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
이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운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가스실을 운영하거나 짐바브웨나 미얀마나 중국에서 반정부 인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저 ‘괴물’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품위 있는 사람인가. 하지만 우리가 그런 나라에 살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그래서 차마 반정부 시위를 벌이지 못하고, 그러다 모르는 사이에 주변의 광기에 휩쓸릴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우리의 인격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에 파견되었을 때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유대인 탄압에 가담하길 거부하고 경비병 보직 명령을 거부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 도대체 우리를 둘러싼 도덕적 공포를 알아채기나 할까? 그래도 좀 더 벗겨 보자. 우리의 인격, 우리의 성향,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이 어떤 면에서 우리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격은 우리가 택한 것이 아니다. 유전적 특성과 양육 환경에서 우리의 발언권은 없다. 그래서 이런 것마저 벗긴다면 무엇이 남는가? ‘우리’에게, ‘나’에게 무엇이 남는가?
▶ │현재│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미래는 결국 미래의 일이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에 있었던 일일 뿐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현재가 어떤 기간을 가진다면, 현재의 일부는 과거나 미래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지속성이 없는 영역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떻게 지속성이 없는 영역에 살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두 개의 존재하지 않는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는가?
▶ │이발사│ 알칼라에 이발사가 한 명 있다. 그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만 면도해 준다. 그러면 그는 스스로 면도를 할까?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을 면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발사가 면도를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는 스스로 면도하는 셈이 된다. 그는 스스로 면도를 할까, 하지 않을까?
▶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가 말한다. “내 말은 거짓말이다.” 그가 한 말이 그게 전부라면, 그가 한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그가 한 말이 참이라면, 그의 말은 거짓말이고, 그래서 그의 말은 참이 아니다. 그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그가 한 말은 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이 된다. 그러면 그가 한 말은 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 │강│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물은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강물을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 발을 담근 강은 여전히 그 강이지만, 내일 그 강은 그 강이어도 다른 물이 흐를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그 강은 바로 그 강이 아니다.
▶ │1001마리 고양이│ 기치 교수의 티블스는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고 매트에 앉아 있는 유일한 고양이다. 티블스에게는 1000개의 털이 있다. 티블스의 몸에서 털 하나가 빠져도 티블스는 여전히 매트에 앉아 있는 한 마리 고양이다. 그 매트에는 1000마리의 고양이가 앉아 있고, 각각 다른 털이 빠져 있다. 그래도 물론 티블스는 역시 티블스다.
▶ │크립키의 피에르│ 파리에 사는 피에르는 선생님에게 런던의 얘기를 듣고 사진도 많이 보아서 런던을 좀 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름대로 결론 내린다. “Londres est jolie.” 런던은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러다 그는 ‘런던’이라는 도시에 살게 된다. 그에게 런던은 더 이상 롱드레(Londres)가 아니다. 런던의 어느 황폐한 구석에서 혼자 살면서 그는 정색하고 말한다. “London n’est pas jolie (런던은 아름답지 않다).” 피에르는 런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 │이타심│ 다른 사람을 돕는 이유는 그냥 그러고 싶어서다. 그래서 남을 도우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셈이 된다.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목표는 자기가 하고 싶은 행위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소위 이타적 행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기심의 또 다른 모습이다.
▶ │크로스 드레싱│ 데이비드는 남녀의 옷을 바꿔 입어 가며 양쪽 역할을 즐긴다. 여자 옷을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으면 웬만한 남자들이 넋을 잃을 만큼 우아하고 멋진 숙녀 데비니아가 된다. 가죽점퍼 등 남자 옷을 입으면 터프하고 박력있는 데이브가 되어 언제라도 일을 저지를 것처럼 보인다. 어떤 여자들은 데이브가 좋아 어쩔 줄 모른다(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데비니아에겐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들은 데이브와 데비니아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데이브와 키스하지만 데비니아에겐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이자 같은 사람과 동시에 키스를 하고 또 하지 않을 수 있는가?
▶ │연인들│ 래리는 루드밀러를 사랑한다. 래리가 루드밀러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의 몇 가지 특징 때문이다. 그렇다면 래리는 그런 특징을 가진 다른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을까? 그러면 안 되는가? 래리는 루드밀러라는 특별한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루드밀러 같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 │협박│ 세인틀리 상원의원에게 그의 비리를 언론에 알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다. 세인틀리 상원의원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그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있다)도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이 둘을 묶어 돈을 주지 않으면 만천하에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협박이고 매우 비도덕적인 처사다. 왜 그런가?
▶ │죄 없는 살인자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고 또 알 필요도 없지만 파피와 리나는 각각 배링턴을 죽이려 한다. 마침 세 사람이 사막을 건너게 되었다. 파피와 리나는 서로의 의중을 모르고 있다. 먼저 파피가 배링턴의 물주머니에 몰래 치명적인 독을 탄다. 리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물주머니에 조그만 구멍을 낸다.
물은 한 방울씩 모래 위로 떨어진다. 정해진 각본대로 배링턴은 목이 말라 죽는다. 서로가 한 짓을 알게 된 후 리나는 살해 사실을 부인하며 항변한다. “나는 독이 풀린 물을 뺐다.” 파피도 살해 사실을 부인한다. “배링턴은 독이 든 물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 │돌│ 전능한 존재인 신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신은 움직일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신이 전능하다면, 그가 움직일 수 없는 돌은 있을 수 없다.
⇒ 전능한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전능한 존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략)...그러나 전능한 존재가 가령 그가 만든 돌이 나중에도 움직이지 않게 할 만큼 스스로 전능하지 못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떤 전능한 존재는 전능한 동안에는 전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 틀림없는 것 같다.
▶ 옥스퍼드 대학교의 화학 교수인 피터 앳킨스(Peter Atkins)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 이전의 시간에는 오직 극도의 단순성만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그는 덧붙였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 이전이니까. 우주는 형태도 빈 공간도 없었다. 우연한 동요가 있었고 한 무리의 점이 무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시간 이전의 시간’, ‘형태도 빈 공간도 없는’, 무에서의 ‘동요’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