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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시인동네 시인선-17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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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94g | 127*203*20mm
ISBN13 9791158964856
ISBN10 115896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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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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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깊어진 당신이
귀 얇아진 당신이

지난 시간의 흔적을 밟아온 휘파람 소리는
은회색의 저녁, 긴 꼬리를 끌어당긴다
사람꽃 져버린 자리,
온기 없는 골목이 슬그머니 미끄러진다

서쪽으로 밀린 구름들도 작당했는지
물끄러미, 서슬이 붉다

나 없이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다
--- 「골목」 중에서

어쩌랴 자작이여
우주에 뿌리를 펼치고
뿌리의 날개들이 우주의 기운을 물고 와
땅에, 이 지구에 젖을 물리는 것인데
바람의 잦은 잔소리 잎을 치대고
황금 이파리 다 떨어진 공염불인가
은빛 나뭇가지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늦가을 빈 숲에 들면 눈부신 허공에
젖 빠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어쩌랴 자작이여
창공에 닿은 저 높은 뿌리 힘껏
더 높은 신의 정기 끌어당겨
자장자장 겨우내 꿈꾸는 자작나무 숲
우듬지 숨 쉬는 자작나무 숲 거기,
나 홀로 조용히,
잠잠히 너를 사랑하고
상심은 멀고
기쁨은 꿈속에 있으니
---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 중에서

미운 사람 없기, 지나치게 그리운 것도 없기, 너무 오래 서운해 하지 말기, 내 잣대로 타인을 재지 말기, 흑백논리로 선을 그어놓지 말기, 게으름 피지 말고 걷기, 사람에 대하여 넘치지 말기, 내 것이 아닌 걸 바라지 말기, 얼굴에 감정 색깔 올려놓지 말기, 미움의 가시랭이 뽑아서 부숴버리기, 그냥 예뻐하고 좋아해주고 사랑하기, 한없이 착하고 순해지기

바람과 햇볕이 좋은 날 자주 걸을 것
마른 꽃에 슬어 논 햇살의 냄새를 맡을 것
그립다고 혼자 돌아서 울지는 말 것
삽상한 바람 일렁일 때 누군가에게 풍경 하나 보내줄 것
잘 있다고 카톡 몇 줄 보낼 것
늦은 비에 홀로 젖지 말 것
적막의 깃을 세우고 오래 걸을 것
--- 「숨」 중에서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푸름으로 눈물을 버무려 촛농처럼떨어져 내리던 밤새 상념들도 해답이 없다 길을 내지 않는다 그것으로 다다 없는 하늘에서 이젠 의미 없이 울지 않는 새 거기 있다고 한들 누가 볼 수 있을까 굳어지고 굳어져 가는 태고의 화석으로나 남아 있을 짐작으로나 아는 역사가 길이 되어줄까 땀과 눈물로 범벅을 만들어 한 생을 열었다 하자

하늘 역이 있어 간이역처럼 정차했다 하자

몸을 벗은 허물은 무간으로 떨어지고 영혼은 어딘가로 길을 떠난다 하자 희희낙락하던 그 많은 날들이 태고의 이끼처럼 파랗게 남아 증거가 된다 하자 애비거나 에미거나 그 어느 조상의 허리에서부터 육신의 혈맥을 타고 나르던 새의 의미를 비상구에서 내려다본다 하자 여행자는 단지 떠나는 홀가분함으로 날아가고 남는 자는 무성한 눈물로 그의 길을 덮어놓을 뿐인 걸

훌훌 녹아내리던 몸은
거기 그렇게 남아
이끼가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의미 없이 웃는 새가 날아와 노래를 하고
--- 「새의 의미」 중에서

마침,
기다리던 그대 머리 위로 펄펄 흩날리는 건
머묾 없이 무성해지는 꽃잎들
심심하게 그대 몸 위에 뉘고 또 뉘고
착착 겹쳐서 한 몸이 되어버리는
단단한 뭉침, 그러면 그대도 사라지고
우리도 사라지고
그대 생각도 사라져서는 앞을 볼 수 없지
무아의 지경으로 달려드는 염치도 없지
저렇게 내리고 쌓이고도 사라지는 법도 있지
젊은 날,
우리 머리 위로 나붓나붓 날리던
흰 벚꽃 꽃잎 꽃비였던 그 약속같이
서로 짐작만 하고, 질문만 하다가 잊히겠지
마침내, 이 눈 그치면
눈썹달도 연처럼 나뭇가지에 걸리고
그대 눈의 부처 되어 천년처럼 깊어지겠다
--- 「폭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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