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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스의 소멸

깨스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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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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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596g | 152*225*19mm
ISBN13 9791187695073
ISBN10 118769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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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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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당장 올라와서 일해.”

정식 인사발령이 나기도 전에 사무실을 옮겼다. 연말연시부터 터져 나온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애끓는 사연에 아침저녁으로 경찰을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가하게 절차를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G20-정상회의’라는 국제행사의 경호경비 기획 부서에서 주요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다음 인사발령을 기다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던 나는 제대로 짐을 옮길 새도 없이 일을 시작했다. 아직 전임자가 새로운 보직으로 이동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우선 비어 있는 아무 자리에나 앉아서 무작정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짐 정리는 조금 여유가 생기면 해도 되겠지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그때부터 정말 잠시도 숨 돌릴 틈 없이 수개월이 지나버렸다. 이전 사무실에 남겨진 짐은 미처 살피지 못하는 동안 하나둘씩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2011년 당시 나는 그렇게 경찰청 ‘전경계장’이라는 보직으로 발령받았고, 전·의경 부대 안의 구타·가혹행위와 같은 소위 ‘군대폭력’을 없애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전환 복무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전·의경들

대한민국 남자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육군이나 해군, 공군과 같은 현역군인 입대가 보통이지만, 경찰이나 소방, 해양경찰 등에서 병역을 이행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을 ‘전환 복무’라고 하는데 국가의 재정여건을 고려하여 직업공무원들이 해야 할 업무 중 비교적 단순한 일을 병역이행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지금은 ‘의무경찰(의경)’로 단일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병역이행자가 경찰에 전환 복무 되는 것에 ‘전투경찰(전경)’과 ‘의무경찰(의경)’ 두 가지가 있었고, 합쳐서 ‘전·의경’이라고 불렀다. 내가 맡게 된 ‘전경계장’은 비록 ‘전경’으로만 직함의 명칭이 표기됐지만 전·의경의 복무를 총괄 관리하는 자리였다. 병역이행자인 전·의경은 경찰을 직업으로 하는 경찰공무원과는 전혀 다른 대상으로, 법적 신분부터 선발 방법까지 모두 다르다. 흔히 말하는 경찰관은 공무원 임용시험을 거쳐 선발된 공무원이고, 전·의경은 병역대상자가 입대하여 치안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중 의경은 본인이 스스로 경찰조직에서 병역을 이행하겠다고 지원하는 것이지만, 전경은 원래 현역군인이 되려고 육군에 입대한 사람 중 일부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경찰로 강제 차출하는 것이다.

본래 전·의경 제도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대간첩 작전과 시위 진압을 위해 많은 경찰력이 필요해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현대사 속의 수많은 시위현장에 전·의경 부대가 항상 있었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전·의경 부대는 억압적 내부질서가 더욱 강했다. 더욱이, 전·의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군대 문화가 대부분 그랬듯이 부대 안에서 수많은 구타·가혹행위와 괴롭힘의 악습이 수십 년간 대물림되면서 구조화되어 있었다. 1971년 병역의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의경 제도가 시작된 이후 구타·가혹행위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경찰 당국은 그때마다 대책을 발표하며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십 년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최악의 상황

그러던 중, 내가 전경계장으로 발령받기 한해 전인 2010년에 충남의 한 부대에서 의경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복무 중 얻은 질병에 의한 순직으로 종결되었지만, 그해 연말 고인의 어머니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의경으로 입대한 아들이 선임자들의 도를 넘는 가혹행위에 목숨까지 잃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다. 너무도 분통하게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사연은 누구라도 분노할 이야기였다. 분노한 여론에 따라 신문과 방송은 연일 비난 보도를 쏟아냈고, 해당 사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각양각색의 전·의경 구타·가혹행위 관련 기사들로 경찰을 맹비난했다.

정치권도 함께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경찰청에 사건의 경위와 대책을 추궁하였다. 국회에 출석한 경찰청장에게 집중포화를 쏟아 부었고, 경찰 수장의 난처한 모습은 당시 경찰조직 전체의 궁색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담당 부서인 경찰청 전경계는 더했다. 청와대, 국회, 인권위, 언론, 시민단체 등 모든 곳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통에 담당자들은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단지 업무량이 많은 것이 아니라 온갖 비난과 책임 추궁을 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마침 그 당시가 상반기 정기 인사철이 임박한 시기였는데 전경계에 있던 사람들은 한 사람 예외 없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신청했다. 나는 대내외적 요구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에서 발령받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는데, 심지어 함께 일할 직원들까지 모두 새로 뽑아야 하는 처지였다. 더욱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가장 치열한 전장 같은 이 부서에 자진해서 오겠다고 할 직원들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또 설령 누가 오더라도 업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신임 직원들과 곧바로 이 험난한 상황을 헤쳐가야 하는 것이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적임자를 찾아보고, 아는 후배를 반협박(?)하거나 중앙기관인 경찰청에 막연한 환상을 가진 일선의 직원을 꾀기도 해서 겨우겨우 직원들을 새롭게 선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대로 새로 들어온 직원 중 한 명을 빼고는 모두 경찰청과 같은 정책부서 경험이 전혀 없어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지 막막했다. 새롭게 담당해야 할 업무의 기본적 내용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보고하고 전파하는 방식이나 관계부서와 협조하는 등 경찰청 특유의 기본적인 행정절차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쳐야 했다. 무엇보다 워낙 예민한 시기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는 경우 자칫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어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가뜩이나 언론이나 국회에서 불신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는데 의도치 않은 실수가 전반적인 무능이나 근본적인 한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상황 속에서 일부 직원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휴직을 신청하거나 다른 곳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끝까지 버텨내며 그 어려운 순간을 함께 이겨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에 들어와서 온갖 수고를 딛고 함께 성과를 만들어준 그때 그 동료들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낯설고 서투르지만 회피하거나 요령 부리지 않고 책임을 다해줬고, 거의 매일 제대로 퇴근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는 열악한 상황에도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감내해 줬다. 지금은 마음 편히 회고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그 시절의 그 직원들처럼 훌륭한 동료들을 만난 것은 내겐 행운이자, 기적을 만들기 위한 운명이었던 것 같다.

40년간 반복된 전·의경 악습 근절을 위한 도전의 시작

아무튼, 첫 난관이었던 직원 선발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나는 해당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하는 단위 부서의 담당 계장이었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과장, 국장, 차장, 청장까지 단계를 거쳐야 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담당 계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책적 결단과 큰 제도적 변화는 계장 수준에서 결정할 수 없었다. 더욱이 전·의경 문제는 경찰조직 내의 오랜 봉건적 관행과 군대 문화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편견, 경찰당국에 대한 전·의경들의 신뢰 부족 등이 결합해 있는 매우 복잡한 사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 관계자들끼리도 생각이 서로 너무 달라 정책대안의 기대효과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것도 어려웠고, 조직 구성원들의 거부감과 피로감을 조심스러워하는 보수적 정서도 강해 파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까지의 대책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다. 과거부터 해왔거나, 활성화되지 못한 시책들을 조금 보강하는 수준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 목전의 어려운 상황을 피해 가는 미봉책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난 40년간 반복된 전·의경 악습을 근절하는 것은 이 정도 대책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래서는 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똑같은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것이 자명했다. 아니, 큰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 전이라도 전·의경 부대 안에서 반인권적인 가혹행위와 악습이 만연한 상태가 계속된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여전히 그 속에서 매일매일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그대로 놔둔 채 소나기 피하듯 상황만 비껴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가의 재정적 능력 부족 때문에 자신의 젊음을 쪼개 국가에 헌신하고 있는 우리의 청년들이 왜 국가의 무책임과 방관 속에 반인권적 환경에 고통을 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상황을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것을 알면서도, 적당한 대책으로 당장에 닥친 어려움만 피하려 한다면 우리도 같은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의경 구타 가혹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랬던 만큼 이번에도 당연히 그 전철을 따라갈 것이라고 모두 단정했다. 우리나라에서 군대폭력은 못 없앤다며, 그 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예전 사람들이 진즉 했을 거라고도 하며 괜히 헛고생하지 말라고도 했다. 우리는 오기가 생겼다. 흔히 말하듯이 위기는 기회였다. 모두가 전·의경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간 감히 추진하지 못했던 과감한 정책들도 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관계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여도 이해를 구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는 이참에 이 문제가 더는 불거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수술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도전이 시작됐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얘기할 만큼 어렵지만, 또 그만큼 위대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전·의경 부대에서 구조적인 구타·가혹행위가 사라진 것이다. 간혹 여느 곳처럼 사람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우발적 폭력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선임자가 후임대원을 일상적으로 폭행하고 가혹하게 괴롭히는 데도 그것이 관행처럼 취급되고 방치되는 구조적 악습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의경 문화 혁신이 불러온 의경 지원자의 폭발적 증가

철옹성처럼 강고했던 악순환의 구조를 깨뜨리고 대물림되던 악습을 뿌리부터 뽑아내자, 처음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던 후임대원이 시간이 지나 전역을 하고, 다시 새로운 후임이 들어오는 몇 번의 주기를 거치면서 선순환의 구조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구타와 가혹행위로 점철되어 있던 전·의경 부대는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환골탈태했고, 의경 지원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전·의경 문화 혁신을 시작한 직후인 2011년 2월의 의경 지원자 수는 579명에 불과했지만, 수년 후인 2014년 말에는 20,042명으로 무려 35배가 증가하였다. 전·의경 부대에서, 모두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던 군대폭력이 사라지자 병역을 앞둔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부대가 되면서 지원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계속 커졌고, 몇 년 후에는 지원자가 너무 몰리다 보니 의경 선발시험을 ‘의경고시’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2014년 9월 3일 자 조선일보는 “떴다, ‘의경고시’… 구타 사라지자 인기폭발”이라는 제목으로 2011년 이후 구타와 가혹행위가 없어지면서 예비 입대자들에게 의경이 얼마나 인기가 좋아졌는지를 집중보도하기도 하였다.

해당 기사에서는 일반 군대 지원병 경쟁률은 5:1에서 6:1인데 비해 의경 지원율은 무려 20.1:1이나 된다며 육·해·공군 지원 경쟁률을 모두 합해도 의경에 미치지 못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경찰은 구타·가혹행위가 급감한 것을 의경 열풍의 원인으로 진단한다.”라며 “의경 경쟁률이 구타 건수와 정확히 반비례한 것”이라고 의경의 인기가 높은 것이 구타·가혹행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실제로 지원제인 ‘의경’ 제도가 만들어진 1982년 이래 2021년까지 의경 선발시험의 경쟁률을 분석한 다음 그림을 보면, 2011년 전·의경 문화 혁신 이후에 전·의경의 인기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또한 뒤쪽에서 상세히 소개하겠지만, 2011년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전·의경 폭력 근절 성과를 극찬하기도 하였다. 2011년 초, 한 의경의 원통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전·의경 구타·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경찰의 노력이 국정감사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장면이었다. 또한, 앞서 본 것처럼 전·의경 문화 혁신의 성과는 상당수 언론기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게 다뤄졌다. 이처럼 우리의 혁신 성과는 언론이나 정치권, 관계기관 등 외부에서도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다. 자의적 판단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거나 과장하는 흔한 행정적 미화가 아니라 이건 진짜 ‘현실’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서부터 실질적인 가시적 변화를 강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절대 없앨 수 없을 것 같던 군대폭력을, 군부대도 아닌 전·의경 부대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 과거 전·의경 부대의 가혹행위가 만연했던 시절을 체감하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기성세대 중 예전에 전·의경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은 전·의경 부대의 가혹행위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콧방귀를 뀐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경찰 당국이나 부대관리자들이 객관적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 가혹행위가 만연하던 본인들의 복무 시기에도 부대 지휘관들은 그렇게 착각했었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군대폭력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착각’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다. 과거 전·의경 가혹행위를 없애겠다고 해놓고 한 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매번 반복된 ‘양치기 소년’의 농지거리가 아니라 ‘진짜 늑대’를 잡아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그 진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비극에서 분노로

구타·가혹행위 후유증에 의한 한 의경의 비극적인 죽음

2010년 6월, 충남의 한 의경 부대에 복무하던 박○○ 의경은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2010년 12월 31일, 고인의 어머니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커뮤니티 ‘아고라’에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애끓는 사연의 글을 올렸다. 선임대원 13명이 후임대원 약 30명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금품 갈취를 하였고, 피해대원 중 한 명이었던 박○○ 의경이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좁디좁고 빛 한줄기 없이 어두운 보일러실에 종일 혼자 가둬놓거나, 자신들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출동 버스로 불러내 이유도 없이 짓밟는 등 매일같이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한 급성백혈병으로 그 젊은 나이에 영영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세밑에 올라온 이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분노했고, 이 일로 인해 전·의경 폭력 문제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요약된 몇 줄의 문구로 당시 그 어머니의 원통함을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그 글을 다시 읽다 보니 가슴이 또 먹먹하고 애통함에 눈물이 고여 왔다. 이 책의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모든 전·의경 부대에서 매일 벌어진 구타·가혹 행위

애초 고인이 사망할 당시에는 단지 병환으로 인한 순직일 뿐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구타와 가혹행위들은 드러나지 않았는데, 한참 뒤 고인의 어머니가 글을 올린 뒤에야 비로소 진실의 실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정말 순간순간이 지옥 같았을 것 같은 야만의 행태들이 21세기 문명국가인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절규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전·의경 부대에서는 여전히 구타와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구타·가혹행위를 근절하겠다, 우리 부대는 없어졌다고 저마다 큰소리쳤지만, 실상은 어느 한 곳 예외 없이 모든 전·의경 부대에서 매일매일 구타·가혹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언론에서 연일 문제 삼고 정치권에서 호통을 쳐도, 이들을 직접 접촉하는 경찰청 부서들만 쩔쩔맬 뿐이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아무런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

고인의 어머니가 글을 올린 지 5일 후인 2011년 1월 4일, 경찰청은 전국 전·의경 부대장 300여 명을 긴급 소집해 ‘구타·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또한 며칠 후 의경 사망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부대 안에서 고인에 대한 구타·가혹행위가 사실이었음을 인정하면서 전·의경 구타·가혹행위 근절 대책을 내놓았다. 구타와 가혹행위 가해자는 모두 형사처분하고, 이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지휘·관리요원도 중징계는 물론 형사처분까지 하겠다며 엄중 문책 방침을 밝혔다. 모든 전·의경 부대를 대상으로 잔존 악습이 있는지 철저히 진단하여 개선하고, 구타와 가혹행위 근절에 유공자는 경감까지 특진하는 등 포상방안도 도입하겠다고 하였다. 전·의경 가혹행위 신고통로를 활성화하고 ‘여경상담관’을 배치하여 전·의경들의 애로사항과 민원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기로 했다. 거기에 전·의경들의 근무시간을 주 48시간으로 줄여나가 힘든 근무여건도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구타·가혹행위의 본질적 구조 혁신 방안과 실효적 이행 장치 필요

나는 그로부터 20여 일 후에 전경계장으로 오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다른 부서에 있으면서 크게 관심이 없다가 그제야 그 대책을 깊게 들여다봤는데, 이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책의 방향과 내용은 적절하고 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 우선, 이미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의 대책에 비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었다. 필요한 것들이지만, 구타·가혹행위를 엄벌하고 억지하는 방책만 있었고, 구타·가혹행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실질적 분석과 본질적 구조를 혁신하는 방안이 미흡했다. 어떤 특정인의 잘못된 행태가 아니라 사람이 계속 바뀌어도 똑같은 폭행이 대물림되는 것은, 이것이 전·의경 부대가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반증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 구조를 혁파하지 않으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단순히 구타 가혹행위는 나쁜 짓이니까 엄벌하고 억지하겠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식으로는 일시적으로 성과가 나더라도 반드시 그런 사태들이 재발하기 마련이다.

두 번째는, 당시 대책에는 각종 시책이 현장에서 끝까지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적 장치가 부족했다. 정책은 그 자체보다도 끝까지 제대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처음 여론이 들끓을 때면 정말 무언가 할 것처럼 하다가도 잠잠해지기 시작하면 기득권 세력이나 저항 등을 신경 쓰며 이것저것 눈치 보고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버리고 만다. 그런 식의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대책이 나와도 매번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었다. 뒤에 흐지부지되는 것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정책효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정책 성공을 의심하며 크게 기대하지 않고, 현장에서는 소나기를 피해 가는 식의 분위기만 형성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서 여론이 잠잠해지거나 다른 이슈라도 등장하면 또다시 대부분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무언가 개선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관련 통계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현상도 생겨난다. 통계상 개선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실제 문제를 축소·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퇴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식의 과정이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전·의경 부대의 잘못된 악습은 오히려 더욱 강고하게 고착되었다. 조금은 더 다른 접근방법을 보강해야 했다. 구타·가혹행위를 억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으로 구타·가혹행위를 대물림하게 만드는 구조를 찾아 혁신하고 이것을 실제 현장에서 끝까지 제대로 이행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실효적 장치가 필요했다.

강원 ○○전경대 집단 탈영과 여론 악화

그런데, 이 와중에 경찰청의 대책 발표가 무색해지는 사건이 또다시 터졌다. 어머니의 절규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1월 23일 강원경찰청 ○○전경대 신입대원 6명이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집단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었다. 전입 2개월이 안 된 이들은 암기 사항을 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선임대원들에게 정신교육을 빙자한 구타와 금품 갈취를 상습적으로 당해 왔다. 그러다가 부대 바깥의 구제역 이동통제소에 장기간 지원 근무를 나가 있을 때 대원 1명이 부모를 통해 부대 경찰관들에게 피해를 신고하였다. 하지만 그 부대에서는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고 징계나 형사처분 등 적극적인 조치도 하지 않은 채 가해대원 2명만 자체 교육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제대로 된 조치가 없자, 그대로 지원 근무가 끝나 부대에 복귀하면 선임들에게 오히려 보복당할까 두려워진 피해대원들은 집단 탈영을 해 버렸다. 경찰청은 이 대원들을 직접 데리고 와 피해 사실을 전면 조사한 후, 해당 전경대장, 소대장 등 경찰관 5명과 가해대원 15명 전원을 형사입건하고 상급기관 책임자들은 징계하였다. 가해대원 중 특히 폭행이나 갈취 행위가 무거운 2명은 구속하기까지 했다. 전경대장 등 경찰관들은 피해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점과 평소 부대관리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였다. 그리고 해당 부대는 아예 해체한 후 대원들은 다른 부대로 분산하여 전출시켰다. 부대를 공중분해해 버린 것이다.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조치했지만,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회적 공분은 쉽게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고, 전·의경 부대의 폭력 문제는 일시적 이슈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텍스트 마이닝 툴인 ‘빅카인즈’를 통해 ‘전·의경 구타’에 관한 키워드 분석을 해보면, 2011년 1월 한 달간 관련 보도만 173건에 달한다. 그보다 1년 전인 2010년 1월에는 한 건도 없었고, 물론 올해인 2022년 1월에도 전혀 없다. 그런데 2011년 1월에는 전·의경 구타와 관련한 기사가 이렇게 집중되었다. 당시 전·의경 부대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당시의 전·의경 관련 기사에 대한 언론 보도의 중점과 방향을 보여주는 ‘워드 클라우드’ 연관어 분석을 보면 ‘가혹행위’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권위, 국회와 함께 대통령까지 나선 사회 문제

전·의경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도 문제가 불거진 3개 부대에 대해 구타·가혹행위 의혹을 직권조사하기로 나섰다.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언론의 보도가 집중되자 정치권의 관심도 쏟아졌다. 국회는 통상 매년 2월경에 임시국회를 열어 각 중앙행정기관에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현안을 질의하는데, 2011년 3월 3일에 열린 경찰청 대상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전·의경 구타·가혹행위 문제가 유일한 현안으로 보고되고, 국회의원들의 질의도 집중되었다.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회의원들의 질타와 추궁을 받으면서 반드시 전·의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또한 그해 3월 30일 경찰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도 “전·의경의 인권을 존중하고, 억압적 부대 문화를 또한 개선해야 한다.”라며 전·의경 구타·가혹행위의 근절을 주문했다. 특히, “사회 법질서를 세우기에 앞서 경찰 스스로 안에서부터 자성하고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언급해 사실상 전·의경 문제로 경찰당국을 강하게 질책하였다. 공직사회의 특성상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렇게 명시적이고 강력한 주문을 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상징적 의미와 실질적 파급력이 있다. 바야흐로 이제 전·의경 문제는 경찰 내부의 문제를 넘어 중요한 사회 문제로서 의미가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1. 최악의 위기에서 시작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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