보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선진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계층 세습과 이중사고」중에서

현행 입시 시스템의 본질은 한국 교육의 ‘속의 요구’가 외부로 발산하는 것을 막고 철저히 교실과 학교 안으로 가두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속의 요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속의 요구, 즉 경쟁은 이제 교실 안에서 멈추게 되어 외부에서 잘 포착되지 않게 되었을 뿐이지 과거와 달리 여전히 강고했다(물론 그 또한 상위권 위주의 쏠림 현상을 보였지만 말이다). 내신을 잘 따기 위해서 학생들은 5학기 열 번의 시험에서 교사들이 나누어준 유인물을 달달 외워야 했으며,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더 넣고자 전혀 의미 없는 요식 행위, 보여주기식 활동에 시간을 낭비했고,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에 관하여 생기부에는 그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작성했다.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출세라는 욕망, 개혁이라는 허상: 학생의 입장에서 본 입시」중에서

대신 내신과 생기부 위주의 입시가 펼쳐지면서 변한 학교의 풍경을 보자면 ‘겉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 가능하게 한다. 바로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교사의 수업에 집중하고, 어른들이 보기 좋은 허울 좋은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란 여전히 어렵다. 한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구성하는 상향 의식을 비판하기 전에, 그 비판의 준거가 되는, 무언가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로 가득한 교육의 ‘원론’이 추구하는 게 고작해야 ‘보시기에 좋았더라’인 것 아니었을까 먼저 의심해야 한다.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출세라는 욕망, 개혁이라는 허상: 학생의 입장에서 본 입시」중에서

현대 교육의 문제를 종합하자면 이렇다. 20세기 후반부터 현대사회는 더욱 많은 지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식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지 못한 하위권은 적절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고, 여기에는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커리큘럼에 의한 교육이 양산하는 비효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상당수 대학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낭비적 운영을 이어가고 있고, 상위권 대학 또한 연구에 급급해 수준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갈수록 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상위권 대학의 졸업장, 즉 학벌이 갖는 프리미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학벌 체제의 기원과 교육의 변화에 관한 제언」중에서

그러기 위해서 대학의 무분별한 자율성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평가와 분배 권한을 사실상 독점한 대학으로부터 평가의 기능을 일정 부분 회수해오는 건 필수적이다. 나아가 개별 과목에 대하여 공신력 있는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 평가를 인프라로써 공급하는 일이 해법이 될 것이다. 대학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노동시장에 공급하지 못한 채 연구와 교육, 평가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게으른 공존 속에서 오로지 ‘학벌 프리미엄’이란 관성에 기대고 있다. 더욱이 비대한 학부 교육은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갈수록 어려워지는 연구에 점차 방해가 되고 있다. 지식 생산자로서 교수들은 이제 학부 교육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대학은 이제 학부 교육이라는 불필요한 짐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학생들도 그 족쇄에서 놓아주어야만 한다.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 ‘학벌 체제의 기원과 교육의 변화에 관한 제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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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시선으로 쓴 『90년생이 온다』를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 90년대생들에 대해 ‘의아해했던’ 모든 것들을 『K를 생각한다』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K를 생각한다』는 한국의 90년대생이 겪어냈던 입시 경쟁, 경쟁의 압력으로 만들어진 가치 부재의 상황, SNS를 통한 소통 양식 모두를 엮어내며 현재의 90년대생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비평적 렌즈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렌즈에 익숙해질 때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20년대의 한국 사회를 실로 정확하게 살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
“이 책은 청년을 원숭이로 만드는 흔해빠진 청년 담론의 부스러기가 아니다. 거꾸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고쳐가야 하는지라는 우리 모두의 문제에 대해 청년 세대가 내놓는 묵직한 대답이며 그들이 나누어 주는 고마운 가르침이다. 또 ‘전복적 시각’과 ‘감성’만 난무하는 인상 비평이 아니다. 역사적·사회학적 지식을 두껍게 깔아놓은 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의 투박한 의문과 고민이 펼쳐내는 성실한 세밀화이다. 나는 『K를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이제 청년 세대가 자기 과잉과 피해의식을 벗어나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만들어갈 책임 주체로 성숙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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