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가족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이유는, 여기에 쓴 이야기보다 쓰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소설은 때론 삭제되고 지워진 문장들을 종이 밖으로 밀어내며 완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한 편의 소설이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가족 이야기는 그런 소설과 많이 닮아 있다.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만 같다.
---「작가의 말」중에서
그냥 한번 웃고 마는 것. 아내의 장기주택저축을 지켜주는 것, 계속 방귀대장 뿡뿡이의 연인이 되어주는 것.
---「내부 지향 남편」중에서
“봐봐, 우리 딸이야…… 너무 예쁘지?”
나는 아내의 눈길을 좇아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아주 작고 머리숱이 많았다. 내가 난생처음 딸을 만난 순간이었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우리 처음 만난 날」중에서
그날 밤 늦게 서재에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가보니 아내와 세 아이들이 침대 바로 아래 좁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었다. 침대에서 자면 아이들이 따라 올라올까 봐, 그러다가 행여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아내는 항상 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다닥다닥 붙어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자니 무언가 뭉클한 것이 가슴 한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도 침대 위로 오르지 못하고 그들 틈에 살짝 모로 누웠다. 쌕쌕거리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아내의 콧김이 내 뺨에 와닿았다. 아이들의 살 내음과 아내의 살 내음도 와닿았다. 누운 자리는 좁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중에서
나는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면서 우리 가족의 어느 한때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사진」중에서
어쩌면 아버지의 얼굴 구석구석에 가족 모두가 들어 있어 아버지의 독사진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가족사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사진」중에서
나는 그냥 딱 사는 만큼만 생각하고, 딱 그 안에서만 아이들을 돌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대형 마트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는 아빠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좀 불편한 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사는 곳, 살아야 할 곳」중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모른다.
---「여자 친구」중에서
아들들이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면 딸아이는 애인 같은 설렘을 주고, 사내아이들이 이제 막 심어놓은 묘목 같다면 여자아이는 그해 처음 내리는 봄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중에서
학교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그래도 입학 전에 한글은 떼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아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봐도 뻔하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던 보름 전 첫째 아이와 함께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불쑥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빠, 내가 오늘 책에서 읽었는데, 세 살 버릇이 언제까지 가는 줄 알아?”
나는 속으로 ‘제법이네, 이제 학교 가도 문제없겠네’라고 생각했다.
“글쎄? 언제까지일까?”
나는 아이 쪽으로 모로 누우면서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아이가 예의 또 그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여름까지 간다!”
나는 잠깐 아랫입술을 깨문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또 바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여름까지 가자, 여름까지 놀면 그만큼 키도 클 거야. 나는 말없이 첫째 아이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여름이 되면」중에서
아이나 아빠나, 다 같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우리 모두 친구가 되게 해주는 것. 조금 ‘쪽팔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친구라니…….
---「뽑기의 매력」중에서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니까.”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부모로서 성장’한 것이 아닌 ‘부모로서 착각’한 것들이 더 많이 쌓여왔다는 것을, 그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중에서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