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인 사람을 결혼 전에 전혀 인지한 적 없는 사람이자 14세 ADHD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다.
힘든 소용돌이를 지나, 지금은 태풍의 눈에 있어서 잠잠한 건지, 나아져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한숨을 돌리고 있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적어, ‘이런 엄마도 있구나.’, ‘같은 반 홍길동 엄마도 저렇게 힘들어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작은 쉼 혹은 작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마음의 공간을 열어 주고 싶었다.
---p.5 「글을 쓰며」 중에서
초등학교 입학한 1학년, 그것도 입학한 지 두 달 남짓 된 5월.
영훈이 책상은 교실 제일 앞쪽 정 가운데, 칠판과 딱 붙은 곳이었다. 책상에 앉아 눈을 뜨면 바로 7cm 앞에 칠판이 있다. 교실의 앞쪽 벽면에 책상 상단이 딱 붙어 있었다.
교실 친구들은 우리 영훈이 뒷모습을 보고 있다. 영훈이는 선생님 얼굴을 볼 수 없다. 영훈이 앞에는 7cm 떨어진 칠판만이 보이니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궁금해서 넌지시, “이번에 짝은 누구야?”라고 물으니, “으응, 나 짝 없어. 혼자 앉는데···?
2주에 한 번씩 뽑기로 짝을 정한다고 했고, 그 반 학생 수는 홀수라서 돌아가며 한 명이 혼자 앉는다고 했다.
“제일 뒤에 앉겠네?”
“아니, 내 자리는 제일 앞이야.”
“네가 말썽을 부려 생각하는 의자에 잠시 앉아 있구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반에는 ‘생각하는 책상·의자’가 있었다. 규칙을 익히게 하려고 벌점을 주어 그에 해당하면 생각하는 책상에 잠시 앉는 것이었다. 영훈이도 그런 줄 알았다.
이틀이 지난 후 또 물어보니 같은 대답을 한다.
나는 직장을 다녀 직장 다니는 학부모들이 봉사하는 토요일 날 학교에 가서 교실 청소를 했다. 걸레질하면서 책상을 보니 진짜 제일 앞쪽에 혼자 있는 책상·의자가 있었다. 저게 ‘생각하는 책상’이구나….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은 선생님과 같은 방향의 옆자리나, 선생님과 마주 보는 교실 앞, 혹은 제일 뒷자리가 그 자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학생도 수업은 들을 수 있게 선생님을 볼 수 있는 위치인 줄 알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저렇게 딱 가운데, 제일 앞에, 칠판에 코 박고 앉도록 해 놓는다 말이야? 심하다.
반 전체의 책상 위를 걸레로 닦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생각하는 책상’ 서랍을 봤다. 책상 서랍 안에 우리 영훈이 이름이 적힌 책이며, 공책, 사인펜, 색연필, 스카치테이프 등이 플라스틱 소쿠리(책상 서랍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옆에는 영훈이 이름이 적힌 미니 빗자루 세트도 달려 있었다.
“이 씨!”
걸레로 벽을 쳤다.
생각하는 책상이었다면 특정 학생의 수업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 세트가 고스란히 있지 않을 터이다. 잠시 있다가 가는 자리니까.
그럼 도대체 며칠을, 몇 시간을 저기에 앉힌 거야?
같이 청소하는 엄마들한테 물어보니 다들 말을 안 한다.
일시적으로, 벌받아서 그 자리에 앉는 거면 이해한다.
그런데 장시간 이 자리에 영훈이를 앉혔어?
잠이 안 왔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회적 피드백이 오가는 나이인데 이건 정서적 학대다. 토, 일요일을 온통 이 일에 신경 쓰며 잠을 못 잤다. 결국은 선생님께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벌칙으로 일시적으로 앉았던 거라면 수긍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선생님께 내 의견을 얘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서 들을 수 없었다. 왜 그 엄마들이 몰랐을까? 내가 청소하면서 그 난리를 피웠는데. 자기 아들딸한테 물어보면 영훈이가 며칠 동안 연속해서 그 자리에 앉았는지, 아침 등교부터 하교 때까지 내내 앉았는지 모를 수가 있나?
하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월요일.
영훈이와 같이 학교 갔다.
8시 40분까지 등교다. 딱 40분에 복도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영훈이가 마지막으로 입실한다. 나는 지켜봤다. 영훈이는 어깨를 움츠리고 뒷문을 연다. 모두 쳐다본다. 신랑 입장하면 모두가 쳐다보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들 쳐다보고 영훈이는 움츠린 자세로 큰 가방을 메고 2분단과 3분단 사잇길(교실 정중앙 길)을 걸어 맨 앞 그 책상에 앉는다.
교실 앞문으로 선생님께 눈인사를 했다. 나오신다.
“안녕하세요? 영훈이 엄마인데요?”
보여 주기 싫은 걸 들켰다는 표정으로 “네…….”
나는 사진을 찍었다. 우리 영훈이가 앉은 교실을.
선생님은 손으로 가리며 “찍지 마세요.”
“왜요? 찍으면 안 돼요? 다른 애들은 안 나오게 할 거예요.” (이 때 찍은 사진이 20페이지 사진임.)
“영훈이가 일주일 저기 앉은 거 맞죠?” 사실은 2주다. 2주에 한 번씩 자리를 정하니까.
약간 눈알을 굴리며 “네……, 2주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서…. 안 그래도 오늘 바꿀 거예요.”
“오늘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저렇게 앉혀 놓는 것은 정서적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피드백이 오가는 시기인데.”
“영훈이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내 옆에 앉혀 놓은 거예요. 그런데 효과가 없어요.”
어떻게 거기가 자기 옆자리인가? 수업 듣게 하려고 앉힌 자리가 모든 친구가 영훈이 뒤통수를 쳐다보는 자리이며 영훈이 얼굴과 칠판이 7cm 떨어진 자리란 말인가?
“잘못해서 잠시 생각하는 의자에 앉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2주 동안 아침부터 집에 올 때까지 내내 앉히는 건, 이건 정서적 학대며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복도가 시끄러우니 옆 반 선생님이 나와서 힐끔 보고 가신다.
나는 복도를 걸어 나오다 바로 앞에 있는 교장실로 들어갔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2주간 영훈이가 그런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이것은 정서적 학대이며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는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담임 선생님에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했다. 찍은 사진도 보여 드렸다.
교장 선생님은 혹여나 이 일이 새어 나갈까 우려하기도 하셨고 이런 1학년 학부모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우리 애가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해서 다른 아이들 수업에 방해를 줬고 선생님께서 수업을 끌고 가는 데 어려움을 준 것은 정말 미안하다. 우리 영훈이도 남들처럼 단체 생활에 묻혀갈 수 있는 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제 사회생활 시작하는 아이들은 실수도 하고 행동 교정도 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지, 처음부터 말 잘 듣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런 것을 이해하고 성장의 과정으로 너그러이 지켜봐 주는 게 어른의 관용 아닌가?
우리 애가 남보다 별나고 통제가 어려운 점은 선생님과 내가, 그리고 영훈이가 같이 노력해서 치료하고 연습하고 해서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이지 입학한 지 두 달 되는 학생에게 위와 같은 방식의 처방은 지금도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한다.
---pp.20-25 「2015년 5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