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문학의 학문적 발전의 방향성에 대한 본 위원회의 인식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 지난 두 권의 ‘보고서’에 대한 간략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두 권의 보고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비교문학의 급속한 성장의 이유를 새로운 국제적 관점의 등장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 보고서」에 의하면, 이 국제적 관점은 “작품의 모티브, 주제, 형태를 연구하는 데 더 넓은 맥락을 적용하고, 작품의 장르와 양식에 대한 더 넓은 이해를 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학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이 동기 부여는 아마도 최근에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분열을 지켜보면서 유럽 문화의 본질적인 일체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도에 기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같은 관점의 확장성은 무엇보다도 유럽의 경계선이나, 그리스·로마 문화의 고전성으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의 고급문화의 전통 계보 밖으로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실제로 비교문학 연구는 오히려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자신들의 기득권 기반인 민족 언어와 동일시하는 시도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었다.
--- p.78
1993년 「번하이머 보고서」에는 이런 염려가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역사적으로 그동안 지식의 영역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의 학문적 전문성 영역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학제간’ 연구라는 기존 개념에 대해서, 바로 이 ‘상충하는 문화적 산물’이라는 영역이 도전장을 던진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교문학’은 지식인들이 지식의 장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주의 학문적 전문성 영역”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라든가 18세기 영문학, 혹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그 어떤 하위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비교문학’은 시의 장르인 소네트나, 소설처럼 문학 장르들의 연결체도 아니고, 단지 전문성과 학문 분야 사이의 경쟁이 만들어낸 인위적 결과물이기도 한 ‘낭만주의’ 같은 문예운동의 유형도 아니다. 다루는 학문적 주제와 다양한 차원에서 문학과 문화의 영향을 깊숙이 받는 인간의 관심사, 그리고 담론 분야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 관여하는 전문 학술기관들 사이에는 복잡한 변증법적 관계가 존재한다. 예전의 비교문학은 언어에 대한 관심 이상의 것에 대응한 결과로서, 고급문화의 주축이 되었던 유럽의 텍스트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 데에서 비롯된 분야였다. 나는 대학 내에서의 비교문학 연구가 다양한 형태의 비교 연구뿐만 아니라, 텍스트로 된 문학과 소리로 이루어진 구전문학 분야에서도 활발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에 대한 연구도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르네 웰렉이 연구했던 역사도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문명이라고 부르는 다중언어적 문화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 p.105~106
“세기적 전환기의 비교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1993년 「번하이머 보고서」는 두 가지 방향성을 제안하는데, 이 두 가지 방향은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첫 번째 방향으로, 보고서는 비교문학이 이제 전통적인 유럽중심주의를 내려놓고,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 같은 요구는 오늘날 문화적 환경과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과거의 서구 문화도 사실은 일정 부분 비서구 문화와의 영향 관계 속에서 구축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확신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번째 방향으로 「번하이머 보고서」는 문학에만 초점을 집중하는 시도에서 벗어나 문화적 산물이나 모든 종류의 담론을 담아내는 연구로 향하는 방향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제안에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문학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텍스트 분석 역량이 문학 이외에도, 개인과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형태의 담론 행위의 구조와 역할까지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 대중문화 등은 물론이고, 철학, 심리 분석학, 정치학, 의학,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영역의 담론 연구에서도 자신들이 상당히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문학적 역량을 굳이 문학연구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을 다양한 담론 중에 하나로 여기는 것은 분명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